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스티븐호킹과 토론하고 올게요”…세상에 없던 교육 펼쳐진다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3. 11. 2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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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구 페이스북)의 확장현실(XR) 기기 ‘퀘스트 3’를 착용한 한 청소년이 블록을 하고 있다. [사진=메타]
고글을 쓰자 눈 앞에 별천지가 펼쳐진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어 원’(2018)에서는 2045년 사람들이 메타버스가 일상화된 세상에 살면서 매일같이 가상세계에 접속해 다양한 세상을 탐험한다. 메타버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아바타와 디지털 자산을 통해 상호 작용하는 거대한 가상 세계다. 영화 속에만 존재할 것 같았던 메타버스 사회는 조금씩 현실화하면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교육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학생들은 가상세계 안에서 게임을 하듯 즐기면서 배우고, 현실에서는 하기 힘든 경험들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다양하게 쌓을 수 있게 됐다.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아바타로 변신한 선생님은 친구처럼 학생들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져 주고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교과서를 넘어선 방대한 양의 지식을 오감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메타버스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을 접목한 에듀테크(교육+테크놀로지)의 격전지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RS글로벌에 따르면, 전 세계 메타버스 사용자 수는 지난해 3억9750만명에서 연평균 17.6% 성장률을 보이며 2030년에는 14억5100만명까지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컨설팅 전문회사인 맥킨지 앤 컴퍼니는 다가올 2030년 메타버스 시장에서는 전자상거래(이커머스)가 2조6000억달러로 가장 비중이 높고, 가상학습이 2700억달러로 그 뒤를 이을 것으로 내다봤다. 3위는 게임(1250억달러), 4위는 광고(260억달러)로 향후에는 교육 콘텐츠가 게임을 앞설 것이란 뜻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얼마나 실감나게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 세계를 구현하는지,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얼마나 적절하게 제공되는지, 생성형 AI 기술 등을 동원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얼마나 가능케 하는지 등이 메타버스의 중요한 성장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펜데믹을 계기로 e-러닝(온라인 교육)을 가능케 하는 에듀테크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전 세계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 가는 대신 비대면 화상 수업에 참여하면서 에듀테크가 빠르게 보편화한 데다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일종의 문해력을 의미하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다. 실제로 최근 다양한 메타버스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영어, 수학, 과학, 역사, 코딩 등 다양한 분야의 인터랙티브 교육 콘텐츠가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학습 흥미를 높여 주고 있다.

특히 메타버스 환경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교육 분야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가상 현장 답사다. 구글이 교육 기관용으로 개발한 ‘구글 익스페디션’은 메타버스 같은 완전한 가상 세계는 아니지만, 세계 각지를 360도 몰입형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로 구현해 가상 현장 답사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학생들은 구글 익스페디션을 통해 박물관, 역사적 장소, 자연의 경이로움을 탐험할 수 있다. 이런 플랫폼은 교실을 떠나지 않고도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과 미국의 그랜드 캐년 같은 세계 곳곳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학습 능률을 향상시켜 준다. 구글 익스페디션이 제공하는 전 세계 투어 명소는 1000여 곳에 달한다.

첨단 기술의 집합체로 불리는 혼합현실(MR)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메타의 최신 제품인 ‘메타 퀘스트3’를 사용하는 콘셉트 이미지. [사진= 메타]
메타(구 페이스북) 역시 확장현실(XR) 기기 ‘퀘스트 3’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선보였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익스플로어 VR, AI 기반의 가상 언어 클래스인 ‘이멀스(Immerse)’, 가상 세계에서 실생활 문제를 해결하며 수학을 배울 수 있는 ‘프리즘스 매스(prisms MATH)’ 등이다. 메타는 리얼리티랩을 통해 교육 콘텐츠에 1억5000만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지루한 비대면 온라인 수업도 메타버스 안에선 게임 같은 일상이 된다. 이른바 ‘인터랙티브 클래스 룸’이다. 일례로 업무·교육용 메타버스 플랫폼 ‘버벨라(VirBELA)’는 다자 간 화상회의를 다양한 메타버스 공간에서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아바타의 모습으로 전망 좋은 회의실에 둘러 앉아 사람들과 토론을 하거나 멋진 컨벤션장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참석해 함께 강연을 들을 수도 있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와 바깥을 산책하거나 운동장에서 테니스를 칠 수도 있다.

