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
우리 국민만 없는 '재판권'
근 이백 년 전에 미국의 민주주의를 관찰한 프랑스인 토크빌은 ‘한 사회의 실질적 주인은 범죄자를 재판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 따르면 국민이 주인인 정부, 곧 국민주권정부에서는 국민이 범죄자를 재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재판권이 없다. 사법적 재판권은 물론 형사사법 제반 절차의 중대한 요소인 수사권, 기소권 등에서도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거의 가지지 못했다.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가진 국가들은 물론 가까운 나라인 일본이나 대만까지도 근년에 이르러 일반 국민이 재판권을 가지게 되었는데, 대한민국 국민만 재판권이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 중에 일반 국민이 재판권을 가지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새로 들어선 ‘국민주권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한국은 형사사법 절차에 일반 국민의 실질적인 참여가 보장되지 못한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다.
국민참여재판이나 검찰수사심의위원회와 같은 시민의 참여가 보장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제도가 있지만, 이들의 결정은 모두 판검사가 판단하는 데 참고 사항에 불과하다. 미국의 배심원제처럼 실질적인 구속력을 지니지 못한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기소 배심제, 심리 배심제 외에 실질적 힘을 가진 검찰위원회, 시민판사제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과 대만에서는 각각 ‘재판원’ 또는 ‘국민법관’ 제도 등을 두어 형사사법 절차에 시민참여를 보장했다.
진정한 국민의 정부라면 제도로 보장해야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별칭은 ‘국민주권정부’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 이어, 주권자 국민의 뜻과 의지가 국정에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그런데 국민주권정부라는 말은 이미 ‘국민의 정부’에서부터 사용되었다 할 수 있다. ‘국민을 위한 정부’도 ‘국민에 의한 정부’도 아니고 ‘국민의 정부’라 했으니, 국민이 지배하는 ‘국민의 정부’는 어쩌면 ‘국민주권정부’를 넘어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국민의 정부’는 실질적으로 국민이 지배하는 정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다음 정부는 오히려 여기에서 후퇴하여 ‘참여정부’가 되었다.
‘국민의 정부’는 그 말뜻을 온전히 알지 못했고 ‘국민의 정부’를 그저 ‘국민을 위하는 정부’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나 한다. ‘참여정부’ 역시 참여의 참뜻을 몰랐던 듯하다. 선거권을 보장하고 형식적으로 국민의 뜻을 묻는 공청회나 몇 번 열면 그것으로 참여가 되었다고 여긴 듯하다.
진정한 국민의 정부라면 국민이 실질적 권리와 권력을 가져야 하며, 그것이 제도로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가 추운 겨울에 광장에 나갔던 이유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윤석열 정부에 들어와서 대한민국 체제의 실상이 훤히 드러났다. 대통령은 물론 주요 요직에 검사들이 대거 포진하여 ‘검찰정권’이 되었고, 검찰과 언론이 유착하여 여론을 주도하며 다스리는 ‘검언정권’이었다. 나중에는 여기에 사법부까지 가세하여 대한민국은 국민이 아니라 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하는 체제임이 드러났다.
주권자 국민에게 실질적인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 것은 '야광봉집회'였다. 이 집회는 세상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거꾸로 국민에게 실권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국민에게 실권이 있었다면 추운 겨울에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거리로 광장으로 나가 외칠 이유가 없다. 절차와 제도를 통해 표결하고 결정하면 그만인 일을, 실권이 없기에 권력을 가진 자에게 호소하고 저항하기 위해 거리로 나갔던 것이다. 이는 백 수십년 전 수만 명의 동학교도가 속리산 밑의 장내리 들판에 모여 조정에 호소하고, 또 서울 종로의 거리에서 만 명의 조선 백성들이 만민공동회의 이름으로 진정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언론시민주권도 보장되어야
주권자 국민에게 실권이 없음은 윤석열의 계엄 선포와 그 후속 처리 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우리 국민에게 결여된 권리는 크게 '사법시민주권'과 '언론시민주권'의 둘이다. 앞서 말한 사법시민주권 외에, 시민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 언론은 오랫동안 지배 엘리트의 일원인 족벌언론과 거대 자본에 의해 조종되는 언론에 지배되어 왔다. 다행히 근년에 온라인 시대가 열리면서 거대언론 중심의 지형이 흔들리고 있으나, 시민의 발언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언론 민주주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시민을 위해 마련된 공영언론이나 언론 관련 위원회는 지배 엘리트에 의해 장악되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요동하고 있으니, 독일처럼 공영언론의 운영에 일반 시민 다수가 참여하는 등의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직접 시민에 의해 운영되며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할 수 있는 상당한 규모의 시민언론기구가 설립되기를 희망한다.

사법시민주권과 언론시민주권은 이제야 비로소 민주주의에 나타난 말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원류인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 정치를 지탱하는 두 축은 이소노미아(isonomia)와 이세고리아(isegoria)였다. 모든 시민이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 그리고 모든 시민이 자유롭고 동등한 발언권을 가진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바탕이었다. 우리는 흔히 ‘법 앞에서의 평등’을 모든 소송 대상자가 재판관에게 동등하게 대우받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고대 아테네에서는 주로 모든 시민이 동등한 재판권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고대 아테네에서는 재판관은 물론 재판장까지 모두 시민 중에서 추첨으로 뽑았다. 그 정신이 현대에까지 내려와 배심원제, 시민판사제가 된 것이다.
실질적으로 국민이 다스리는 민주공화국
막 출범한 국민주권정부는 주권자 국민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어떻게 제도화할지 고민해야 한다. 일반 국민에게 '너희들은 그저 주어진 선거권으로 대통령, 국회의원이나 잘 뽑으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검찰에 몰려 있는 모든 권력을 분산하여 공소청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법을 왜곡하여 부당한 형사사법 절차를 진행하는 검판사를 징계 혹은 심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일반 국민이 형사사법 절차에 실효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 개혁을 모색해야 한다.
또 가짜뉴스를 처벌하고 방송법을 개정하여 이사회 구성을 다변화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국민이 언론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공영언론기구의 수장을 시민이 직접 선출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으며, 이와 함께 자유로운 언론을 가로막는 명예훼손죄, 모욕죄 등 제반 악법을 개정하는 논의도 함께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제 더이상 말로만 허울 좋은 ‘국민의 정부’, ‘국민주권정부’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국민에게 실질적 권리와 권력을 주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며 실질적으로 주권을 가진 국민이 다스리는 민주공화국이 되어야 한다. 더이상 추운 겨울 찬 아스팔트에서 눈사람이 되는 국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거꾸로 선거철이 아니라도 국민의 대리인이 국민을 찾아와서 자기에게 힘을 달라고 호소하는 그런 민주공화국이 되어야 한다. 새 정부가 진정한 국민주권정부로 첫발을 떼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 정병설은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한글소설을 중심으로 주로 조선시대의 주변부 문화를 탐구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동학, 특히 해월 최시형의 사상에 눈을 떴고, 바로 이어진 1년간의 베를린 안식년 체류에서 동학의 시각으로 독일 사회를 바라보면서 민주주의에 이르렀다. 그 결과물로 『시민 없는 민주주의』(문학동네, 2025)를 출간했다. 대표 저서로는 『나의 문학 답사 일지』, 『조선시대 소설의 생산과 유통』, 『권력과 인간-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