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곡선의 금속 물결, 밤에 살아나는 파사드
강남 논현 일대에 서 있는 하림타워는 정면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S자 곡선 금속 커튼월로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스테인리스 스틸 타공 패널을 이중 외피처럼 겹쳐 만든 파사드는 낮에는 도시 풍경을 은은히 비추고, 밤이면 내부에 숨겨 둔 수만 개 LED가 켜지며 금속 표면에 빛이 겹겹이 반사된다. 직선의 빌딩 숲 사이에서 팔을 휘두르듯 유려한 한 획이 그려지는 순간, 익숙한 거리가 낯선 무대처럼 변한다.

‘닭으로 쌓은 빌딩’이라는 농담, 산업의 스케일을 말하다
사람들은 “치킨 10억 마리 판 돈”으로 지은 빌딩이라고 농담하지만, 그 농담은 한 산업이 일군 가치사슬의 길이를 말한다. 종계·사료·도계·가공·물류·리테일까지 수직 계열화된 축산·식품 비즈니스가 만든 현금흐름이 도심 한복판의 고정 자산으로 응결된 것이다. 본사의 외형은 숫자를 장식하는 포장지가 아니다. 브랜드 신뢰, 조달·유통망, 제품 포트폴리오, 해외 사업까지 이어지는 실물의 축적이 거리의 형체가 된 사례다.

7만 개 조명과 스테인리스, ‘빛의 벽’을 설계하다
파사드 내부엔 촘촘히 배치된 LED 모듈이 금속 이면과 유리, 내부 보를 차례로 물들이며 ‘깊이 있는 빛’을 만든다. 한 점의 강한 조명 대신 다수의 점광원을 낮은 밝기로 분산해, 눈을 찌르지 않으면서도 표면이 살아 움직이는 효과를 얻는다. 스테인리스 타공 패널은 낮엔 채광·차열·시야를 균형 있게 조절하고, 밤엔 빛을 다시 반사해 경관 연출의 스크린이 된다. 유지관리 관점에서도 모듈 교체가 용이한 구조를 택해, 도시의 조명이 ‘한철 행사’로 끝나지 않게 했다.

곡선이 전하는 브랜드 메시지, ‘가공’이 아닌 ‘신선’
하림타워의 곡선은 단순한 조형이 아니라 메시지다. 직선의 효율과 속도 대신, 생물을 다루는 산업의 신선함·순환·리듬을 시각화한 장치다. 금속과 유리의 냉정한 재료에도 유동하는 표정을 부여함으로써, ‘가공식품=공장’의 인상을 ‘신선=리듬’으로 치환한다. 1층의 개방성과 상부 사무공간의 밀도를 대비시키고, 상층부 회의실·라운지에서 도심의 바람과 빛을 최대한 끌어들여 ‘닫힌 본사’가 아니라 ‘열린 쇼윈도’의 인상을 강화했다.

가로수길과 도산대로 사이, 도시 맥락을 잇다
빌딩은 가로수길·도산대로 사이의 보행 흐름을 받아내는 관문에 가깝다. 전면 로비를 깊게 당기고, 전면부 보도를 확장해 사람의 흐름이 건물 앞에서 막히지 않도록 했다. 주간에는 직장인과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파사드 앞을 지나며 그림자와 빛의 변화를 마주하고, 야간에는 경관조명이 골목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신호가 된다. 건물 자체가 목적지가 되는 동시에, 동네의 동선을 밀어 올리는 ‘등대’ 역할을 수행한다.

‘닭 추모관’의 농담에 답한다면, 책임의 디자인으로
“닭 팔아 빌딩 올렸으니 추모관이라도”라는 유머에 응답할 방식은 이미 건축 언어 안에 있다. 1층·저층부 일부를 시민에게 연 열린 전시·교육 공간으로 상설화해, 동물복지·지속가능한 사육과 유통, 식문화의 다양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경관을 위해 쓰이는 에너지를 고효율 설비와 재생에너지 연계로 상쇄하고, 식품기업 본사로서 남길 발자국을 설계의 원리로 끌어오는 일—그것이 산업이 도시와 맺는 다음 약속이다. 화려한 파사드 뒤에 책임의 무게가 드리워질 때, 이 빌딩은 농담을 넘어 한 시대의 태도를 증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