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DNA 깨운 애플 "킬러제품 승부"…AI전쟁·폴더블폰 시장서 대공세 예고
팀 쿡, 생태계 확장 성공했지만
AI·웨어러블·자율주행차 쓴맛
애플, 하드웨어 혁신에 승부수
터너스 "AI로 디바이스 진화"
스마트 기기 라인업 강화 예고
삼성 주력 제품군 점유율 위협

"스티브 잡스 시절의 제품 중심 DNA를 다시 꺼내 들었다."
애플이 20일(현지시간) 15년 만에 리더십 개편을 선언하자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애플이 경영 전략의 무게 추를 '제품·하드웨어'로 되돌리는 신호로 해석했다. 인공지능(AI) 시대 들어 '혁신이 둔화됐다'는 지적을 받아온 애플이 차세대 경쟁의 해답을 다시 제품 설계에서 찾겠다는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2011년 8월 스티브 잡스 사망 이후 출범한 팀 쿡 체제는 애플 역사상 성공적인 경영 기록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잡스가 '무엇을 만들지'를 고민한 최고경영자(CEO)였다면 쿡은 '어떻게 확장할지'에 집중한 CEO였다. 1998년 컴팩에서 영입된 팀 쿡은 애플의 재고 관리 방식을 뒤집고, 중국·인도·브라질로 이어지는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했다. 애플워치·에어팟, 애플TV+ 같은 신제품을 내놓는 한편, 아이폰 사용자 10억명 이상에게 소프트웨어와 구독 서비스를 파는 사업 모델로 회사 체질을 바꿨다. 그의 재임 기간 애플의 연간 순이익은 1100억달러로 4배 늘었고, 시가총액은 4조달러를 돌파하며 10배 이상 불었다.
다만 그가 한계를 넘지 못한 영역이 있다. 아이폰을 이을 '킬러 제품'이다. 2014년 시작한 자율주행차 프로젝트는 10년 만에 무산됐고, 2024년 내놓은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는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시장조사업체 포레스터의 디판잔 차터지 수석 애널리스트는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하면서 "쿡은 애플의 성장 궤도를 꾸준히 유지했지만 향후 20년의 경쟁 위치를 다시 짜는 단계적 혁신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AI다. 오픈AI, 앤스로픽, 구글이 AI 시장을 재편하는 동안 애플은 사실상 관망해왔다. 자체 모델 개발 대신 외부 모델을 자사 제품에 끼워넣는 길을 택했고, 올해 1월에는 운영체제(OS) 경쟁사인 구글의 모델로 자사 AI 기능을 구동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쟁사들이 수천억 달러를 AI 인프라스트럭처에 쏟아붓는 동안 보여온 보수적 행보의 결과다.

쿡의 후임이 하드웨어 엔지니어 출신인 존 터너스 수석부사장이라는 점은 애플이 다음 시대의 답을 어디에서 찾으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날 애플은 칩 설계를 총괄해온 조니 스루지 하드웨어 기술 부문 수석부사장을 최고하드웨어책임자(CHO)로 승진 발령했다. 아이폰·맥용 자체 칩 '애플 실리콘'의 설계자를 신설된 최고책임자 자리에 앉힌 것으로, 하드웨어 라인을 한층 강화한 인사다.
터너스 수석부사장은 이달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문을 새 AI 플랫폼 기반으로 재편하기도 했다. 제품 개발 속도와 품질 관리에 AI를 본격적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시도다. 터너스 수석부사장은 지난 3월 ABC 방송과 인터뷰하면서 "AI를 기존 소프트웨어에 통합해 모든 제품을 점진적으로 더 유용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부에서 AI를 가져오더라도 결국 승부처는 AI를 잘 쓸 수 있는 '디바이스'라는 시각이다.
물론 터너스 체제 출범에는 기대만큼 부담도 따른다. 그는 잡스 사후 쿡을 줄곧 따라다닌 질문, 즉 '잡스 없이도 산업의 판을 바꾸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물음과 다시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부 환경도 녹록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아이폰의 80%를 중국에서 생산하는 애플에 직접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시작된 반독점 소송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 지정학적 긴장도 매출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해온 애플에는 구조적 위험으로 남아 있다.
제품 측면에서 애플은 이미 새로운 카드를 준비 중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터너스 수석부사장은 카메라가 달린 새 에어팟·스마트 글라스·AI 펜던트의 웨어러블 3종과 안면인식 디스플레이, 탁상 로봇, 보안 카메라 등 스마트홈 신제품 개발을 직접 이끌어왔다. CEO 교체와 함께 애플이 다음 10년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기업들로선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터너스 수석부사장은 아이폰17 시리즈를 통해 애플이 최근 14년 만에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량 1위를 탈환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제품 설계 단계부터 시장을 장악하는 그의 리더십이 CEO로 올라선 만큼, 그간 삼성이 공고히 지켜온 플래그십 스마트폰 시장의 위상도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특히 삼성이 7년 가까이 개척해온 폴더블 시장에 애플이 본격적인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마트 글라스 라인업까지 가세하면 탄탄한 팬덤과 하드웨어 혁신을 결합한 애플의 공세가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IT 업계 관계자는 "애플의 리더십 개편과 함께 삼성전자는 애플과의 'AI·하드웨어 통합' 경쟁에 직면했다"며 "혁신을 주도할 엔지니어링 리더십을 강화하고 폴더블 등 차세대 기기에서 압도적 기술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리콘밸리 원호섭 특파원 / 서울 고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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