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료 2년새 3배 껑충 … 中企 "원가 부담에 수주 엄두도 못내"

고재만 기자(ko.jaeman@mk.co.kr) 2023. 5. 2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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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요금 후폭풍 ◆

"가스요금이 최근 2년 동안 3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중국·일본과 경쟁해야 하는데 원가경쟁력이 떨어져서 수주를 못하고 있어요. 이건 사업하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입니다."

부산에 위치한 한 중소기업 대표 A씨의 절절한 하소연이다. 단조철강을 중심으로 풍력발전 설비를 만드는 A대표의 회사는 전기가 아닌 도시가스로 쇠를 다루는 설비를 돌린다. A대표는 "가스요금이 올랐다는 보도를 자주 접하는데 모두 가정용 얘기"라며 "그러나 진짜 문제는 산업용 가스요금 폭등"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금리도 오르고 원자재값도 오른다고 3고(高) 위기다, 복합 위기다 하는데 그건 일도 아니다"며 "적자를 내는 수준이 아니라 높아진 가스비 탓에 원가경쟁력이 낮아져 해외에서 일감을 못 따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A대표의 회사는 2020년 가스요금으로 15억원가량을 냈다. 그러나 작년에는 45억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도 2021년 71억원 흑자로 전환했지만, 작년에는 고작 5억원 흑자를 내는 데 그쳤다. 원자재값 상승 영향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가스요금 인상 때문이었다.

실제 2020년 말 대비 산업용 도시가스 소매가격은 지난해 말 188% 이상 치솟았다. 지난겨울 '난방비 폭탄'을 유발했던 가정용 가스요금은 같은 기간 38.4% 상승했다. 산업용 가스요금 인상폭이 가정용의 5배에 육박하는 셈이다. 같은 기간 산업용 전기요금이 36% 상승한 것과 비교해도 산업용 가스요금 증가폭은 매우 크다.

그나마 올해 들어 국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내려가면서 산업용 가스요금이 소폭 인하됐지만 여전히 2020년 말 대비 120% 이상 비싼 수준이다.

산업용 가스요금이 급등하면서 가정용의 2배를 웃도는 이례적인 현상까지 발생했다. 현재 산업용 가스요금은 메가줄(MJ)당 30원 수준으로, 가정용(MJ당 15원대)의 2배에 달한다. 반면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영국의 산업용 가스요금은 가정용의 48% 수준이다. 프랑스는 43%, 독일은 32%로 주요 선진국 기업은 가정의 절반 수준 가격에 가스를 쓰고 있다.

한국에서만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은 원료비 연동제 때문이다. 국내 가스요금은 원료비 연동제가 적용돼 국제 LNG 가격 추이를 반영해 정해지는데, 2021년 3월부터 가정용은 유예되고 산업용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은 민생 안정, 인플레이션 우려와 함께 한국가스공사의 심각한 누적 적자(미수금)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국제 LNG 가격이 폭등한 게 직격탄을 날렸다. 국제 LNG 가격 폭등 영향을 기업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셈이다.

충청북도 진천군에 위치한 주물·열처리 뿌리기업 B사 상황은 더 심각하다. B사 관계자는 "연 매출액이 200억원 수준인데 작년에 가스요금만 25억원에 달했다"며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의 원가 비중이 50%에 육박하면서 사실상 수주 경쟁력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 인력 구조조정을 생각해 볼만도 하지만 그럴 수도 없다. B사 관계자는 "지방에 있는 중소기업이라 인력난이 심각해 어렵게 구한 직원을 내보낼 수도 없다"며 "회사가 적자를 떠안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A대표는 급격한 가스요금 인상이 정치 논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A대표는 "정부가 표가 많은 가정용 요금은 찔끔찔끔 올리면서 만만한 산업용 요금은 기업이 고사할 정도로 급격히 올리고 있다"고 작심 비판했다. 이어 그는 "아무리 한국전력과 가스공사의 적자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급격하게 요금을 올리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A대표는 "코로나19가 끝나서 다시 일을 좀 하려고 하는데 일감을 못 따오니 있는 사람도 내보내야 할 판"이라며 "이런 식이면 경제를 못 살린다"고 일침을 가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설문조사 결과 중소기업 중 94%가 가스·전기요금의 급격한 인상이 기업 경영에 부담이 된다고 응답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산업용 LNG에 적용되는 개별소비세(요금의 3%, kg당 42~60원)를 법 개정을 통해 면제해주거나 발전용 LNG 개별소비세(kg당 12원) 수준으로 인하해 줘야 한다"며 "향후 정부가 가스·전기요금의 지속적인 인상을 예고한 가운데 원가경쟁력 유지는 물론 기업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산업용 가스요금 안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고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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