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투자 1300억 손실 사태…당국 전수점검 촉각
증권·운용업계 "이례적 사태‥내부통제 허점 지적"
금감원 전수점검에 ETF 관련 업무 몸사리기 가능성
신한투자증권이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공급자(LP)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1300억원어치 장내선물매매 손실이 발생한 가운데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LP를 맡은 증권사는 ETF 가격 변동 위험 노출을 방어하기 위해 선물 매매로 헷지(위험회피)를 하는데, 시장 움직임에 따라 ETF 가격과 헷지용 선물 가격의 차익만 얻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이처럼 한 방향으로 쏠린 선물 주문이 많이 나오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업계 첫 책무구조도 도입에도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태의 여파로 신한투자증권은 일단 ETF LP 업무를 잠정 중단했다. 업계에 미칠 여파도 관심이다. 업계에서는 ETF를 설정할 때 1개가 아닌 여러 LP를 선정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직접적인 타격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다만 과거 사례를 비추어봤을 때 신한투자증권이나 LP 운용 과정에서 투기적 거래를 하던 일부 증권사가 운용 규모를 보수적으로 줄여나갈 가능성도 있다. 금감원의 전수 점검 결과도 변수다.
LP 업무 중 1300억 손실...증권, 운용업계 '이례적'
신한투자증권은 8월2일부터 10월10일까지 ETF LP 목적에서 벗어난 장내 선물 매매로 1300억원의 추정손실이 발생했다고 지난 10일 금융투자협회에 공시했다. 손실규모가 자기자본(5조4088억원)의 2%를 넘어 공시의무가 발생했다.
자산운용사는 ETF를 출시할때 증권사와 LP 계약을 맺는다. LP는 ETF의 가격과 ETF에 담긴 순자산가치(NAV)의 격차가 심하게 벌어지지 않도록 호가를 조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LP를 맡은 증권사는 시장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것에 따라 ETF를 사들이거나 팔아 주문이 정상적으로 체결되도록 한다. 동시에 ETF 가격이 하락할 것을 대비해 공매도나 장내선물 매매를 통해 헷지를 한다. 예를 들어 코스피200 ETF와 LP 계약을 맺었다고 가정해보면, 코스피200 선물을 매도해 반대포지션을 잡는 식이다.
신한투자증권의 경우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해 정상적으로 헷지를 해야 하는 규모보다 훨씬 더 많은 주문을 내는 이른바 '투기거래'(Speculaton)를 하다가 이러한 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LP 업무 수행이라는 본래의 목적과 맞지 않은 거래를 한 셈이다. 회사가 당국에 보고한 사고 시점을 고려했을 때 증시가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던 8월 초 선물 거래에서 손실이 발생했고 이를 복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실무자는 손실발생 사실을 숨기기 위해 외국계 증권사와 스왑거래(계약에 따라 정해진 시점에 자금이나 자산을 교환하는 거래)를 체결했다고 허위 보고했고, 2개월 간 회사에선 손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내부감사를 통해 이번 사건이 적발됐다.
증권사들과 ETF 운용사들 사이에선 이번 사태와 관련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통상 증권사들은 LP 업무를 할 때 ETF 주문량에 따라 헷지용도로 선물옵션을 매수 또는 매도한다. 반면 이번 사태의 손실 규모를 봤을 때 신한투자증권은 이보다 훨씬 큰 금액을 베팅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손실이 1300억원이라면 선물 매도나 매수 수량은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A증권사 관계자는 "LP 업무에서는 시장가격과 NAV 가격 차이나, 선물과 ETF 가격 차이가 발생하면 차익을 가져간다"며 "포지션을 한쪽으로 과하게 잡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대규모 손실 왜 제때 인지 못했나…리스크관리 구멍 지적
특히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내부통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 손실 한도는 물론 ETF에 대한 헷지 한도를 규제하고 있는데다가 매일 모니터링을 하고 있어 손실이 1000억원대까지 불어나긴 어렵다는 설명이다.
B증권사 관계자는 "LP 계좌에서는 선물을 사고파는 한도를 설정해놨고, 그 한도를 늘리려면 리스크 관리부서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며 "LP 운용 목적으로 현물이든 선물이든 거래를 매일 모니터링 하고 이상거래가 있으면 조치를 즉각 취한다"고 말했다.
A자산운용사 매니저는 "LP는 헷지를 하면서 선물 매매를 시시때때로 해야 한다"며 "자체 부서나 리스크 부서에서 일자별로 혹은 시간대별로 포지션을 점검하기 때문에 이렇게 큰 규모로 손실이 발생하는데도 인지하지 못한 게 놀랍다"고 말했다.
B자산운용사 매니저는 "실무자가 허위로 스왑계약을 맺었다고 하더라도 처음 손실이 발생하자마자 시스템에서 걸러져야 한다"며 "LP 업무 본질과 관련된 문제라기보다는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은 증권업계에서 선도적으로 '책무구조도'(금융회사의 각 임원별 내부통제 책임을 배분한 구조도)를 도입한 신한투자증권 입장에서 뼈 아픈 대목이다. 신한투자증권은 신한금융지주의 주도 아래 작년 9월 컨설팅을 받아 올 4월 책무구조도를 마련했다. 당시 신한투자증권은 "연말까지 시스템 구축과 파일럿 운영을 시작해 제도의 조기 정착과 내부통제 체계 혁신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힌 바있다.
신한투자증권 측은 이번 사태와 관련 "트레이딩 부서와 LP운용 헤지 부서를 분리해 운영하고 있었다"며 "자세한 건 내부감사 결과가 나오면 설명하겠다"고 전했다.
파장 어디까지 번지나…금감원 전수점검 촉각
신한투자증권은 LP 업무를 잠정 중단한 상태다. 이 회사의 관련 업무 중단이 당장 ETF 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ETF를 설정할 때 많게는 20개사, 적게는 3개사와 LP 계약을 맺기 때문에 증권사 한 곳이 LP 업무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호가를 제공받는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현재 금융감독당국은 신한투자증권 외 26개의 증권사, 자산운용사를 대상으로 파생상품 거래를 전수 점검하고 있다. 신한투자증권 외에도 LP 운용 중 파생상품 거래를 하다가 손실이 발생하거나 이를 은폐한 사실이 있는지 점검하기 위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한투자증권은) LP 계좌를 본래 목적 외에 사용하다가 사고가 난 것"이라며 "사건의 원인을 규명해 조치하고 유사한 사례가 없는지 전반적으로 살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부 정책이 각사별로 있기 때문에 개별 사실관계를 하나하나 따져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신한투자증권처럼 ETF LP 운용과정에서 고수익 거래를 용인했다가 손실이 발생한 사례가 재차 수면 위로 올라올 경우, 업계에서는 사태 여파가 확대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일례로 과거 대형증권사가 해외주식형 ETF의 LP 업무를 수행하던 중 헷지 거래로 상당한 손실을 봤고 결국 해외형 ETF의 지원 규모를 대폭 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B운용사 매니저는 "헷지거래와 차익거래를 엄밀히 따져봤을 때 증권사가 차익거래로 얼마만큼 고수익을 내왔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대형사들이 운용 규모를 줄인다면 자산운용사들은 ETF 설정시 초기자금투자(시딩)나 유동성공급을 받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백지현 (jihyun100@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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