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명사. 1. 소스 보트 2. 그레이비 보트 【예문】서빙돼 나온 소스 보트의 이름을 아느냐고 소개팅 상대에게 물었다. 망했다.
소스 보트(sauce boat)다. 그레이비 보트(gravy boat)라고도 한다. 작은 배처럼 생겨 소스를 담는 식기로, 보트라는 이름 역시 작은 배 모양의 외관에서 온 것이다. 도자기, 은, 스테인리스스틸, 유리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든다. 한국에서는 주로 카레 전문점에서 목격된다.
뱃머리처럼 생긴 주둥이 부분을 통해 소스를 직접 음식 위에 부을 수 있지만, 정작 붓고 나면 주둥이 부분을 타고 흘러내리는 소스를 주체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카레처럼 점성이 높고 건더기가 많은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덕분에 소스 보트를 쓰는 카레 전문점에서는 앞 접시로 옮겨 담을 때 쓰도록 별도의 숟가락을 주는 경우가 많다. 우비를 입고 그 위에 우산을 쓰는 느낌이다.
현대적인 형태의 소스 보트는 17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최초로 등장한 이래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주요 도자기 업체의 주요 생산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본류를 따지면 유럽 태생이지만, 한국에서 만큼은 카레 그릇 ‘그거’다. 카레와 소스 보트가 엮인 이유를 찾다 보면 파란만장한 카레, 커리의 수천 년 역사와 대항해시대 신항로들을 죄다 더듬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여정을 탐구한 사람이라면, 카레는 시대와 국경과 언어를 넘나드는 험난한 과정에서 길을 잃고(lost in translation) 말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태초에 카리가 있었다. 영단어 커리(curry)의 어원인 타밀어 카리(கறி)는 ‘국물’ ‘소스’를 뜻하는 단어다. 인도에서는 여러 향신료를 배합해 요리에 사용하는데, 이 같은 혼합 향신료를 마살라(मसाला)라고 한다. 마살라에 쓰이는 주요 향신료만 살펴봐도 육두구, 강황, 회향, 고추, 팔각, 계피, 정향, 생강, 마늘, 레몬그라스, 고수, 고수씨, 라임, 월계수 잎, 흑후추, 백후추 등 다양하다. 인도와 남아시아에서 커리는 흔히 생각하는 ‘노란색 카레’가 아니라 각종 식재료에 마살라를 넣어 끓인 음식을 뭉뚱그려 부르는 이름이다. 즉, 커리는 특정 음식의 이름이 아닌 향신료가 쓰인 모든 요리를 뜻하는 광의(廣義)의 개념이다. 인더스 문명 때부터 먹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카리가 커리가 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서구 열강이 인도에 진출하기 시작한 17세기 한 영국인이 인도 민가에서 해 먹는 음식의 이름을 묻다가 착각했다는 설, 인도 고아 지역에 거점을 마련한 포르투갈인들이 현지 스튜를 카릴(karil)이라고 부른 데에서 유래했다는 설, 남부 인도에서 먹던 채소·고기를 기름에 볶은 매콤한 요리 카리(kari)에서 비롯됐다는 설 등이 득세하고 있지만 진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우리가 접하는 인도 커리는 사실 영국식 커리다. 식민지 시기 인도에 거주하던 영국인들은 그들의 입맛에 맞게 스튜 형태로 변화시킨 커리를 즐겨 먹었다. 1772년 동인도 회사 소속의 워런 헤이스팅스가 인도의 마살라와 쌀을 본국에 갖고 온 이래, 커리는 영국 상류층이 즐기는 음식으로 인기를 끌었다. 도자기로 만든 고급 식기 소스 보트가 커리와 만나게 된 이유다. 참고로 이 ‘커리 전도사’ 워런 헤이스팅스(1732~1818)는 영국 동인도 회사의 직원으로 출발해 인도 벵골 지사, 벵골 초대 총독, 초대 인도 총독 자리에 오르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물론 식민지 인도 입장에서는 민중을 수탈한 악독한 인물이겠지만 지금은 커리에만 집중하자.
