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유전의 영향이 크지 않은 것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모두 위암으로 잃은 이 씨는 건강검진에서 위에서 용종이 발견되자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3대째 위암이구나, 나도 결국 같은 길을 걸어가는 건가"라며 절망에 빠진 그에게 의사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유전적 요인보다는 식습관과 생활환경이 훨씬 중요합니다." 과연 우리의 건강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결정하는 숙명일까?

물론 암이라는 병 앞에서 우리는 종종 무력감을 느낀다. 특히 가족력이 있을 경우,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이기헌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암 발생에 유전이 끼치는 영향은 고작 5%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습관이다. 실제로 암 발생에는 흡연이 15~30%, 식습관과 음식물이 약 30%의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분명한 희망을 건넨다. 결국 건강을 결정짓는 주체는 유전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비만 역시 마찬가지다. 거울 앞에서 늘어진 뱃살을 바라보며 "아버지를 닮아서 어쩔 수 없어"라고 자위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소식은 더욱 명확하다. 전체 비만의 90%가 많이 먹고 덜 움직여서 생기는 일차성 비만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유전자 발현의 메커니즘이다. 비만 유전자를 타고났다고 해서 반드시 비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는 마치 잠들어 있는 씨앗과 같아서, 적절한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싹을 틔운다. 건강한 식습관과 규칙적인 운동이라는 토양에서는 비만 유전자조차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는 우리가 유전자의 주인이지 노예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현대 의학이 밝혀낸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을 요구한다. 질병 앞에서 체념하거나 운명론에 빠지는 대신, 매일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한다.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 퇴근 후 소파에 앉을지 산책을 나갈지 결정하는 순간순간이 사실은 우리의 건강을 좌우하는 결정적 기로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놀라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 첫째, 작은 변화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고, 달콤한 음료 대신 물을 마시는 것처럼 일상의 사소한 선택들이 모여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낸다. 둘째,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는 꾸준함에 집중해야 한다. 하루 이틀 실수했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서 건강한 선택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유전자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나, 건강 역시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결과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타고난 체질이나 가족력은 질병의 가능성을 품은 씨앗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씨앗이 자라날지 말지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현명한 정원사는 잡초가 무성해지기 전에 땅을 고르고 물을 조절하듯, 우리도 좋은 습관으로 질병이 뿌리내리지 못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 건강은 유전이 아닌 선택의 문제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 오늘 하루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어떤 습관을 만들어갈 것인지 결정할 권한이 온전히 우리에게 있다. 이제 유전자 탓을 하며 체념하는 대신, 오늘부터 다르게 살아갈 용기를 내어보자. 우리의 건강한 선택 하나하나가 모여 운명을 바꾸는 힘이 된다는 것을 과학이 이미 증명해 보였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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