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국 세계기록유산 증후을편종, 기원전 5세기 음악 이론의 발견

서준수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선임전문관 2025. 10. 29.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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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진시황릉의 스케일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1978년 여름, 중국 고고학과 역사학의 큰 족적을 남긴 발굴이 있었다.

후베이성 수이저우시 교외에서 전국시대 초기 증나라 제후의 묘가 발견되었다.

정교한 청동 제사용기, 옻칠 목그릇, 금은그릇, 진주와 옥그릇, 악기, 마차와 말, 무기와 복식, 비문과 문자 자료가 다량 출토되었다. 무덤의 매장 연대와 매장된 주인의 신원도 분명하며, 유물의 수와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고고학 발굴 역사상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증나라 제후 을의 묘(증후을묘, 曾侯乙墓)에서 발견된 편종은 이 중에서도 202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며 세계적 중요성으로 주목받았다. 편종은 두 단으로 된 나무틀에 위아래로 8개씩 종을 매달아 놓은 타악기로, 뿔로 만든 망치(각퇴)로 두드려서 연주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예종 때 송나라로부터 처음 수입되고, 조선시대에는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에 편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후을편종(曾侯乙编钟)은 중국에서 발굴된 편종 중에서 가장 크고, 무겁고,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어 '편종의 왕'이라 불릴만 하다. 중국 문화예술의 보물이자 세계 음악사의 기적이라고까지 불린다. 증후을편종에는 사건 기록, 음표 표시, 음률 명칭 관계를 담은 금박 명문 2,828자가 새겨져 있다. 이 외에도 종의 틀(대들보), 걸이 장식, 종 등에 새겨진 명문을 합하면 총 3,775자이다. 이 내용은 중국 최초 통일 왕조인 진나라 이전 시대, 고대 중국 전국시대 음악사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어서 '음악 이론의 귀중한 걸작' 이자 '불후의 고대 음악학 기록'이라고 평가된다.

증후을편종에 새겨진 기록을 통해 중원의 상(商)나라와 주(周)나라의 문화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남방 초(楚)나라 문화의 특성을 흡수하여 만들어진 독특한 음률체계가 탄생했음을 보여준다. 고대 중국에서 청동으로 된 편종의 음은 소위 6률(六律)이라 하는 6가지 음을 사용했으며, 그것이 두 단으로 구성됨에 따라 12음 체계가 진나라 이전 시대에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전국시대 12음은 이후 동아시아에서 활용되는 12율로 이어진다.

증후을편종에 새긴 명문은 전국시대부터 문자를 예술의 영역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이론을 뒷받침한다. 이는 오(吳,) 월(越), 초(楚)나라 등에서 글자 획이 더 구불구불하거나 점을 추가하여 장식처럼 사용하여 글자가 서예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증후을편종에 새겨진 글자는 글자체가 가늘고 필획이 유려하며 글자의 배치가 질서정연한 특징을 가지며, 이는 전국시대 초기 초나라 청동기 글자와 양식이 유사하다고 한다.

증후을묘에서 발견된 편종과 청동 제사용기, 무기와 전차를 합하면 약 10톤의 청동이 사용되었다. 이는 청동기 유물이 가진 복잡하고 정교한 장식 및 새겨진 명문을 포함하여 발견된 양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이다. 여기에는 정확한 음률, 야금기술, 주조기술, 천문학 등 다양한 과학기술과 지식이 담겨진 총체로 여겨진다. 전국시대에 철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있을 때에도 청동기 제작은 더욱 정교한 방식으로 주조가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러한 특성이 보이는 부분은 특히 편종의 합금 주조와 음의 관계이다. 고대 기록에도 구리와 주석 일부를 혼합하는 것으로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 비율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 정교한 합금방식이 편종의 소리에 영향을 미친다.

동아시아에서 음악은 곧 정치였다. 귀로 들리는 자연의 소리에 사람의 마음이 감응하는 것을 '성'(聲), 여러 소리가 일정한 질서를 이루는 것을 '음'(音), 음 속에 인간의 도덕적, 사회적, 철학적 가치를 담고 춤, 악기와 함께 예술로 표현되는 것을 '악'(樂)이라 구분하였다. 사람의 마음상태는 물론 사회의 현상 자체를 반영하는 거울로서 인식된 것이 음악이라 본 것이다. 따라서 음악은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주관하며, 화합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통치 도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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