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69살인 나는 한 달에 한두 번 아들 집에 간다. 며느리가 불편할까 봐 오래 머물지도 않고 식사 한 끼 하고 돌아오는 정도다. 그런데 얼마 전 아들 집에 다녀오는 길에 며느리가 웬일인지 반찬통이 가득 든 가방을 내 손에 쥐여줬다.
집에 돌아와 하나씩 꺼내보다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남은 반찬을 싸준 줄 알았다
그날도 저녁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며느리가 냉장고에서 반찬통 몇 개를 꺼냈다. 그러더니 "어머니, 이거 가져가서 드세요"라며 보냉 가방에 넣어줬다.
순간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평생 아들 집에 갈 때마다 반찬을 만들어 가져간 사람은 나였다. 며느리에게 김치도 주고 국도 끓여주며 손주가 좋아하는 음식까지 챙겨줬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남은 반찬을 얻어가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괜히 마음 한쪽이 서운했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너희 먹지 뭘 이런 걸 싸주니"라고 말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반찬통을 열어보니 이상했다
저녁 늦게 가방을 정리하려고 반찬통을 하나씩 꺼냈다. 그런데 식탁에서 먹었던 음식과는 전혀 달랐다.
내가 좋아하는 멸치볶음과 연근조림이 있었고 간이 약한 장조림도 따로 담겨 있었다. 국통에는 소고기뭇국이 들어 있었다. 얼마 전 내가 아들 집에서 "요즘은 짠 걸 먹으면 밤에 물을 너무 많이 마시게 된다"고 지나가듯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반찬통 위에는 작은 종이도 붙어 있었다.
'어머니 것. 싱겁게.'
그제야 이 음식들이 남은 반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 통을 열어보고 결국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장 아래에 있던 작은 통에는 잘게 손질한 생선구이가 들어 있었다. 가시까지 거의 전부 발라져 있었다.
몇 주 전 아들과 통화하다가 내가 치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며느리는 옆에서 그 말을 들었던 모양이었다. 통 옆에는 또 작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딱딱한 건 당분간 드시지 마세요. 다음 주 병원 가시는 날 아침에 제가 전화드릴게요.'
그 글을 읽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나는 며느리가 무뚝뚝하다고 생각했다. 전화도 자주 하지 않고 나를 보면 살갑게 팔짱을 끼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날 처음 알았다. 어떤 사람은 말로 정을 표현하고, 어떤 사람은 상대가 흘려서 한 말까지 기억하는 것으로 정을 표현한다는 것을.

나는 결국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맙다. 그런데 다음부터는 이렇게 많이 하지 마. 너도 힘들잖아."
잠시 조용하던 며느리가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도 저희한테 몇 년을 그렇게 해주셨잖아요. 이제 제가 좀 해드릴게요."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동안 내가 며느리에게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며느리는 내가 기대했던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오래전부터 자기 방식으로 나를 챙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실제 중년과 노년의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겪은 사연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실화다. 가족 사이의 정은 꼭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로만 확인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내가 무심코 했던 말을 기억해주는 작은 반찬통 하나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수많은 말을 대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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