[인터뷰①] ‘백설공주’ 고준 “거리 두던 변요한, 지금은 자꾸 보고파”

김소연 스타투데이 기자(ksy70111@mkinternet.com) 2024. 10. 24.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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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고준은 종영 소감을 묻는 질문에 “연인에게 차인 느낌”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진|애닉
“종영이 아니라 실연당한 느낌이라 떠나보내기 싫어요.”

배우 고준(46)은 MBC 금토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블랙아웃(Black Out)’(극본 서주연, 연출 변영주, 이하 ‘백설공주’) 종영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고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4일 종영한 ‘백설공주’는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살인 전과자가 된 고정우(변요한 분)가 형사 노상철(고준 분)과 10년 후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그린 스릴러물이다. 고준은 극 중 경찰대 출신 엘리트 형사 노상철 역을 맡았다.

‘백설공주’는 촬영 후 2년의 기다림 끝에 MBC에 편성돼 시청자들을 만났다. 고준은 “헤어진 느낌이 든다. 실연 당한 것 같다. 연인에게 차인 것 같은 느낌이라 떠나보내기 싫다”는 말로 애정을 드러낸 뒤 “(편성까지 오래 걸린) 덕분인지 저희 팀 신뢰가 깊게 형성돼 있다. 보통 작품이 끝나면 서서히 연락이 뜸해지게 되지 않나. (오랜 기간 연락을 유지해서인지) 마음이 이상하더라. 저만 드는 생각일 수 있는데 짠한 마음이 들었다”고 감상을 덧붙였다.

고준이 맡은 노상철은 경찰대를 졸업하고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배치된 엘리트 형사였으나 예비 신부가 잔혹하게 살해되면서 망가진 인물이다. 술에 뼈져 살며 범죄자들에 폭력을 쓰는 등 사고를 치다가 결국 무천 경찰서로 좌천됐다. 전과자인 고정우에 날을 세우기도 하지만 고정우의 사건을 파헤치며 진실을 추적하게 된다.

방송 전 제작발표회에서 변영주 감독은 “공권력을 우습게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공권력이 아무것도 못했다는 걸 보여주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자력구제라는 개념을 싫어한다. 정우의 행동이 자력구제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노상철의 역할이 중요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고준 역시 경찰을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이 첫 형사 연기라는 고준은 “베테랑 경찰을 대변하기는 어려웠고 아쉬운 지점이 많지만 현존하는 형사 역할 중 가장 리얼하게 그리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면서 “저는 고증을 중시한다. 연기를 하기 위해 롤모델을 찾아 만나고 인터뷰를 하는 편이다. 귀찮아하지 않으면 들러붙어 있는데 심하게는 몇 달간 같이 생활하기도 한다. 이번엔 제작사에 공문을 정식으로 요청해 경찰서에 가서 경찰분들의 모습을 봤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쁜 사람을 하나 잡는데도 법과 제도의 장애물이 너무 많더라. 보디캠도 해야 하고 미란다 법칙 고지도 해야 하고. 조서를 꾸밀 때는 (형사들의 일상적인 모습에) ‘감정이 없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후 물어보니 ‘너무 화가 난다’고 하더라. 범인을 잡고 싶은 열망은 어마어마했지만 영화에서 보는 것 보다 일상적인 모습들도 많았다. 농담도 하고 패션에도 신경 쓰고, 인간적인 모습도 있었다. 그런 일상성을 고증하려고 했다. ‘형사처럼’ 보이려는 게 아니라 ‘형사’로 보이려 했다. 형사들이 보고 ‘그래 우리 저렇잖아’라고 말하도록 하고 싶었다”고 신경 쓴 부분을 언급했다.

