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 안 된다면서 생수는 왜? 호텔 일회용 어메니티 금지와 탁상행정
일명 ‘재활용법’ 실시 5개월 차
호텔서 일회용 어메니티 금지
그러나 무상제공만 금지일뿐
프런트 등에서는 구매 가능해
호텔마다 가격도 8배까지 차이
페트병 생수도 여전히 무상제공
일회용품 금지라는 목적 무색해
숙의 없는 환경 보호 정책의 결말
'환경 보호'란 미명으로 호텔의 '일회용 어메니티' 무상제공을 금지했다. 일명 재활용법을 근거로 삼아서다. 그렇게 5개월, 환경은 잘 보호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고급호텔 대부분은 무상으로 주던 '일회용 어메니티'를 고가에 판매하고 있다. '환경 보호'란 정책 효과도 반감된 지 오래다. 일회용 칫솔은 막았지만, 일회용 생수는 버젓이 무상 제공한다. 탁상행정의 볼썽사나운 결과물이다.
고객을 위해 무료로 제공했던 일회용 어메니티(amenity·편의용품)가 올 3월 29일부로 자취를 감췄다. 정부가 50객실 이상의 호텔 등 숙박업소에서 일회용품 무상제공을 금지한 결과다. 근거는 '자원절약재활용촉진법(재활용법)' 개정안 제10조 1항이다. "사업자는 일회용품이 생분해성수지제품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을 억제하고 무상으로 제공하지 않아야 한다."
개정한 재활용법의 목적은 폐기물 발생을 줄여 환경을 보호하자는 거다. 이를 어기는 호텔에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무상 제공 금지 대상 물품은 칫솔·치약·샴푸·린스·면도기 5종이다. 유상 판매만 가능하다.
이번 조치에 따라 롯데호텔앤리조트(롯데호텔), 조선호텔앤리조트(웨스틴조선), 호텔신라(신라호텔), 그랜드하얏트를 비롯한 국내 호텔은 샴푸·바디샤워·린스 등을 일회용 어메니티 대신 대용량 디스펜서로 교체했다. 칫솔·치약·면도기는 필요 시 프런트, 호텔 내 자판기 또는 편의점, 객실 내 미니바 등에서 구매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는 도통 알 수 없다. 고가 논란에 탁상정책이란 비판까지 곳곳에서 쏟아져서다. 무엇보다 호텔에서 판매하는 일회용품 가격이 지나치게 고가다.
주요 특급호텔의 사례를 살펴보자. 롯데호텔서울은 칫솔과 치약을 각각 2200원, 3300원에 판매하고 있다. 면도기는 6600원, 셰이브젤은 3300원이다. 웨스틴조선서울에서 판매 중인 면도키트는 8000원, 칫솔세트는 4000원이다. 신라호텔은 총 9개 제품을 키트세트로 묶어 3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특급호텔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4성급 글래드호텔앤리조트(글래드호텔)는 칫솔세트와 면도기를 각각 2500원, 1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호텔 내 자판기에서도 구매가 가능한테 이 경우에는 두 제품 모두 8000원으로 값이 더 나간다. 조선호텔앤리조트(레스케이프호텔)는 칫솔세트는 4000원, 면도키트는 8000원에 판매 중이다.
무상으로 제공하던 어메니티가 사라졌다는 건 호텔이 비용을 절감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호텔들이 어메니티를 또 다른 수익원으로 삼은 셈이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점도 있다. 정부가 호텔에서 일회용 어메니티 무상제공을 금지한 건 '환경 보호'를 위해서다. 하지만 일회용품을 호텔 프런트·자판기·미니바 등에서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 구매한다면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무상으로 쓰던 걸 소비자가 구매해서 사용하는 데 그칠 수 있어서다.
호캉스·여행 등으로 호텔을 자주 이용한다는 20대 직장인 이자경씨는 "정책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부분을 숙의하지 않은 듯하다"고 꼬집었다. "어메니티의 무상제공을 막으면 모든 게 끝인가요? 환경 보호라는 정책의 취지가 지켜지려면 규제의 폭을 넓히든 페널티 규정을 만들든 어떠한 조치가 필요할 텐데, 그런 게 없어요. 정책을 만든 사람들이 그저 '어메니티 무상제공만 막자'는 생각을 한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일회용 어메니티 무상제공 금지가 '탁상행정'의 결과물이란 건데,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난 '모순적 상황'도 있다. 무상으로 일회용 어메니티를 제공할 수 없는 호텔이 정작 페트병에 든 생수는 공짜로 준다는 거다. 몇몇 호텔은 "정수기를 설치해왔다"고 주장했지만, 과대포장에 가깝다. 익명을 원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정수기를 설치한 객실도 있지만 고객이 요청하면 페트병 생수를 함께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영애 인하대(소비자학) 교수는 "일회용품 줄이기 자체가 정책의 목표인데 호텔 내에서 일회용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면 전형적인 '탁상행정'에 그칠 수 있다"면서 말을 이었다. "환경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고 싶다면 무상 제공 금지를 넘어서 일회용품 판매 자체를 금지하는 게 맞다. 어메니티만 막고 페트병을 주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책은 연계성을 갖춰야 한다. 어메니티의 무상 제공을 막았다면, '페트병에 든 생수'도 주지 못하도록 했어야 한다. 그래야 환경 보호란 정책의 취지에 부합한다. 하지만 우리 정책에 연계성 따윈 없다. 호텔 일회용 어메니티 금지가 남긴 불편한 자화상이다.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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