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년 주기설?’ 최준용의 PO 출전은 곧 우승을 의미했다


‘황금 드래프트’라 불린 드래프트 가운데 가장 최근 사례는 2016년이었다. 우승해도 좀처럼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유재학 전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우승을 워낙 많이 해서였을 수도 있겠지만…)조차 “우승했을 때보다 더 기분 좋다”라며 1순위의 기쁨을 만끽했던 게 바로 2016 드래프트였다. 당시 1순위 확률은 이전 시즌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한 8팀에 동일하게 주어진 1/8이었다. 덕분에 현대모비스는 2015-2016시즌 정규리그 준우승을 기록하고도 1순위의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현대모비스가 이때 선발한 선수가 한국 농구의 빅맨 계보를 이을 것이란 극찬을 받았던 이종현이었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법. 결과적으로 2016 드래프트의 최종 승자는 서울 SK였다. SK는 현대모비스에 밀려 2순위에 그쳤지만, 이를 통해 최준용을 선발했다. 팀 내부에서 강상재를 주장한 이도 있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순 없었다.
최준용은 데뷔하자마자 주전 자리를 꿰찼다. 2016-2017시즌 45경기에서 평균 29분 48초나 소화하며 8.2점 7.2리바운드 2.4어시스트 1.1블록슛을 기록했다. 신인상 후보에 이름을 올릴 정도의 활약상이었지만, 신인 1명이 침체기를 걷던 SK를 단번에 정상 궤도로 올려놓는 데에는 한계가 따랐다. 5할 승률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운 행보를 이어가던 SK는 시즌 중반 10경기에서 2승 8패에 그치며 9위까지 내려앉았고, 이후 반등에 실패하며 7위로 시즌을 마쳤다.
최준용의 ‘2년 주기설’은 2017-2018시즌에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SK는 김선형이 개막 2경기 만에 대형 부상을 입는 악재를 맞았지만, 개막 7연승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KBL 2년 차 테리코 화이트가 여전히 효율적으로 외곽 득점을 만들었고, 3년 만에 돌아온 애런 헤인즈는 전성기를 연상케 할 정도로 공수에 걸쳐 높은 기여도를 보여줬다.
최준용 역시 팀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자유투(성공률 51%)만 이상할 정도로 안 들어갔을 뿐, 리바운드와 속공 가담 능력을 두루 지녀 SK의 속공 농구에 속도감을 더했다. 상황에 따라 외국선수 수비까지 가담했다. SK는 시즌 막판 돌아온 김선형, 신인상을 수상한 안영준의 활약 등을 더해 정규리그 2위에 이어 원주 DB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4승 2패를 기록하며 18년 만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달성했다.
최준용 스스로는 “솔직히 말하면 첫 우승 했을 땐 생각만큼 기쁘지 않았다. 대학 때 우승한 거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내가 잘해서 한 우승이 아니라 삔또(?) 상했던 것 같다”라며 2017-2018시즌 우승을 돌아봤지만, 결정적인 수비로 SK의 우승에 힘을 보탰다. SK가 우승을 확정 지었던 6차전. 79-77로 앞선 경기 종료 6초 전, 인바운드 패스를 받던 디온테 버튼의 실책을 유도하며 SK에 귀중한 공격권을 안긴 이가 바로 최준용이었다.
양 팀의 명암을 가른 결정적 장면이었고, 버튼은 “나에게 그 상황은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최준용은 상대하기 싫은 선수였다. KBL의 드레이먼드 그린(골든스테이트) 같은 존재였다”라고 돌아봤다.

2018-2019시즌은 SK가 한동안 시달렸던 악명 높은 ‘롤러코스터’의 출발점이었다. 디펜딩 챔피언으로 시즌을 맞이했지만, 헤인즈가 부상 여파로 들쑥날쑥했던 데다 2017-2018시즌 플레이오프 MVP 화이트는 단신 외국선수 신장이 186cm 이하로 변경돼 재계약이 무산됐다. 2018-2019시즌 SK에서 뛴 외국선수는 무려 7명에 달했고, 그만큼 팀 전력도 안정감이 떨어졌다. 안영준(39경기), 김민수(20경기)마저 부상으로 자주 자리를 비운 SK는 9위에 그치며 디펜딩 챔피언의 자존심이 무너졌다.
최준용 역시 32경기 출전에 그친 데다 그마저 데뷔 후 가장 낮은 7.3점에 머물렀지만, 자신을 향한 평가를 바꿔놓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9-2020시즌은 최준용이라는 캐릭터가 코트 안팎에서 자리 잡은 시즌이었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최준용은 약점으로 지적됐던 3점슛(1.9개 성공률 35.4%)까지 개선돼 데뷔 첫 두 자리 득점(11.8점)을 올린 것은 물론, 2라운드 MVP에도 선정됐다. 최준용이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수상한 타이틀이었다.