‘백설공주’는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드라마화되면서 피해자인 고정우가 주인공이 되지만 원작에서는 남녀 형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고준은 “원작에는 작가의 다른 소설에도 나오는 형사 두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한국화하면서 주인공을 고정우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처음 작품을 제안받았을 때는 투톱이라고 했는데 고정우에 시선을 주니 제가 묻히는 경향이 있더라”며 “마지막에 법정에서 나와 고정우와 포옹을 하는 신에서도 고정우 얼굴만 나오고 내 얼굴은 안 나오더라. 다 좋은데 그게 아쉬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촬영 당시를 회상하며 “요한이가 저한테 ‘초반부는 잘 견인할 테니 후반부를 부탁한다’라고 했다. 법정신에서는 대본에 운다는 지문은 없었는데 진심이 통해서 서로 마주치니 터져서 같이 울었다”며 “(변요한은) 현장에서도 잘했지만 화면으로 보니 ‘얘가 이렇게 잘했구나!’하며 놀랐다. 연기하기 어려운 역할이다. 대사가 많지 않은데 아픔을 물고 있으면서 그걸 눈으로 표현해야 한다. 이걸 어떻게 이끌고 갈까 했는데 너무 잘해서 감탄했다. 괜히 변요한이 아니다”라고 상대역인 변요한을 극찬했다.

그러면서 “작품 중반까지 안 친했다. (현장에서) ‘왜 이렇게 딱딱하지?’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그게 변요한의 계획이더라. 서사 그대로 노상철과 거리를 두는 것. 저도 처음엔 고정우를 범인으로 보니까 (초반 촬영을 하는 동안은) 안 친하게 되고. 둘이 합의한게 아닌데 서사 그대로, 캐릭터들의 온도 그대로 친해져서 지금은 형제같다”면서 “요한이가 자꾸 보고싶다. 궁금하다”고 찬찬히 쌓인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노상철은 무겁기만 한 인물은 아니었다.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에 활기를 넣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 것. 이건 고준의 의견이 반영된 부분이란다.

“처음엔 노상철이 진지한 캐릭터로 그려졌어요. 대본을 다 읽고나서 ‘다크하고 진지하면 (시청자분들이) 잔다. 채널 돌아갈 것 같다’ 싶었어요. 희화된 캐릭터가 필요한데 아무리 찾아봐도 (어떤 캐릭터를 희화하면 좋을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노상철과 형사과장이 만날 때 그런 부분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희화화되겠다’고 했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면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사할 때만 진지하면 되고, 상사한테는 살랑거리기도 하고요. 강자에겐 세게, 약자에겐 약하게 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다고 했는데 인정해주셔서 그렇게 연기했습니다. 제 실제 성격도 그래요. 강강약약입니다.”

디테일을 살린 부분은 더 있었다. 고준은 “초반 6화 이전까지 노상철은 알코올 중독이고 분노에 빠진 인물인데 서사가 진행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술을 마시지 않는다. 또 떡진 머리에 단벌만 입고 있다가 고정우와 친해지고, 재수사 공조를 하게 되면서 잘 씻고 옷도 갈아입는다. 구조적으로 사람이 되어가는, 마음 따뜻해지는 부분이 있는데 잘 보이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배우 고준은 수작에 대한 갈증이 ‘백설공주’로 해소됐다고 말했다. 사진| 애닉
극 중 무천마을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정으로 비밀을 숨기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범죄에 가담한 것이 아니더라도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범행에 동조했고, 고정우를 가해자로 만들었다. 형사 노상철의 시선에서 봤을 때 가장 나쁜 사람은 누굴까. 고준은 양병무(이태구 분)의 아버지 양흥수(차순배 분)을 꼽았다. 양병무는 자신이 짝사랑했던 심보영(장하은 분)이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자 격분해 강간했고 심보영은 도망가던 중 계단에서 실족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양흥수는 ‘아들 인생 망칠까 봐’ 살려달라 애원하는 보영을 삽으로 내려쳐 살해한 뒤 유기했다.

“수사 과정에서는 고정우가 제일 쓰레기같이 보여서 ‘처넣어야 한다’, ‘어딜 뻔뻔하게 돌아다니냐’고 했죠. 이후엔 용의선상에 올라오는 순서 대로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선입견이었다는 걸 알고, 전말을 다 알고 나서는 양병무 아버지, 양흥수가 제일 미웠어요. 제일 나쁜 것 같아요. 그렇게 아들을 키우니까, 자식 교육을 그렇게 하니까 괴물이 나오는 거죠. 우리가 각자 알아서 큰 것 같지만 가정교육이 지배적이에요. 사회화나 성격 등 (인격 형성에) 뿌리 깊게 관여하는 게 가정교육이죠. 내 아들만 위하니까 아들이 그렇게 성장한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그 사람이 원흉이라고 생각해요.”

