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 수술: 영구적 남성 피임을 찾는 미국 남성들
임신 선택 권리에 대한 법이 달라지면서, 미국의 일부 젊은 남성들이 정관 수술을 받고 있다.
리옹 렌크는 내년 1월 미국 미주리 캔자스 시티에 있는 비뇨기과에 갈 예정이다. 그곳에서 그는 국소 마취를 한 상태에서 음낭을 절개한 뒤, 정관(음경을 통해 정자가 이동하는 관)을 잘라 양쪽 끝을 꿰매는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수술 후에는 처방전이 필요없는 진통제를 먹을 것이고, 합병증이 없는 한 일 주일이면 모든 불편함이 사라질 것이라 한다.
35세의 렌크와 그의 파트너는 현재 자녀가 없다. 이들은 이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최근 미국 대법원이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 이래로 보장해오던 낙태권을 '돕스 대 잭슨 판결'을 통해 뒤집었다. 낙태를 위한 헌법적 권리가 없다는 판결이 나오자, 랜크는 정관 수술을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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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크는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로 대 웨이드 판결 전복으로 그동안 머물던 울타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미주리에 살고 있는 제게는 이것(정관 수술)이 파트너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죠. 미주리에선 '촉발법(특정한 판결이 나오면 집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법안)'이 발효돼, 즉시 낙태가 범죄가 됐어요. 무서운 일이 한 순간에 현실이 됐습니다."
정관 수술에 대한 젊은 남성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 기존에도 여러 국가에서 이런 흐름이 보고되긴 했는데, 대법원 판결 이후 미국에서 눈에 띄는 급증이 나타난 것이다. 구글 검색을 보면 미국에서 "로(Roe)", "낙태"와 함께 "정관 수술" 검색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검색은 촉발법이 있는 지역에서 훨씬 더 많았다. 원격 의료 연구 기업인 '인너바디 리서치'의 보고서에서도 "정관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곳"에 대한 검색이 뉴스 이후 며칠간 850%까지 치솟았는데, 보수적인 텍사스와 플로리다에서 증가세가 가장 컸다. 플로리다의 한 의료진은 CBS 뉴스에 판결 이후 자녀가 없는 상태에서 정관 수술을 받는 30대 미만 남성이 두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뉴욕과 캘리포니아, 아이오와 및 다른 지역의 비뇨기과 의사들도 비슷한 상승세를 전했다.
이는 기존의 관행을 뒤집는 흐름이다. 오랜 부부의 경우에도 피임은 거의 여성의 책임이었다. 난관 수술과 경구 피임약, IUD 및 기타 여성용 피입법이 미국에서 가장 일반적인 피임 수단이었던 것. 그러나 돕스 판결 이후 더 많은 미국인들이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정관 수술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그동안 부족했던 남성들의 임신에 대한 책임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두려움이 원인이다
많은 국가에서 정관 수술은 부차적인 피임 수단이었다. 그 비율은 개발도상국에서 특히 낮은데 평균 0~2%다. 2015년 UN 집계에 따르면, 캐나다와 영국은 그 비율이 각각 21.7%와 21%였고 미국은 10.8%였다.
18~45세 사이의 미국 남성의 정관 수술은 2002년부터 2017년 사이에 전반적인 하락세였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2007년에서 2009년 사이의 '대침체' 기간에는 현저하게 급증했다. 스탠포드 대학 비뇨기과의 연구원들은 "대침체 동안 정관 수술을 받는 사람들이 34% 증가했고… 이는 실업률 상승과 가장 밀접한 상관 관계가 있었다"고 썼다.
경제 상황이 정관 수술 증가의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후 및 인구 과잉을 우려해 가족 규모를 제한하거나 자녀를 갖지 않으려 한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정관 수술을 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호주의 의사들에 따르면, 30세 미만 남성 중에 정관 수술을 받는 이들이 늘고 있다. 호주의 한 의사는 현지 SBS뉴스에 2020년에서 2021년 사이에 "자녀가 없는 30대 미만 남성이 정관 수술을 받는 게 20% 가까이 늘었다"고 말했다. 또한 젊은 남성의 정관 수술이 영국, 심지어 불임 수술이 문화적으로 금기시되는 중국에서도 확산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유타 대학 비뇨기과 교수인 알렉산더 파스투자크는 미국에서 정관 수술을 받는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아내가 원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 이후 여성의 선택지가 제한되면서 더 많은 남성이 피임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듯하다는 게 그의 견해다. "특히 낙태 금지법이 실제 발효된 주에서는 정관 수술을 위해 병원을 찾는 남성들이 확실히 늘었다"고 말했다. "더 이상 기존의 방식으로 성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생겨난 거죠."
예일 대학 임상 비뇨기과 교수인 스탠턴 호니그는 정관 수술을 증가시킨 한 동력으로 정치적 분위기를 꼽았다. 그는 "로 대 웨이드 판결 번복 초기, 정관 수술에 대한 문의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요즘은 정관 수술을 위해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병원이 많아요."
호니그의 병원 사무실로 오는 문의 전화는 약간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수술 일정은 이미 꽉 찬 상태다. "하지만 캔자스에 있는 지인은 문의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고 해요. 위스콘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의 두려움이 여전한 것 같아요. 그게 진짜 요인이죠. 사람들이 과거 이런 상황을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닌 듯한데, 환자와 이야기를 해보면 현재 상황이 그들을 벼랑으로 내몬 것은 분명합니다."
텍사스 오스틴 출신의 23세 콘텐츠 제작자인 키스 로에는 피임 부담을 여성이 혼자 짊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텍사스 분위기는 여성의 임신 선택권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로에와 그의 파트너는 세 살 딸이 있는데, 앞으로 더 이상의 자녀는 원치 않는다. 그리고 로에는 피임을 위한 파트너의 "정말 힘들었던" 경험담을 들은 후, 두 사람의 임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로 결심했다.
