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키토키 빌딩, 어떻게 ‘눈부신 민폐’가 되었나
런던 금융가의 중심지, 20 Fenchurch Street에 일명 ‘워키토키 빌딩’이라는 별명의 초고층이 우뚝 솟아 있다. 2014년 완공 직후부터 유명세를 탄 이 건물은, 아쉽게도 아름다움이나 랜드마크라는 이미지가 아니라 ‘민폐 건축물’이라는 평판으로 인해 더욱 알려졌다. 건물의 공식 명칭은 ‘20 펜처치 스트리트(20 Fenchurch Street)’지만, 머리 위의 유리잔, 혹은 워키토키(무전기) 같은 묘한 외관 덕분에 모두가 워키토키 빌딩이라 부른다.
일반적인 고층건물들과 달리, 위로 갈수록 불룩하게 넓어지는 외관과 곡선 유리는 도시의 하늘을 장식하기 위한 창의적 발상이었다. 그러나 이 건물이 진짜로 유명해진 이유는 단연 ‘구조적 결함’—그 중에서도 남쪽 파사드의 오목한 곡면과 전면 통유리가 결합한 예상 밖의 ‘빛 재앙’ 때문이다. 단순한 디자인 실수가 어떻게 대도시에 광범위한 민폐가 되었는지,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현대 건축이 안고 있는 숙제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햇빛을 모으는 ‘거대한 반짝이’—문제의 정체
워키토키 빌딩의 주요 문젯거리는 바로 남쪽 외벽의 곡면 설계다. 고층 빌딩의 남향 면에서 오목하게 들어간 유리 파사드는, 마치 집광 렌즈처럼 태양 빛을 한군데로 집중시킨다. 하계와 피크타임에 남쪽이 태양을 받으면, 모아진 빛이 지상으로 강하게 쏟아지며 바로 아래 구역을 마치 ‘거대한 프라이팬’처럼 만드는 기상천외한 현상이 발생한다.
실제로 이 건물 하부 남쪽 앞 도로에서는 한낮이면 반사광이 마치 레이저처럼 내려쳐 금속 장식이나 자동차 표면을 녹이는 일까지 생겨났다. 현장에 놓아둔 검은색 차체가 일그러지고, 계란을 포장지에 올려 놨더니 몇 분 만에 익는 기이한 장면이 실제로 목격됐다. 현지를 찾은 수많은 시민들과 여행자들은 “마치 거대한 빛의 총알을 맞은 것처럼 뜨겁다”, “이 근처를 지날 때에는 긴장해야 한다”고 농담 섞인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멈추지 않는 ‘열폭탄’, 주변 상인과 시민들의 고통
이 빌딩으로 인한 피해는 단순히 뜨겁다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햇빛이 가장 강렬하게 쏟아지는 정오 무렵, 빌딩 남쪽 커브 구역은 일시적으로 온도가 70도까지 치솟는다. 실제로 2013년, 한 상인이 근처 길거리 판매대에 새로 산 재규어 차량을 세워두었다가 사이드미러와 일부 트림이 녹아버리는 피해를 입었다. 어망, 외장 플라스틱, 가게 간판 등도 순식간에 녹고 변형되는 사고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일부 상점은 낮 시간대 심지어 점포 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열기가 쏟아져 들어왔고, 인도에서는 숟가락까지 데울 만큼의 입체적인 열선 현상에 일상적인 영업도 곤란한 지경이 되었다. 지역주민, 택시 기사, 오가는 시민들 모두 “이 일대는 워키토키 빌딩 탓에 계절 불문하고, 하루의 일부분이 공포”라고 혀를 내두르고 있다.

렌즈 효과? 유리 파사드의 부작용과 건축 설계의 한계
전문가들은 워키토키 빌딩 사태의 근본 원인을 ‘렌즈 효과’에서 찾는다. 곡면 유리와 오목한 구조가 강한 태양광을 집광, 반사 지점에 수십 배의 열에너지를 집중시키는 현상은 건축물의 크기가 클수록 그 영향이 광범위해진다. 이런 광학적 현상은 현대 신규 초고층 건물 설계 때 필수 확인사항이지만, 당시 워키토키 빌딩의 설계와 시공 단계에서는 충분한 시뮬레이션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통유리 초고층, 거대 곡면 설계는 미적 효과가 뛰어나지만, 도시 기능과 주변 환경에 가져올 부작용도 그만큼 치명적이다. 결국 ‘실험적 건축’의 부작용이 현실화된 대표적 사례가 된 셈이다. 워키토키 빌딩 사건 이후 런던시청과 영국 건축가협회는 신축고층 시뮬레이션을 전면적으로 강화했고, 도시 환경 및 열반사, 일조 피드백을 전면 재검토하게 됐다.

기상천외한 해결책, “빛가림용 손잡이”부터 조롱까지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조롱거리가 되자 워키토키 빌딩 관리사는 임시 방편으로 차광필름, 빛막이 손잡이, 알루미늄 차폐판 등 다양한 해결책을 동원했다. 빌딩 남향 오목 파사드를 따라 일종의 금속 블라인드 장치를 설치하기 시작해, 직접적인 빛 반사를 물리적으로 막거나 흩어지게 설계했다. 일각에선 “현대판 돋보기 빌딩을 수리하고 있다”며 냉소적 평가도 쏟아졌다.
하지만 이러한 임시 조치는 구조적 결함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었다. 근본 설계 자체가 ‘빛 집중’을 유도하는 곡선 구조인 탓에, 완전한 해결책은 이론상 건물 전체 파사드를 교체하거나, 애초에 재설계를 해야만 근원적 문제가 사라진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 현실적 한계 탓에 임시 방편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가 영국 전체의 반면교사로 자리잡았다.

‘카벙클 컵’ 수상, 거대한 민폐 건축의 경고
워키토키 빌딩은 완공 직후 시민, 미디어, 건축계에서 “런던의 가장 민폐스러운 건물”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2015년, 매년 영국에서 수여되는 ‘카벙 컵(Carbuncle Cup)’—즉, “최악의 신축 건축물”에 영예 아닌 영예의 1위를 차지했다. 영국 도시계획사와 건축사들은 “혁신적, 아이코닉한 디자인의 치명적 단점”이라 진단했으며, “도심 한가운데 집광 렌즈를 올려놓은 꼴”이라는 통렬한 조롱이 뒤따랐다.
결국, 이 160m 민폐 건물은 건축 설계의 작은 실수가 실제 도심 주민 삶과 안전, 영업 환경에 얼마나 광범위한 여파를 미치는지를 세계에 각인시켰다. 워키토키 빌딩 이후 세계 각국에선 대도시 고층, 곡면 유리건물 설계 심의를 대폭 강화했고, 빛 공해와 집광 피해에 대한 법적 기준도 보완되는 변화가 이어졌다.
현실적으로 지금의 워키토키 빌딩은 거대한 민폐 건물로 남아 있지만, 동시에 현대 건축의 교훈을 후대에 남기는 ‘반면교사’로도 자리잡았다. “도시의 새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좋은 의도가 치밀한 환경 분석과 검증 없이 현실화될 때, 얼마나 불편하고 예측 밖의 결과를 부르는지, 런던 시민과 세계 건축계 모두에게 잔혹할 만큼 선명하게 알려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