원래 인도의 마살라는 정형화된 향신료가 아니다. 한국의 장(醬)맛처럼, 집 마다 사람 마다 재료와 배합 비율이 다르다. 그런 자유분방함이 마살라의 매력이지만, 영국에서는 그저 커리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18세기 영국을 지배했던 규격화·표준화·대량생산의 거센 파고는 커리에도 덮쳤다. 1780년대 영국 식품회사인 크로스 앤드 블랙웰(C&B)가 주요 향신료를 배합한 커리 파우더를 세계 최초로 개발·판매하면서 커리는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특히 영국식 커리는 19세기 영국 해군의 승조원 급식으로 인기를 끌었다. 조리법이 단순한 덕도 있지만, 상태가 영 좋지 못한 식재료의 냄새와 맛을 가리는 데에 커리의 강한 향신료가 제격인 탓이다. 예나 지금이나 선진 병영 급식은 요원하다.
치킨 티카 마살라(chicken tikka masala)는 아예 영국에서 탄생한 인도 커리다. 1960년대 영국의 인도 요리 전문점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닭고기 조각에 향신료와 요거트를 바른 뒤 화덕에 구워낸 치킨 티카와 토마토·크림을 가미한 치킨 커리, 이 두 가지를 조합한 음식이다. 인도의 버터 치킨 커리와 비슷하다. 치킨 티카 마살라는 영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며 순식간에 커리 대표 메뉴로 등극했다.
2001년 영국의 로빈 쿡 외무부 장관은 “치킨 티카 마살라야말로 진정한 영국의 국민 음식”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치킨 티카 마살라는) 영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음식일 뿐만 아니라, 영국이 다른 문화를 흡수해 적응한 방식을 완벽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덧붙였다. 제국주의 열강이었던 영국이, 자신이 침탈한 식민지 식문화를 ‘흡수하고 적응했다’라며 국민 음식으로 정의 내린 것이다. 좋게 말하면 심정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주장이고, 솔직히 말하면 양심의 출타 여부를 묻게 되는 상황이다.
이제 무대는 일본으로 넓어진다. 1853년 미국의 매튜 페리 제독이 4척의 군함 ‘흑선(黑船)’을 끌고 일본 우라가 항에 입항한 흑선내항(쿠로후네) 사건을 계기로 에도 막부는 개항을 결정했다. 이듬해 미일화친조약을 시작으로 네덜란드·러시아·영국·프랑스와 잇따라 굴욕적인 통상 조약을 체결한 막부는 권위와 통제력을 상실했고, 막부 타도를 외치는 반대 세력이 융성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일련의 흐름은 19세기 중후반 일본 근대화를 안착시킨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진다. 대체 언제 카레 얘기가 나오나 싶다. 이제 나온다.
일본 해군 군의총감 다카키 가네히로(高木兼寛 1849~1920)는 1883년 흰 쌀밥 위주의 식단이 각기병에 취약하단 사실을 발견한 인물이자 일본식 카레(カレー·커리의 일본식 발음)의 산파다. 영국 유학파 출신의 군의관인 다카키는 승조원 식단 개선을 통해 각기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판단, 영국 해군 승조원 급식을 참고해 빵과 육류 위주의 양식과 보리밥·잡곡밥의 혼분식(混粉食)을 도입했다. 1884년 다카키의 개선 식단을 도입한 함정에서 장기간의 항해에도 불구하고 각기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자, 해군은 군 전체의 식단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삼시세끼 귀한 흰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것이 유일한 위안이자 특권이었던 사병들에게 이 같은 조치는 식단 개선이 아닌 개악이었다. 낯선 양식에 대한 거부감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밥 대신 받은 빵을 도저히 먹을 수 없어서 바다에 버리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고심하던 해군은 쌀밥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일본식 카레를 고안해낸다. 빵을 찍어 먹는 스튜 방식의 영국식 커리를 쌀밥에 부어 먹는 걸쭉한 소스 형태로 바꾸고 고기와 채소 등 건더기를 가미한 ‘카레라이스’는 해군·해상자위대의 주말을 책임지는 전통의 고정 메뉴가 됐다. 다카키 가네히로의 별명은 ‘보리밥 남작’이었는데, 보리밥 혼분식을 장려했던 그의 업적도 업적이거니와 1905년 남작 작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카키 ‘카레’히로가 더 적합하지 않나 싶지만.
