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셀과 함께 하는 하룻밤의 신비한 이야기, '고스트 트릭'
"누가 이 게임을 만들었는가?"
어떤 게임을 구입할 때 계기가 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이게 계기가 되려면 조건이 하나 붙는데, 해당 개발자의 게임을 재미있게 즐긴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개발자가 나에게 준 즐거움을 다른 형태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는 기대가 새로운 게임을 구입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죠. 그렇게 선택한 게임이 모두 성공적인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번에 이야기할 '고스트 트릭' 만큼은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스트 트릭'을 즐기게 되기까지는 이야기가 꽤 깁니다. 일단, '고스트 트릭'은 역전재판 시리즈의 디렉터 타쿠미 슈의 차기작으로 2010년 닌텐도 DS로 출시된 추리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모종의 사건으로 사망한 주인공 '시셀'이 유령이 되어 다른 사물에 빙의해 조종하거나 시간을 되돌리는 등 특별한 능력을 활용해 진상을 파헤친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죠.
넥슨이 피처폰으로 한국어 정식 출시했던 역전재판 시리즈를 재미있게 즐겼던 저에게 '고스트 트릭'은 나오자마자 바로 즐겨보고 싶었던 게임 1순위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어화는 커녕 정식 출시도 되지 않아 접해보지도 못했고, '고스트 트릭'은 그렇게 '언젠가는 꼭 직접 즐겨보겠다'는 마음 속의 위시리스트에만 올렸습니다. 그 사이 스포일러를 당하지 않게 정말 철저히 주의를 기울이고 또 조심하며 살아왔어요. 언젠가 한국어로 즐길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말이죠.
그 날은 2023년 6월 30일에야 도래했습니다. 그리고 10여년이 넘는 기다림은 정말 제대로, 완벽하게 보답 받았습니다. 오래 기다려온 게임을 직접 해볼 수 있다는 것도 감동이지만, 오랜 시간 참아온 끝에 게임 플레이로 직접 접하게 된 '고스트 트릭'의 이야기가 정말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이번 리뷰에서는 '고스트 트릭'의 기본적인 게임 플레이와 이야기에 대한 감상을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풀어보려고 합니다. 그에 앞서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는데, 혹시 여러분이 타쿠미 슈 디렉터의 전작 '역전재판 시리즈'를 재미있게 즐겼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스트 트릭'을 시작하는 걸 추천합니다. 이 리뷰를 더 볼 것도 없습니다. 바로 시작해보십시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핵심 '빙의'와 '조종'
'고스트 트릭'은 주인공이 죽어 유령이 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게임입니다. 그렇다고 게임에 유령만 나오는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현실 세계가 주 무대이고, 죽음의 세계는 현실 세계에서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면 됩니다. 유령이 된 주인공은 다양한 사물에 '빙의'하고, 이를 '조종'함으로써 현실 세계의 사람과 상호작용을 합니다. 영문판에서는 각각 '고스트', '트릭'이라고 부르는데, 게임의 제목에도 들어가 있을 정도로 핵심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죠.
주인공 시셀은 이 능력을 활용해 현실 세계에 벌어진 사건의 결과를 하나씩 바꾸어 갑니다. 시셀은 각 사물에 있는 코어와 코어를 건너 이동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코어에서 다른 코어로 뻗을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기에, 먼 거리에 있는 사물에 빙의하려면 그 사이에 있는 사물을 적절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한 사물에 빙의, 조종을 하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며, 이를 토대로 빙의 순서와 조종 순서 등을 정해야 합니다.
빙의, 조종 외에도 시셀은 죽은 사람에게 빙의해 해당 인물이 죽기 4분 전의 과거로 떠나는 능력이 있습니다. 현재에서는 이미 사건이 벌어진 뒤이기 때문에, 이를 되돌리기 위해 과거로 떠나는 것인데, 빙의, 조종의 활용에는 '4분'이라는 시간 제한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다행히 실시간으로 4분을 세는 건 아니며, 정해진 미래를 바꾸는 주요 기점마다 제한 시간이 늘어납니다. 또, 다시 시작할 때의 체크 포인트도 생기고요.
