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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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보고 느끼면 된다.

평소 미술관도, 강원도 원주에도 잘 가지 않는다. 가기 싫어서라기보다 갈 일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뮤지엄 산에는 몇 차례 다녀온 적이 있다. 한 번은 일 때문에 갔고, 다른 한 번은 속초로 가는 길에 휴게소처럼 들렀다. 이번 기사 주제가 '여름 피서 공간'으로 정해지고 뮤지엄 산을 떠올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최근 안토니 곰리의 개인전 소식이 워낙 떠들썩했던 이유도 있지만, 되돌아보면 뮤지엄 산은 여름 피서 공간이 갖춰야 할 거의 모든 것을 구비했기 때문이다. 볼거리, 마실 거리, 촬영할 거리, 냉방 시스템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다.
뮤지엄 산에 가는 날은 유난히 더웠다. 매년 여름 그래 왔지만, '사상 최고 더위'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날이었다. 뮤지엄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오크밸리 골프장을 지나게 된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티켓 부스 앞은 평일 낮 시간임에도 웨이팅 줄이 꽤 길었다. 대부분 커플이었고, 외국인 가족도 섞여 있었다. 뮤지엄 산의 티켓은 놀이공원처럼 판매되고 있었다. 기본권을 구입하면 '야외가든+종이 박물관+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고, 여기에 명상권, 제임스터렐권, 안토니곰리권이 추가될 때마다 가격도 함께 오르는 식으로. 우리는 자유이용권에 해당하는 시그니쳐권을 구입했다. 기본권에 더해 3가지 특별관을 모두 관람할 수 있는 티켓으로 가격은 성인 기준 5만9000원이었다. 티켓 두 장을 받아 들면서 '이 돈이면 원주 시내의 호텔 1박은 하겠다'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안토니곰리관. 이곳은 뮤지엄 산 건물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잔디 위에 세워진 입구를 통해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면 거대한 돔 공간이 펼쳐진다. 천장에는 원형, 입구 건너편에는 반달 모양의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어 햇살과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그 한가운데를 지키는 건 안토니 곰리의 일곱 조각상이다. 'Blockworks' 시리즈의 일환으로 각 조각들은 인사하듯 허리를 숙이기도, 일자로 누워 있기도, 두 다리를 꼰 채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그 사이를 오가는 관람객들 덕분에 조각들은 때때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라운드(Ground)라고 불리는 공간은 로마 판테온에서 영감받아 완성했다고 한다. 지름 25m, 높이 7.2m에 달하는 그라운드는 실제 판테온 크기의 4분의 3에 달한다. 관람에 정해진 규칙은 없었다.
그 점이 거슬리기도 했다. 작은 발걸음 소리도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고, 관람객들이 연신 울려대는 카메라 셔터 소리에 얼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안토니 곰리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곳에서 울리는 소리도 결국 자기 자신의 소리다. 그 발자취를 따라가라.





"되돌아보면 뮤지엄 산은 여름 피서 공간이갖춰야 할
거의 모든 것을 구비했기 때문이다.
볼거리, 마실 거리, 촬영할 거리, 냉방 시스템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다."
명상관은 돌로 쌓은 신라시대 고분 같았다. 작은 입구를 통해 들어가자 40평 규모의 돔 공간이 나왔다. 지붕 한가운데 벌어진 틈 사이로는 햇빛이 스며들었고, 기분 좋은 민트 향이 코끝을 훑고 지나갔다. 가장자리를 따라 관람객들이 커다란 원을 만들자 곧 명상이 시작됐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바닥에 몸을 누이고 기지개를 켜고 머릿속 잡념을 비워내려던 순간. '드르렁.' 건너편에 누워 있던 중년 남자가 명상관처럼 불룩하게 솟은 배를 드러낸 채 코를 골고 있었다. 사실 그럴 만했다. 천장에서 스며든 햇빛은 어둡지도 밝지도 않을 만큼 공간을 채웠고, 시원한 공기 덕분에 아늑한 동굴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으니까. 코골이가 시작된 후로도 명상은 30분 넘게 이어졌고, 다시 입구 밖으로 나왔을 때는 모두가 한결 가벼운 표정이었다.
안토니 곰리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털 없는 동물이고, 뇌를 사용해 끊임없이 피난처를 발명했습니다." 미술관은 문명인이 발명해낸 피난처다. 인류는 오랜 피난처였던 동굴을 벗어나 도시를 세웠지만, 현대인에게는 다시금 도시에서 벗어나기 위한 피난처가 필요하다. 그때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곳이 미술관이다. 이유는 아무래도 좋다.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는 데이트 장소를 찾아서, 혹은 그저 SNS에 근사해 보이는 사진을 올리기 위해서여도 좋다. 여름에는 미술관에 가보자. 옛날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운 동굴에서 안식을 얻었듯,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을 느꼈다면 이미 미술관을 찾은 목적은 달성한 것이니까.
무더운 여름에 도심 속에서, 여행지에서, 대공원에서 찾기 좋은 미술관.

