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 기로' 왓챠, 왜 '韓 스포티파이'가 되지 못했나 [엔터코노미]
이해정 기자 2026. 5. 11. 10:23

토종 OTT 플랫폼 왓챠가 결국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앞서 예비입찰 단계에서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던 CJ ENM, 키노라이츠 등이 본입찰에서 이탈하며 공개매각은 최종 유찰됐다. 지난달의 '핫딜'이었던 매각 절차는 결국 달을 넘겼고, 그 온도마저 사그라든 모습이다. 한때 한국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시초이자 미래로 꼽혔던 왓챠가, 이제는 누구도 선뜻 품기 어려운 플랫폼이 됐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안긴다.
일단 수사를 다 걷어내고, 인수 후보 기업들이 투자를 철회한 배경엔 냉정한 숫자가 있다. 2024년 말 왓챠의 누적 결손금은 2670억원, 자본총계는 -875억원으로 자본보다 부채가 많은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물론 완전자본잠식 상태 자체가 인수 불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국내 기업 구조조정 역사에서도 대규모 부실기업이 새 투자자를 만나 회생한 사례는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하이닉스반도체다. 다만 제조업 기반 기업과 달리 OTT는 유형자산보다 가입자·콘텐츠·플랫폼 경쟁력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회생 조건이 훨씬 까다롭다는 분석이다.
왓챠 월간활성화이용자수(MAU)는 2022년 130만명 수준에서 올해 들어 30만명대로 떨어졌고, 한때 3000억원을 넘었던 기업가치 역시 100억원 내외로 평가된다. 이마저도 유력 원매자들이 외면한 현재 상황에서는 업계의 동의를 얻기 힘들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하이닉스가 공장·설비·기술·생산라인 같은 국가 기간산업급 제조업 자산이 있던 것과 비교해, 왓챠는 '회생 성공'의 전제가 되는 독점 자산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인수 후보들 역시 실제 실사 단계에서 왓챠의 부채·콘텐츠 비용·추가 투자 부담을 인지하고 본입찰에서 등을 돌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위기를 단순히 왓챠의 자금 부족으로만 설명하면 문제의 핵심을 놓친다. 왓챠는 원래도 자본이나 콘텐츠를 가장 많이 가진 플랫폼이 아니라, 이용자의 취향을 가장 잘 이해하는 플랫폼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비교 대상이 바로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다.

두 플랫폼은 추천 기술을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웠고, 단순 인기 순위보다 개인 취향 분석에 집중했으며, 데이터 기반 큐레이션으로 충성 이용자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로 꼽혔다.
영화 팬들 사이 '넷없왓있'(넷플릭스엔 없고 왓챠엔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왓챠의 경쟁력은 최신 화제작이 많은 플랫폼이 아니라, 취향을 찾아주는 공간이었다. 스포티파이 역시 음원 자체보다 취향을 발견하는 경험에 집중했다. 어떤 곡을 끝까지 듣는지, 언제 넘기는지 등 행동 데이터를 대규모로 축적해 'Discover Weekly', 'Daily Mix' 같은 개인화 추천 서비스를 만들어 플랫폼 체류 시간을 늘렸다. 음원 보유량만 놓고 보면 애플뮤직, 유튜브뮤직과 같은 경쟁사와의 차이가 절대적이지 않은데도, 글로벌 단일 플랫폼 기준 최대 가입자 규모를 확보한 이유다.
물론 스포티파이의 전략을 왓챠에 동일하게 적용하기엔 시장의 차이가 존재한다. 음악 소비 빈도는 영상보다 압도적으로 높으며, 한 곡을 듣는 데 짧은 시간이 소요돼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는 부담도 상대적으로 낮다. 그만큼 추천 알고리즘이 개입할 여지가 크고, 이용자가 플랫폼이 제안하는 플레이리스트를 소비할 가능성도 높다. 반면 영화나 드라마는 한 작품에 1시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실패했을 때 피로감도 크다. 이용자들이 자연스럽게 검증된 작품이나 화제작, 대형작으로 몰리는 경향이 강해지는 배경이다.
또 영상이 음원에 비해 콘텐츠 제작비 부담이 크고, 넷플릭스 같은 초대형 사업자와 정면 경쟁했어야 한다는 점도 왓챠엔 불리한 지점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왓챠에는 '넷플릭스와는 다른' 전략이 더 중요했을 수 있다.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처럼 가입을 유도할 정도로 대형 IP를 보유한 넷플릭스와 수백억 규모 제작비 경쟁을 벌인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왓챠는 이 구조적 약점을 타개할 추천과 큐레이션이라는 명확한 차별점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퇴근 후 가볍게 볼 수 있는 100분 영화', '비 오는 밤 혼자 보기 좋은 스릴러', '봉준호 감독 팬이라면 좋아할 해외 영화'처럼 감정과 상황 중심으로 콘텐츠를 탐색하게 만드는 경험은 충분히 왓챠만의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콘텐츠를 가장 많이 가진 플랫폼이 아니라, 무엇을 봐야 할지 가장 잘 알려주는 플랫폼이 되는 전략이다.

실제 글로벌 시장에서도 초대형 사업자와 정면승부를 피하며 살아남은 플랫폼들은 존재한다. 공포영화 전문 OTT 셔더(Shudder), 애니메이션 특화 플랫폼 크런치롤(Crunchyroll), 예술영화 중심 크라이테리언 채널(The Criterion Channel) 같은 서비스들은 모두 넷플릭스처럼 되려 하기보다 특정 취향을 깊게 파고드는 전략을 택했다.
반면 왓챠는 어느 순간 넷플릭스식 종합 OTT 전략으로 방향키를 돌렸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투자했고, 대중형 드라마와 예능 확보 경쟁에도 뛰어들었다. 일부 성과는 있었으나 그 작품 때문에 왓챠의 구독을 유도하거나 유지하게 만드는 힘은 부족했다. 비용은 들고, 성과는 미진하고, 동시에 영화 마니아와 큐레이션 기반 이용자들에게는 예전만큼 날카로운 플랫폼도 아니게 됐다. 모두를 위한 OTT가 되려다, 정작 자신을 가장 사랑하던 이용자들에게 특별한 플랫폼이 아니게 된 셈이다.
결국 왓챠의 위기는 단순히 대작이나 자본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자신만이 가장 잘할 수 있던 영역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콘텐츠 과공급이 오히려 소음과 피로로 느껴지는 지금, 콘텐츠를 발견하게 만드는 왓챠는 오히려 두각을 드러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장은 왓챠가 다시 '왓챠다움'을 증명할 시간을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이해정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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