‘백설공주’ 출연진은 주연부터 조, 단역까지 흠잡을 곳 없는 명품 연기를 선보였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배우는 누굴까. 고준은 “김보라”라면서 “연기 천재다. 처음 만나 연기를 해보자 마자 알았다. 하설 역이 제3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거라 조금 더 개입했다면, 분량이 조금 더 많았다면 보라가 가지는 능력치가 훨씬 더 많이 나왔을 텐데 싶어서 아쉬웠다. 더 잘되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또 경찰서장 현구탁 역의 권해효, 심보영의 부모 심동민, 이재희 역을 맡았던 조재윤, 박미현도 언급했다. 고준은 “권해효 선배는 작품의 집중도와 공헌도가 높다. 후배들 편하도록 대본도 다 바꿔주신다. 이런 이야기를 감독님과도 많이 하시고, 작품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노력해주셨다. 방송을 보면서 ‘권해효 선배의 재발견’ 내지는 ‘전성기 다시 시작’이란 느낌이 들더라. 그 어느 작품에서보다 좋았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또 “박미현 선배 연기를 화면으로 보면서 울었다. 딸을 잃은 엄마 심정을 너무 잘 표현하셨다”면서 감탄했다. 조재윤은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였단다. 고준은 “카메라만 돌면 어마어마한 눈빛과 에너지가 나오는데 평소엔 분위기 메이커다. 같이 연기를 하면 어마어마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고 이야기했다.

‘백설공주’의 연출을 맡은 변영주 감독은 어땠을까. 고준은 “꼭 촬영 현장이 아니어도, ‘조직의 세계’라는 게 다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수장의 온도가 밑으로 퍼진다. 변영주 감독님은 너무 따뜻하고 믿음을 주는 분이다. 그 덕에 현장 분위기도 너무 좋았다. 그 증거로 단톡방에서 잠시만 못 만나도 또 보자고 하시더라. 감독님이 그러니 배우들도 그렇다. 지금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워낙 똑똑하고 말씀을 잘하신다. 작가님이 쓴 대사 외에 써주신 부분이 있는데 보통 ‘너 오늘 점심 뭐 먹었어?’라고 한다면 감독님은 ‘너는 오늘 몇시에 어디에서 뭐 먹었는지 말해줄래?’처럼 설명적이다. 드라마 문법에 필요한 것”이라면서 “마지막화 명대사들은 거의 감독님이 쓴 거다. 상철이 정우에게 ‘보통의 감정으로 보통의 삶을 살아라. 보통으로 슬퍼하고, 보통으로 기뻐하고’라는 말도 감독님이 쓰셨는데 되게 좋더라”며 변영주 감독의 글에도 감탄했다.

‘백설공주’의 동시간대 경쟁작은 SBS 드라마 ‘굿파트너’였다. ‘백설공주’가 시작할 당시 이미 시청률 10%대를 돌파하며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고준은 “시청률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았다. 워낙 ‘굿파트너’가 첫 방송부터 잘되지 않았나”면서 “‘백설공주’가 2024년 드라마 중 가장 밀도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재미있다고 하더라. ‘출근해야 하는데 밤 새웠다. 왜 추천했냐’고 짜증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다음화가 궁금한 작품이지 않았나. 수작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그 첫 단추가 됐다. 저 자신에 대한 평가가 박하고 부정적인데 덜 부끄러웠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고준의 말대로 ‘백설공주’는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았다. 첫회 시청률 2.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시작해 마지막 회에서 최고 시청률 8.8%를 달성하는 등 순차적으로 시청률이 상승했다. 고준은 “작가님이 잘 써주신 덕이다. 클리셰한 이야기라도 리얼리티한 연기로 녹이면 잘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독님도 잘 연출해주셨고 (제작진 모두) 후반작업을 잘 해주셨다. 모든 톱니바퀴가 각자 잘해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 시청률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하더라.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으로 시청이 더 많다더라”며 시청률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백설공주’는 오래 회자될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입소문 더 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아직 보지 못한 시청자들에 관심을 당부했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김소연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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