강릉시립미술관 솔올관
강원도 강릉시에는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의 작품이 있다. '백색 건축가'로 불리는 리차드 마이어는 새하얀 외벽과 볼륨감이 특징인 건축가로, '프리츠커상' 수상자로도 명성이 높다. 그런 리차드 마이어의 특색이 고스란히 반영된 미술관이 강릉시 교동에 있다. 바로 강릉시립미술관 솔올관이다. 솔올관은 교동 7공원 안에 있어 자연과 함께 미술관 산책을 즐길 수 있다. 7월 23일부터는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조명한 전시 <생태주의: 이미지의 연대>가 개최된다고 하니, 강릉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내비게이션에 미리 저장해놓자.
주소 강원 강릉시 원대로 45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국내 최초의 사진 전문 공공 미술관이다. 미술관은 2019년 공모를 통해 선정된 오스트리아 건축가 믈라덴 야드리치, 한국 건축가 윤근주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검은색 큐브 형태의 외관은 사진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 '픽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위치는 도봉구 창동. 서울 시내에서는 꽤 거리가 있지만, 드라이브 코스로 들르기에 좋다. 개관 기념전으로 국내 여섯 작가들의 작품을 조명한 <스토리지 스토리>, 1920~1980년대 활동한 국내 사진작가 2000여 명의 작품으로 꾸민 <광채 光彩: 시작의 순간들> 전시가 진행 중이다.
주소 서울 도봉구 마들로13길 68

부산현대미술관
'부산'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해운대, 돼지국밥, 롯데 자이언츠, 밀면, 부산국제영화제 등등. 부산은 유독 즐길 거리가 많은 도시고, 그중에는 미술관도 포함되어 있다. 부산현대미술관은 부산역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의 사하구에 있다. 이번 여름에는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이 개최된다. 스웨덴 출신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는 세계 최초로 추상화를 그린 작가로 통한다. 전시 공간에는 작가가 미술 학교에 다니던 시절 그린 드로잉부터 말년에 완성한 수채화까지 총 140여 점의 작품이 공개된다고. 전시 일정은 7월 19일부터 10월 26일까지.
주소 부산 사하구 낙동남로 1191

화이트 큐브 서울
'새하얀 여백으로 가득한 공간'. 1993년 런던에서 시작한 화이트 큐브는 '현대적인 것을 역사적인 것으로, 역사적인 것을 현대적인 것으로'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우리 시대에 주목해야 할 작가들을 소개해오고 있다. 2023년에는 개관 30주년을 맞아 도산대로에 '화이트 큐브 서울'을 열었다. 도산공원에서 도보로 2분 거리에 있는 만큼, 직장인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입장료는 무료. 8월 9일까지는 중국 작가 저우 리의 첫 한국 개인전 <한 송이 꽃 속에 우주가 피어나다>, 9월 2일부터는 안토니 곰리의 전시가 진행된다.
주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5길 6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은 위치가 주는 특별함이 있다. 서울대공원 옆 나란히 위치한 이곳에서는 무더운 한여름에도 쾌적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때마침 온 가족이 함께 찾아도 좋을 전시가 진행 중이다.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I>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1만1800여 점의 작품 중에서 20세기 후반에 작업한 작품들을 엄선해 선보인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를 통과하며 완성된 작품들을 한 공간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김환기부터 박서보, 윤형근 등 작가 80여 명의 작품이 소개됐다고.
주소 경기 과천시 광명로 313
노랫말 없이도, 여름 내음이 느껴지는 다섯 앨범.

더 심즈, <The Sims (Original Soundtrack)>
미술관에서 홀로 이어폰 꽂고 들을 음악이라면 아무래도 가사가 없는 연주곡이 좋겠다. '미술관에서 듣는 음악'은 어디까지나 감상을 해치지 않는 배경음악이어야 하니까. 그런 점에서 게임 사운드트랙을 듣는 건 어떨까? <심즈 1>은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중에서도 수작으로 손꼽히는데, 여기에 삽입된 음악들은 미술관 밖 일상 속에서도 곧잘 어울린다.

곤티티, <Very Special Ordinary Days>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를 유심히 봤다면, 여름마다 곤티티의 음악이 떠오를 것이다. 영화 속 음악을 맡았던 곤티티는 일본의 어쿠스틱 듀오 뮤지션이다.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목표로 활동을 이어온 두 사람은 데뷔 이래 청량감이 느껴지는 연주곡들을 선보여왔다. 2008년 발매한 <Very Special Ordinary Days>는 결성 30주년을 기념해 완성한 앨범이다.

루이스 봉파, <Introspection>
브라질 출신의 클래식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루이스 봉파가 1972년 발표한 연주곡 앨범. 총 8곡이 수록되었다. 보사노바처럼 흥얼거릴 수 있는 멜로디는 아니지만, 잔잔하고 차분하게 흘러가는 기타 선율은 몇 번이고 반복해 들어도 쉽게 질리지 않는다. 앨범 아트워크 역시 인상적이다. 성벽처럼 쌓아 올린 두상, 그 안을 채운 푸른빛 하늘은 낯선 이국의 여름을 떠올리게 한다.

존 캐럴 커비, <Blowout>
존 캐럴 커비는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겸 프로듀서다. 그는 프랭크 오션, 솔란지, 스티브 레이시와의 협업으로도 유명하지만, 그의 앨범 역시 뛰어난 완성도로 두툼한 팬덤을 갖고 있다. 정규 앨범 <Blowout>은 존 캐럴 커비가 코스타리카의 자연 속에서 영감받아 완성한 앨범이다. 듣고 있으면 야자수가 늘어진 카리브해가 떠오른다.

펭귄 카페 오케스트라, <Penguin Cafe Orchestra>
이름만 놓고 보면 남극 출신 뮤지션일 것 같지만, 펭귄 카페 오케스트라는 영국 기타리스트 사이먼 제페스의 주도로 결성된 팝 밴드다. <Penguin Cafe Orchestra>는 1981년 발매된 펭귄 카페 오케스트라의 두 번째 정규 앨범. 클래식 음악과 토속 음악을 미묘하게 버무린 듯한 음색이 특징. 새롭고 실험적인 음악을 즐기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CREDIT INFO
Editor 주현욱
Photographer 이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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