카레가 군대 급식을 넘어 일본의 국민 가정식이 된 데에는 패망 이후 퇴역한 군인들이 ‘짬밥’ 카레를 못 잊어 고향에 가게를 낸 영향도 있고, 일본식 카레 파우더가 상용화된 덕도 있다.
1923년 카레 마니아인 야마자키 미네지로(山崎峯次郎)는 일본식 카레 파우더를 개발·상품화하며 히가시야를 창업한다. 이후 1930년에 출시한 가정용 히도리표카레가루(ヒドリ印カレー粉)가 태양과 새를 모티프로 삼은 점에서 착안, 이듬해 아예 사명을 포켓몬 게임 시리즈 타이틀 같은 선 앤드 버드(S&B·에스비식품)으로 바꾼다. 아무리 봐도 영국 커리의 시조 격인 크로스 앤드 블랙웰(C&B)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지만, 본인이 아니라고 하니 넘어가자.
1926년 하우스식품의 전신 우라카미 상점도 카레 가루를 만들었고, 이후 에스비식품은 고체 블록 카레를 내놨다. 매운맛을 덜어내고 사과와 벌꿀을 넣어 달콤한 맛을 더한 바몬드 카레는 하우스식품이 1963년에 출시한 히트 상품이다. 바몬드 카레는 원산지인 일본에서는 바몬토 카레로 부르는데 미국 버몬트주에서 따온 이름이다. 1950년대 버몬트주에 살던 의사가 주창한 “사과식초와 벌꿀을 섞어 마시면 무병장수한다”라는 내용의 버몬트 건강 요법이 일본에서 유행했었는데, 이 건강 요법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것이 바로 이 바몬토 카레다.
이제 한국 카레 차례다. 우리나라에 카레가 처음 소개된 시점은 일제강점기 시기다. 카레라이스 혹은 라이스카레는 1930년대 백화점 식당에서 파는 ‘서양 점심’ 난찌(런치의 일본식 발음) 대표 메뉴였다. 미쓰코시 백화점 4층 식당가에서 1원50전짜리 양식 세트를 사 먹기 위해 모여든 경성 모던보이·모던걸에게 카레는 인도 음식이 아닌 고급스러운 양식이었다.
해방 이후 일본과 수교를 단절한 한국은 미국에서 커리 파우더를 수입했는데, 문제는 한국인 입맛에는 도통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후 몇몇 업체에서 국내에서 직접 카레 가루를 생산하면서 한국 카레는 독자노선을 걷게 된다. 국내 최초의 카레 타이틀을 가져간 것은 제일식품화성주식회사에서 1963년 내놓은 ‘스타 카레분’이다. 1969년 오뚜기가 회사 설립과 함께 출시한 ‘오뚜기 즉석 카레’는 한국식 분말 카레를 정립한 제품이다. 1981년 출시한 레토르트 식품 ‘오뚜기 3분 카레’도 카레의 대중화에 한 몫을 했다. 볶은 양파와 브라운루를 베이스로 해 갈색을 띠는 일본식 카레와 달리, 강황의 비중을 높인 오뚜기 카레는 노란색이다. 한국인의 기억 속 카레가 노란색인 이유는 오롯이 오뚜기의 공이다.
소스 보트 하면 카레, 카레 하면 소스 보트가 떠오르는 인식도 대략 이 시기에 정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뚜기의 옛 TV 광고를 보면 소스 보트에 담긴 카레를 밥 위에 붓는 연출이 종종 나오는데, 가정에서 간편하게 만들어 먹는 음식일지라도 차림 과정에서 고급 외식의 이미지를 빌리려는 의중으로 보인다. 라면 포장지에 칼집 넣은 표고버섯과 어슷썰기 한 대파, 익지도 않은 계란 노른자가 다소곳이 올라간 조리 예와 비슷한 접근 방식이다.
매콤한 맛과 강황, 노란색, 큼지막한 돼지고기와 감자 고명 등이 특징인 한국 카레는 인도의 커리, 영국식 커리, 일본의 카레와는 다른 정체성을 확립하며 어린 시절의 추억 한편을 차지했다. 영국과 일본을 거치며 본토의 매운맛을 잃어버린 인도 커리가 한국에서 다시금 매운맛을 되찾은 점이 재미있다. 하루쯤 지나 맛이 깊어진 엄마표 카레에 신김치를 곁들이면 도저히 저항할 수 없다.