이처럼 교실이 가상 세계로 확장되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도 실현할 수 있다. 인공지능(AI) 챗봇, 딥페이크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할 경우 전설의 체스 선수 바비 피셔에게 체스를 배우거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물리학에 대해 토론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에게 학습에 대한 흥미와 동기를 부여하고,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

루마니아의 언어학습 플랫폼 ‘몬들리’는 학생들이 가상 세계 안에서 실제 언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일상속 상황을 직접 VR로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는 특정 국가의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예컨대 상점에 들어가 현지 점원과 물건 구매에 필요한 대화를 나눈다거나 공항에 들어가 탑승 수속을 밟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비행기에 탑승하는 과정을 가상으로 경험하면서 표현을 익히는 것이다.

메타버스는 실습 교육 분야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다양한 직업을 자유롭게 직접 체험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플랫폼들은 진로 고민을 하는 학생들이 VR 경험을 통해 가상 세계에서 직업을 체험해보거나 파일럿의 비행 훈련처럼 특정 직업군에 필요한 실습 훈련을 반복해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같은 이점에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 한국잡월드도 한국고용정보원과 공동으로 ‘메타버스 직업체험관’을 구축해 내년 1월 오픈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메타버스의 주요 소비층 자체가 교육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10·20대인 만큼 이 같은 변화는 가속화할 전망이다. 게다가 이른바 ‘잘파(MZ+알파)’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어려서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돼 온라인 소통에 익숙하고, 메타버스 안에서 아바타로 생활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길 즐긴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메타버스 플랫폼들이 잘파 세대를 공략하고 있다. 국내 콘텐츠 개발기업 디몽이 개발한 제페토는 이용자의 95%가 해외에 있으며 제페토의 글로벌 월간이용활성자수(MAU)는 2000만명에 달한다. 교육기관들 역시 메타버스 플랫폼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세종학단재단이 디몽의 또 다른 메타버스 플랫폼 ‘젭’에 문을 연 가상 공간상의 한국어 교육기관인 ‘메타버스 세종학당’은 지난해 15만명이 접속했고 현재도 일평균 약 500명이 접속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NHN에듀의 학습경험 메타버스 플랫폼 ‘원더버스’.
최근에는 아예 교육을 위한 메타버스 플랫폼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엔에이치엔(NHN)에듀는 내년 1분기 출시를 목표로 이달 1일 메타버스 기반의 학습경험 플랫폼 ‘원더버스(wonderverse)’를 공개했다. 원더버스는 3D 메타버스 환경 안에서 교육활동을 직접 수행할 수 있는 학습 경험 플랫폼(LXP)으로, 원더버스의 콘텐츠는 인권, 환경, 기후변화, 시민의식 등을 다루는 세계시민교육과 진로·직업 체험, 안전교육 등 비교과 영역에 집중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앞서 EBS와 한화시스템도 지난 4월 학습용 메타버스 ‘위캔버스’를 선보인 바 있다.

다만 청소년들이 메타버스 환경에 과도하게 몰입해 이에 중독되거나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오가며 혼란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보조 수단을 넘어 학생과 교사의 직접적인 상호 작용이 일어나는 대면 교육을 완전히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계보경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글로벌정책연구부장은 “메타버스에서 불특정 다수와의 만남은 새로운 학습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사이버폭력과 같은 위험 상황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가상 세계에서 교사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자격을 검증·관리할 수 있는 인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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