과거를 바꾸고 새로운 현재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이것저것 빙의하고 조종해봅시다. 여기까지의 경험은 체험판으로도 충분히 해볼 수 있으니 '고스트 트릭'에 흥미가 생겼다면 일단 체험판을 먼저 해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톱니바퀴처럼 꽉 맞물려 돌아가는 이야기
여기부터는 이야기에 대해 언급합니다. 제가 10여년 동안 지켜온 대로, 그리고 인터뷰에서 들었던 개발자들의 당부대로 스포일러는 담지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직접 즐길 예정이라면 이 파트는 나중에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고스트 트릭'의 이야기는 정말 많은 수수께끼를 품은 채 시작됩니다. 당장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주인공이 누군지도 모르고, 주인공이 왜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주인공에게 능력을 알려주는 조력자 '꾸불이'가 말하는 대로, 영혼이 성불하는 새벽이 오기 전에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 과정에서 시셀은 전화기를 통해 다양한 장소, 다양한 사람, 다양한 상황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관여하게 되고, 거기서 또 다양한 정보를 얻으며 사건의 진상에 다가갑니다. 인상적인 것이 있다면 처음에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였던 사건, 사람, 상황이 이야기 진행과 함께 전부 하나로 맞물린다는 점입니다. 디렉터의 전작을 플레이 해봤다면 어떤 느낌인지 바로 알 수 있는데, '고스트 트릭'의 그 촘촘함은 거기서 더 나아가 톱니바퀴가 단단히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더욱 대단한 건 다양한 사건과 사람, 상황이 얽히고 설킨 이야기를 한 번의 게임 플레이만으로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잘 풀어놨다는 겁니다. 이는 주인공 시셀이 글조차 읽지 못할 만큼 상식이 결여되어 있고, 덕분에 진상을 풀어나가는 수단이 등장인물과의, 혹은 등장인물간의 대화에만 한정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여기에 등장인물간의 대화는 각 등장인물의 개성을 표현하면서도 맺고 끊음이 확실합니다. 이야기 전개에 필요 없는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거든요.
2D 횡스크롤로 진행되는 게임 화면도 이야기의 이해를 돕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현재 사건이 진행되는 장소가 어떤 모습이고 어떤 사물들이 있는지, 그리고 해당 장소의 등장인물들이 어디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보이거든요. 이야기가 전개될 때도 기본적으로 화면 안에 있는 등장인물만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새로운 등장인물이 등장하거나 등장인물이 퇴장할 때는 어디서 나오고 들어가는 지 확실히 보여줍니다. 덕분에 현장이 아무리 복잡해도 등장인물에게 집중하기만 하면 이야기를 놓칠 염려는 없는 셈입니다.
사실 이런 점 덕분에 '고스트 트릭'은 타쿠미 슈의 전작인 역전재판보다 보는 게임으로 더 적당한 게임이기도 합니다. 플레이어가 보고 조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시청자에게도 그대로 보이니까요. 그래도 가급적이면 여러분이 직접 '고스트 트릭'의 퍼즐을 풀고 추리하며 즐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고스트 트릭'의 이야기는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잘 만들어진 이야기의 힘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저는 잘 만들어진 이야기의 힘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고 봅니다.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소설이 번역을 최신화 하거나 표지를 바꾸는 것으로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이야기 자체의 재미는 시대가 지나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기 때문으로 볼 수 있는 셈이죠.
'고스트 트릭'의 리마스터 방향성도 다시 나오는 명작 소설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 깔끔한 그래픽과 사운드, 그리고 출시 플랫폼 확장과 지원 언어 추가로 이야기 그 자체의 재미에 다가가는 접근성을 크게 높였으니 말이죠.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바로 게임을 구입해 편안한 자리에 앉거나 누워서 시셀과 함께 하는 하룻밤의 신비한 이야기에 집중해봅시다. 여러분의 감정에 들러붙어 이리저리 뒤흔들 한 편의 연극 '고스트 트릭'은 여러분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