‘세리머니 장인’으로 거듭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최준용은 결정적인 3점슛을 터뜨릴 때마다 활을 쏘는 제스처를 취하는가 하면, 달러를 뿌리는 듯한 세리머니도 펼치며 팬들과 호흡했다. 실제 최준용의 왼쪽 손목에는 달러 문신이 새겨져 있었고, SK 역시 최준용의 얼굴이 새겨진 ‘행운의 2달러’를 제작해 머니건으로 뿌리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팬들에게 가장 큰 선물인 승리를 선사하는 데에도 익숙해졌다. 최준용이 MVP 경쟁을 펼칠 정도의 레벨로 성장한 SK는 장수 외국선수의 계보를 잇는 자밀 워니의 등장까지 더해 시즌 내내 선두권을 지켰다.
다만, DB와의 치열한 1위 싸움에서 진정한 승자를 가리진 못했다. 2019-2020시즌은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여파로 평범했던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린 시기였다. 국내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후 기하급수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자 KBL은 시즌을 중단했고, 추세까지 지켜본 끝에 결국 조기 종료를 선언했다.
SK와 DB는 나란히 28승 15패를 기록, 정규리그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플레이오프가 열리지 않아 진정한 승자를 가리진 못했지만, 최준용이나 SK로선 2018-2019시즌에 겪었던 수모를 씻기에 충분한 시즌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매력이라곤 하지만, 2019-2020시즌 공동 우승 후 최준용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지옥과 천당을 오갈 거라 예상한 이가 있었을까. 2020-2021시즌은 단언컨대 최준용이 프로 데뷔 후 겪었던 최악의 암흑기였다. 최준용은 소셜미디어와 관련해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켜 SK, KBL로부터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복귀 후에도 악재는 끊이지 않았다. 최준용은 2020년 12월 말 팀 훈련 도중 착지 과정에서 왼쪽 십자인대가 파열됐고, 곧바로 수술대에 오르며 시즌아웃됐다. 최준용은 데뷔 후 가장 적은 14경기를 소화하는 데에 그쳤고, SK 역시 워니마저 개인사로 체중 조절에 실패하며 8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복귀 시점도 가늠할 수 없었고 복귀한다 해도 어느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속단할 수 없는 부상이었지만, 최준용이 부활하는 데에는 채 1년도 걸리지 않았다. 오프시즌 연습경기부터 부상 이전과 다를 바 없는 경기력을 보여준 최준용은 컵대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복귀했고, 2021-2022시즌이 개막하자 SK의 ‘만능 열쇠’로 활약했다. 주득점원부터 속공 트레일러, 블루워커 등 팀이 원하는 역할이라면 무엇이든 수행했다.
최준용은 데뷔 후 최다인 평균 16점에 5.8리바운드 3.5어시스트 1.1블록슛을 곁들이며 에이스로 활약했고, SK는 워니의 부활과 전희철 신임 감독의 용병술을 더해 통산 3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중위권에서 경쟁할 거란 평가를 뒤집은 대반전이었다. SK는 이어 안양 KGC(현 정관장)와 맞붙은 챔피언결정전에서 4승 1패를 기록, 창단 첫 통합우승이라는 역사까지 만들었다.
최준용은 시상식에서도 활짝 웃었다. 라운드 MVP로 2차례 선정되는 등 시즌 내내 독보적인 활약을 펼친 최준용은 기자단 투표 109표 가운데 104표를 휩쓸며 데뷔 첫 정규리그 MVP의 영예까지 안았다.
MVP 수상 직후에는 “지난 시즌은 너무 힘들었다. 부상까지 당했을 땐 ‘농구를 다시 할 수 있을까?’란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마음도 많이 약해졌지만, 다시 농구를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고 좋은 결과까지 얻었다. 밑바닥에서 위까지 올라오니 다시 내려갈 수도 있을 거란 두려움이 없어졌다. 설령 내려간다 해도 다시 여기까지 올라올 자신이 있다”라며 최준용다운 소감을 남겼다.

챔피언결정전 2연패는 KBL 역사상 단 2번 밖에 나오지 않은 기록이다. 2021-2022시즌 통합우승을 달성했던 SK가 KGC와 맞붙은 2022-2023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이에 도전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돌아보면 3승 2패로 앞서있던 6차전 3쿼터 막판 치명적인 작전타임 신청 미스를 범한 게 패착이 됐다. SK는 이 여파로 6차전을 내준 데 이어 7차전마저 연장까지 가는 혈투 끝에 패, 준우승에 머물렀다.
