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꼭 필요한 외출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사람, 집에 있어도 집이 그리운 사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데 이런 ‘파워 집순이’가 요즘 들어 집 밖으로 나서는 일이 늘었다. SNS에서 ‘피크민 블룸’을 추천받아 플레이하고 나서부터다.
지금 X(구 트위터)를 비롯해 각종 SNS에서 가장 핫한 ‘피크민 블룸’은 닌텐도와 나이언틱이 개발한 증강현실 모바일 게임이다. 지난 2001년 출시되어 두터운 코어 팬을 보유한 닌텐도의 비디오 게임 시리즈 ‘피크민’을 활용했다. 캐릭터는 동일하지만 게임 스토리는 약간 다르다. 피크민 시리즈는 알 수 없는 행성에 불시착한 주인공이 그 행성의 생명체인 피크민과 만나 적과 전투를 치르는 등 모험을 펼치는 이야기라면, 피크민 블룸은 식물 모종으로부터 피크민을 탄생시켜 여러 종류의 캐릭터를 수집하고, 꽃을 심거나 과일과 모종을 모으는 게임이다.

피크민 블룸은 ‘걷기를 즐겁게 하자’라는 목표로 만들어졌다. 즉 게임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선 반드시 산책을 해야 한다. 지도가 그려져 있는 게임 앱을 실행하고 걷다 보면 피크민 모종을 줍거나 먹이인 '정수'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얻은 모종에 싹을 틔우는 방법 역시 산책이다. 모종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최소 1000 걸음에서 최대 1만 걸음을 걸어야 싹을 틔워 피크민을 탄생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 많은 피크민을 만나 무리를 형성하고 싶다면 꾸준히 오래 걸어야 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플레이어를 사로잡은 피크민 블룸의 매력은 뭘까. 직접 플레이 해본 결과, 그 답은 ‘단순함’이었다. 일반적으로 게임을 진행하려면 캐릭터 진화를 위해 능력치를 자세히 알고 있거나 각종 배틀에 참여해야 하지만, 피크민 블룸은 산책을 제외하곤 플레이에 대한 부담이 거의 없다. 애써 시간을 투자하거나 캐릭터를 이리저리 움직여 조작할 필요도 없어 피로도가 매우 낮다. 먼 곳에 있는 모종이나 정수를 구할 때도 피크민들을 보내 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고, 게임에 자주 접속하지 않아도 걸음 수를 카운팅해 자동으로 꽃을 심고 모종 새싹을 틔워 준다.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잘 크는 방치형 게임과 비슷하다.
플레이를 위해 복잡한 룰을 숙지할 필요도 없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었다. 복잡한 세팅은 게임을 처음 플레이하는 ‘뉴비’에게는 진입 장벽이 된다. 피크민 블룸은 캐릭터 주변에서 빛나고 있는 꽃을 터치해 아이템을 얻거나, 모종을 심어 피크민을 탄생시키고, 가끔 한 번씩 접속해서 이들이 모아 온 정수를 채집하기만 하면 된다. 게임 관련 사전 지식이 전무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다.
게임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재미 요소들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다. 캐릭터를 설정한 뒤 걷거나 달리면, 여러 마리의 피크민이 종종걸음으로 함께 달려 준다. 화면을 터치할 때마다 깜짝 놀란 듯 반응하는 피크민의 모습도 귀엽다. 매일매일 얼마나 걸었는지, 기분은 어땠는지 기록하는 라이프로그 기능도 있어 일상을 특별하게 보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건 탐험 기능이었다. 모종과 정수를 얻기 위해 탐험을 떠난 피크민이 돌아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실제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강남구에서 중랑구까지 탐험을 보내려면 3~4시간이 넘게 소요되기도 한다. 탐험에서 돌아온 피크민은 아이템과 함께 종종 엽서를 가져온다. 엽서에는 탐험을 나갔다가 수집한 실제 거리 사진이 붙어 있다. 강남 어딘가의 조각상 사진, 청담동 아파트단지의 놀이터 사진 등 다양한 엽서를 수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타 지역, 혹은 해외에 있는 유저와 친구를 맺을 수 있다는 점도 재미 요소다. 풍경이 담긴 엽서를 교환하거나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는데, 친구와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 피크민이 몇 날 며칠 동안 걸어서 엽서와 선물을 배달한다. 탐험을 통해 엽서를 얻고, 배달을 보내기 위해서는 여러 마리의 피크민이 필요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걷게 된다.

매력 포인트가 많지만,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운전 중에 게임을 실행하거나 게임 화면만 보며 걸으면 사고의 위험이 있다. 실제로 게임을 실행할 때도 ‘위험한 곳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운전 중에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뜬다. 또 백그라운드에서 GPS 실행 상태를 유지할 경우 배터리가 매우 빠르게 소모되거나 발열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 플레이하지 않는 상황에선 위치 공유를 일시적으로 중지하는 것도 방법이다.
위치 기반 서비스를 연동하고, 실제 주변 거리 사진과 건물 이름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엽서 전송 등을 통해 플레이어의 현 위치나 거주 지역을 특정할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 게임 화면을 인터넷에 업로드할 때는 지역명을 가리고, 타인과 친구를 맺거나 엽서를 주고받을 때에도 활동 반경이 특정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피크민 블룸을 시작한 뒤부터 집 밖으로 나가 걷는 시간이 조금씩 늘었다. 귀여운 피크민들과 함께 걸으니 삭막한 출근길도 아름다워졌다. 걷기 운동을 조금 더 재미있게 하고 싶다면, 피크민 블룸을 시작해 보자. 산책이 한 층 더 즐거워질 것이다.
ㅣ 덴 매거진 2024년 Online
에디터 김보미 (jany6993@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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