사실 로에가 정관 수술을 결심한 건, 텍사스가 임신 6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심장 박동 법안"을 통과시킨 작년이었다. 그는 "하지만 예약을 미뤘다가 이번 판결 방향이 알려지자 '아 이제는 정말 수술을 받아야 해'라고 생각했다"며 "그때 수술 예약을 다시 잡았다"고 했다.
호니그는 앞으로 이어질 임신 선택권과 관련된 법이 다른 형태의 피임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미국에서 정관 수술을 더 증가시킬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오하이오와 인디애나, 미주리 같은 주에서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히며 낙태가 불법이 됐어요. 어떤 가족 계획도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곧바로 확산됐죠."
렌크도 그 만일의 사태가 "바로 내 마음을 움직였다"고 했다. 정관 수술을 예약하는 동기가 된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피임에 대한 책임은 파트너의 몫이었고, 그로 인해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호르몬 피임법으로 (그녀가) 많이 힘들어 했어요.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지만, 계속 복용해야 했죠. 기분을 안 좋게 만들고 복용중인 다른 약물의 약효도 방해했어요. IUD도 그녀에게 맞지 않았습니다." 파트너의 이런 불편함을 덜어주고 싶다는 것도 렌크를 움직인 또 다른 동기였다.
실질적인 변화일까, 반짝 현상일까?
오래곤 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크리스탈 리틀존은 수술의 분명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피임은 여성의 책임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그동안 미국에서 정관 수술이 많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최근의 증가세가 나온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수십 년 동안 부담은 여성과 임신한 사람들에게 주어졌다"고 했다. "여전히 미국의 가임 연령 여성 4명 중 1명은 난관결찰을 받고 있습니다. 25%라는 이 비율을 정관 수술을 받는 낮은 비율과 비교해 보세요. 지금 정관 수술이 급증세지만 처음에 비율이 그렇게 낮았기 때문에 급증세가 눈에 띄는 건 아닐까요?"
그러나 리틀존도 로 대 웨이드 판결 전복 이후의 정관 수술 증가는 주목할 만하다고 했다. 일부 남성들은 파트너에 대한 걱정, 원하지 않는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낙태 제한에 반대하는 정치적 표현 등의 이유로 행동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단기적이고 반응적인 추세일 가능성이 있다.
리틀존은 "그들이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런 일들은 여성 및 임신한 사람들의 상황을 조금 더 개선할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일각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책임 변화가 될 것 같지는 않아요. 우리 사회의 위기와 관련하여 일어나는 다른 많은 일들처럼, 어떤 일은 발생 초기에 뜨거운 관심을 받습니다. 하지만 실제 변화를 보기 위해서는 그 흐림이 지속돼야 하죠."
반면 파스투자크는 최근의 정관 수술 급증을 반짝 현상, 그 이상으로 보고 있다. 그는 "돕스 판결은 일종의 분수령"이라고 말했다. "이 법안이 유지되는 한 앞으로 몇 년 동안 정관 수술이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돕스 판결로 인해 일부 지역, 특히 우파 성향 주에서 원치 않는 임신이 여성에게 미치는 잠재적 영향까지 따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일부 의원들은 여성이 낙태가 합법적인 주로 가서 낙태를 받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법이 만들어지면, 합법적인 낙태를 해도 범죄로 기소될 수 있다. 그래서 불법 낙태로 건강을 해치거나 원치 않는 임신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로 인한 위협 때문에 로에는 정관 수술을 선택했고, 이러한 선택은 부분적이나마 정치적 의사 표현이 됐다.
로에는 "로 대 웨이드 판결 전복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내 결정에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남성으로서 우리는 여성을 돕고 출산 선택의 무게를 함께 짊어져야 할 때입니다."
이것은 사회를 위해 긍정적이고 이로운 메시지다. 하지만 리틀존은 사회가 진정 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고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정관 수술을 남성들이 '파트너를 돕고'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며 파트너가 임신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한", 남성은 피임에 대한 기본 책임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관점은 지속된다는 것이다.
리틀존은 체제의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임신은 남성이 막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낙태와 여성들의 피임법에 대한 위협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남성이 책임을 져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변화를 보고 싶다면, 여성의 피임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계없이 남성에게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홍보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파스투자크는 정관 수술의 급증이 남성 피임에 대한 관심 증가로 이어져, 남성을 위한 호르몬 및 비 호르몬 피임법에 대한 연구를 촉진시키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다양한 피임법에 대한 높은 수요가 있다"고 말했다. "많은 남성들이 피임법을 탐구하고 잠재적으로 참여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뜻이죠. 이것이 우리가 향후 5~10년 동안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특히 젊은 남성들에게 진정한 임신 선택의 자유를 줄 것입니다."
로에와 렌크는 수술 준비가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둘 다 "정관 수술이 영구적인 피임 효과를 갖는다",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도 있지만, 그 경우 임신 성공율은 낮아질 수 있다" 등의 정보를 받았다. 로에는 "(의사가) 물어본 유일한 질문은 '내가 얼마나 진지한가'였다"고 했다. 의사는 그에게 자녀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아이를 더 갖고 싶나요?'라고 물었고 제가 '아니오'라고 답하면서 면담이 다 끝났습니다."
렌크는 정관 수술이 가볍게 내린 결정은 아니지만, 옳은 결정이라 확신하고 있다.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이 있었고 오랜 시간 파트너와 이야기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더 가까워졌고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어요."
렌크는 더 많은 남성들이 임신과 출산에서 자신의 역할을 생각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20년 전에 남성 피임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해법은 이 불완전한 수술이지만, 이게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