SK가 역사에 도전하는 과정서 최준용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정규리그가 한창이던 2023년 2월 11일 대구 한국가스공사와의 홈경기가 최준용이 SK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습을 보여준 마지막 경기였다. 경기 막판 발바닥 부상을 당하며 교체됐던 최준용은 빠르면 1개월 내에 복귀할 거란 전망과 달리 끝내 코트로 돌아오지 못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복귀할 거란 희망을 품고 있었던 전희철 감독조차 4강 시리즈를 따낸 직후 공식 인터뷰에서 “최준용은 챔피언결정전에서 뛸 수 없다. 기사로 단정 지어도 될 것 같다”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당시 몸 상태와 관련해 다양한 추측이 떠돌았지만, 최준용은 “내가 제일 답답했다. 십자인대 다쳤을 땐 통증이 100이었다면, 점점 10씩 줄어서 복귀했다. 발바닥은 통증의 강도가 10이라면 6 정도로 아팠는데 그 상태가 계속 이어졌다.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니 나도 너무 답답했다. 1개월 정도 쉰 후 D리그 선수들과 훈련하면 또 아팠고, 그런 과정을 몇 번 반복했다. 돌아보면 그때 복귀 전까지 푹 쉬어야 했던 것 같다”라고 돌아봤다.
FA 협상 과정에서 구단과 평행선까지 그렸던 최준용은 결국 정들었던 SK를 떠나 거액을 투자한 KCC와 계약했다. 1라운드 2경기 출전에 그쳐 우려를 샀던 것도 잠시, 최준용은 이내 가치를 증명했다. 2라운드 8경기 가운데 7차례 두 자리 득점을 기록하며 몸 상태에 대한 물음표를 뗐고, KCC는 송교창까지 무릎 부상에서 돌아오자 정상 궤도에 올라선 모습을 보여줬다.
2라운드까지 4할대 승률에 머물던 KCC는 최준용과 송교창을 정상 가동한 3라운드 7연승을 기점으로 중위권 순위 경쟁에서 안정권에 진입했고, 5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라 6강 SK-4강 DB-챔피언결정전 KT를 차례대로 제압하며 명가의 부활을 알렸다. 정규리그 5위가 플레이오프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사례였다.
허웅이 플레이오프 MVP의 영예를 안은 가운데 최준용 역시 플레이오프 12경기에 모두 출전, 평균 13.4점 3점슛 1.3개 4리바운드 4.4어시스트 1.1스틸로 활약하며 “다른 팀 팬들이 싫어해도 SK 팬들은 왜 나를 좋아했는지 KCC 팬들도 알게 될 것”이라는 이적 당시의 각오를 실천으로 옮겼다.

홀수 해에 시즌이 조기 종료되는 건 어김없는 걸까. 최준용은 데뷔 9년 차였던 2024-2025시즌에 다시 자리를 비웠다. 무릎 부상 탓이었다. 평균 14.4점 3점슛 1.5개 6.8리바운드 3.8어시스트 1.4블록슛을 기록하는가 하면, 친정 SK를 상대로 커리어하이(42점)를 작성하는 등 코트에 있을 때만큼은 여전히 위력적이었으나 문제는 17경기 출전에 그쳤다는 점이었다. 송교창마저 8경기만 소화하는 등 시즌 내내 주축선수들의 줄부상에 골머리를 앓았던 KCC는 이 여파를 극복하지 못하며 9위로 시즌을 마쳤다.
최준용은 2년마다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행보가 반복되고 있는 것에 대해 “백투백 우승을 하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었다. 초심을 잃으면 안 되는데…. 돌아보면 나도 가끔 내려놓을 때가 있었던 것 같다. 아쉽지만 이것도 다 경험이다. 2년마다 우승을 해도 내 가치는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10년, 15년 동안 뛰어도 우승 못 하는 선수도 많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더 깊이 살펴보면, 최준용의 우승과 관련된 ‘2년 주기설’의 핵심은 결국 건강이다. 최준용은 데뷔 후 총 3시즌 플레이오프에 출전했는데, 플레이오프에 출전할 때마다 소속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플레이오프에서 치른 7차례 시리즈 모두 팀에 승리를 안기며 ‘플레이오프 출전=우승’ 공식을 이어왔던 셈이다.
결국 ‘슈퍼팀 2기’를 맞이하는 KCC 역시 관건은 최준용을 비롯한 주축선수들의 건강이 될 것이다. 이상민 감독이 “‘쟤가 왜 그러지?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안 되는데…’ 싶을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다. 새벽 훈련도 꼬박꼬박 나왔다”라는 기대감을 표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던 최준용은 8월 중순 내전근 부상으로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내가 건강하면 무조건, 500% 우승이다. 자칫 오버페이스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잠시 가라 앉히고 있는 것이다. 심해지는 걸 방지하는 차원의 휴식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게 최준용의 설명이다.
극단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KCC의 2025-2026시즌은 ‘우승 아니면 실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호화 전력이라 할 수 있었던 KCC는 FA 최대어로 꼽히는 허훈까지 영입, 더욱 화려한 라인업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이승현(현대모비스)의 이적이라는 출혈이 있었지만, 선수단의 몸값 규모나 네임벨류를 종합적으로 살펴봤을 때 ‘우승후보 0순위’로 꼽히는 팀이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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