카레 아니 커리의 여정은 한국에서 끝나지 않았다. 기원전부터 이어진 향신료 무역, 15세기 대항해시대에서 근대식민주의·제국주의 시대로 이어지는 범세계적 교역 활동은 인류의 세계관을 확장했고, 연관된 모든 국가의 문화와 역사와 경제를 뒤섞고 뒤흔들고 재정립했다. 커리도 마찬가지다.
인도 상인들이 동남아시아 지역에 전파한 인도 요리는 독자적인 커리 요리로 이어졌다. 인도계 이주민들이 정착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도·파키스탄 출신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커리는 일상의 풍경으로 침투했다. 지구상의 모든 대륙에 식민제국을 건설했던 초강대국 대영제국이 영향력을 행사한 모든 국가도 마찬가지다.
커리는 전세계의 음식이 됐다. 태국의 뿌 팟 퐁 까리,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길거리 음식 로티, 싱가포르의 피시 헤드 커리, 모리셔스의 달푸리, 독일의 서민 음식 커리부어스트(독일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길거리 먹방을 하는 메뉴다), 스리랑카의 람프라이스, 피지의 생선커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패스트푸드 버니 차우. 이처럼 커리는 문화권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해 사랑받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 각국의 커리들은 본류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완전히 다른 음식으로 진화했다. 일례로 국내에도 입점해 있는 일본식 카레 전문점 코코이찌방야는 2020년 인도 뉴델리에 첫 매장을 열었고 현재 3개의 인도 현지 매장을 운영 중이다.
서두에 꺼냈던 말을 거둘 차례다. 카레에 대해 ‘시대와 국경과 언어를 넘나드는 험난한 과정에서 길을 잃고(lost in translation) 말았다’라고 성급히 결론을 내렸지만, 카레는 통번역의 대상이 아니다. 불변의 정체성이나 의미가 있어 상대에게 이해시켜야 하는 존재가 아니란 뜻이다. 본디 커리가 향신료가 쓰인 모든 요리를 뜻하는 말이었던 것처럼, 카레는 문화권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고 독자적인 개성으로 자리 잡은 요리를 총칭하는 개념이다. 냉장고의 무슨 재료든지 특유의 풍미로 품어 버리는 카레의 포용성은, 시대와 국경과 언어를 넘나들며 당대의 식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릴 때도 발휘된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2005)에서 주인공 발리앙과 살라딘이 주고받은 문답이 떠오른다. “예루살렘이 뭐란 말입니까?”라는 질문에 이슬람 지도자 살라딘은 “아무것도 아니라네. (Nothing)”라고 대답하고 돌아선다. 그렇게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가는 듯 했던 살라딘은 다시 돌아서며 외친다. “모든 것이기도 하지! (Everything!)”
영국풍 인도 커리를 벤치마킹한 일본 카레가 한국에서 노란색 강황 카레로 자리 잡았다. 카레는 길을 잃은 적이 없다. 발길 닿는 모든 길을 카레 색으로 물들이며 탐험하고 개척했을 뿐이다. 카레는 아무것도 아니고, 동시에 모든 것이다.
다음 편 예고 : 거꾸로 읽고 세로로 읽고 말장난하는 ‘그거’
[그거 사전]이 책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지난해 11월 귤에 붙어있는 하얀 그거 귤락에서 출발해 카레 전문점 램프 그거 소스 보트까지 38편을 연재하며 독자 여러분의 과분한 애정과 관심을 받은 덕분입니다. 연재분을 포함해 아직 소개하지 못한 76개의 ‘그거’를 담았습니다. 연초 다리 골절로 3개월 시즌 아웃을 당했을 때까지만 해도, 대체 어떤 행운이 찾아오려고 이렇게 강도 높은 액땜을 하나 - 싶었는데 이렇게 출간까지 하게 됐습니다. (아쉽게도 로또 당첨은 아니었습니다) 댓글을 보며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도 했고, 말글로 먹고사는 직업이 부끄럽게도 오탈자와 오류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공감하는 댓글을 보며 연재를 계속할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과 소통하며 ‘이름 모를 사물들을 위한 안내서’를 조금씩 완성해가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