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국장에 끌려온 대역죄인들에게 조선은 어떤 국가였을까?

[죄인 심문기록으로 본 조선후기① ]
세계사적 발전단계에서 벗어난 '조선'
왕이 반역죄인을 추국하는 현장에서벌어지는 '국가는 무엇이며,
왕은, 그리고 반역은 무엇인가' 논쟁

조선은 어떤 나라였을까

조선은 어떤 국가였을까? 언뜻 보기에 아주 단순해 보이는 이 질문은 실상 답하기 쉽지 않다. 조선이 과연 ‘국가’이기는 한 건가 하는 질문부터, ‘국가가 어떤 특성을 갖는다’고 말하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인가를 갖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도 답을 해야 한다.

통치질서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왕이 최고의 권능을 가진 왕조시대였으니 조선은 ‘전제주의’ 국가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선의 왕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고, 오히려 신하인 양반들의 권위가 때로 더 강했다는 의미에서 ‘양반의 나라’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려시대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국가의 권력이 중앙집권적이었으며, 정치질서를 운용하는 데 있어서 관료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점에서 ‘중앙집권적 관료국가’라고도 한다. 그 외, 관료제의 특성에 주목하여 ‘가산제적 관료국가’라고 하거나 ‘역사적 관료국가’라고 명명하는 경우도 있다.(가산제적 관료국가: 막스 베버(M. Weber)가 제시한 것으로, 가부장적 가족관계에서 비롯된 가산제적 질서가 국가로 확장된 개념. 즉, 관료는 지배자의 가산(家産)을 관리하는 사적인 하인으로, 지배자에게 인식적 구속을 받음. 역사적 관료국가: 사무엘 아이젠슈타트(S. Eisenstadt)가 제시한 것으로,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고도의 중앙집권적인 관료체제를 지칭. 사회적 분화가 가산제적인 체제보다는 진행되었지만, 근대체제보다는 여전히 제한됨. 이에 왕이 사회 내의 전통적인 귀족집단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서로 투쟁하게 됨.)

이처럼 조선을 설명하고자 하는 논의는 다양하게 존재하고, 조선의 국가를 직, 간접적으로 원용하고 있는 연구서들은 한 페이지에 일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느 특정 이론이 하나의 정설로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다. 사료상에 나타나는 국가의 모습은 때로 모순적이기도 하고 상반되는 경우도 존재하는데, 이러한 '조선' 국가를 설명할 도구가 여전히 부족하다.

1차복원 작업이 끝난 경복궁의 모습. 지금 모습처럼 조선의 정궁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조선이라는 국가는 이렇게 화려한 빛을 발했던 때가 있었을까.

명확하지 않은 '조선'이란 국가의 정체성

조선의 국가에 관한 이론적인 연구가 활발하지 못한 이유는 어느 학자가 지적한 바처럼, 조선 고유의 특징 때문일 수도 있다. 즉, 조선 국가의 역사적 성격이 세계사의 전형적인 발전 단계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서구 중심주의적 연구의 토양을 지닌 한국의 연구자들에겐, 한국의 전근대적 정치질서의 기본 구조를 설명하는 일이 결코 용이하지 않다. 서구의 경우는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중세의 봉건제, 이후 절대주의를 거쳐 근대국가로 나아가는 일련의 역사 발전 과정 속에서 특정한 정치 형태를 어떻게 이론화해야 하는가가 활발히 논의된 바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한반도에서 발전해 나간 통치구조나 정치체제를 어떻게 이론화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서구의 기준에 맞추어 고려를 중세시대로, 조선을 중세 해체기 혹은 (중세에서 탈피는 하였으나 근대에는 이르지 않은) ‘근세’시대로 명명하는 연구자들도 여전히 많다.

혹은 방법론적 전환 때문일 수도 있다. 역사학계는 이제 구조주의적인 역사 방법론에서 탈피하여 미시사(微視史) 중심의 새로운 방법론을 적용하고 있다. 국가와 같은 거대 담론에 대한 논의보다는 일상사와 같은 개인의 연구로 초점이 바뀐 것이다. 미시사 방법론은 기존에 활용되지 못한 자료를 적극 발굴해내고, 구조주의적인 시각 속에서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다양한 행위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 다소 사소해 보이는 그들의 일상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통해서 수백 년 전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복원하려고 한다. 연구 대상의 범위가 크게 확장되었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 보다 세밀한 이해가 가능해지고 있다.

그런데 당시 정치질서에 대한 명확한 이해 없이 일반인들의 삶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일이 실제로는 특정한 형태의 국가권력이나 정치질서에 대한 정교한 이해를 바탕으로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논하고 있을 뿐, 한국의 역사적인 정치변동이나 정치적 개혁 과정,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역사적인 의의와 같은 거대한 담론까지 논하고 싶은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연구자들이 논하기를 꺼리는 거대 담론은 외부에서 별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나타난 변화들에서 시작되는 것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 임금인 왕이 직접 죄인을 심문하고 있다.

반역죄인에게 조선이라는 국가는?

본 칼럼시리즈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국가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자 한다. 국가를 연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반역사건을 다루는 '추국'(推鞫: 왕의 명령에 따라 반역 등 중죄인을 신문하고 형벌을 내리는 형사적 절차)의 현장에 주목한다. 평소 정치질서가 잘 작동되고 있을 때는 사람들이 국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다가도,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을 때 '국가란 무엇인가'를 묻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받는 '반역'이라는 위기의 상황에 몰렸다는 것은, 해당 행위가 도전하거나 위협하고 있는 정치질서에 대한 전제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반역사건을 다루는 추국장이야말로 국가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 될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조선후기에는 정치사적으로 볼 때 중요한 반역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났고, 반역죄 혐의로 주요 정치인이 처형당하는 사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죄인들을 심문하고 죄인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추국장은 주로 왕의 형벌권이 남용되는 공간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후의 칼럼에서 자세히 논하게 되겠지만, 《추안급국안》기록을 보면, 추국장은 왕이 자의적으로 죄인을 처단하는 공간만으로는 볼 수 없다.

임금이 두려워 한마디 못하는 신하라면

예를 들어, 영조 29년 영조가 자신의 생모를 기리기 위해서 무덤의 격을 높이고, 그 공덕을 칭송하는 시호(諡號)를 내리는 의식을 하면서, 당시 대제학(大提學)인 조관빈에게 숙빈 최씨(조선 숙종의 총관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편집자주)에 대해서 죽책문(竹冊文: 주로 세자나 세자빈의 책봉 사실을 대나무로 엮은 책에 새긴 글. 여기서는 시호를 추증하는 내용을 죽책문으로 작성하도록 한 것이 문제가 됨)을 쓰라고 하였다. 조관빈은 다음과 같이 거절하였다.

“(생략) 명을 받들어 죽책문을 지어 바친다면 이는 국가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신은 은혜를 입음이 망극하므로 반드시 절의를 다하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또한 어찌 감히 단지 임금님의 권위를 두려워하여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조관빈은 죽책문이 주로 세자나 세자빈의 책봉문을 담을 때 쓰는 것인데, 숙빈 최씨는 후궁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무리 왕의 명령이라도 자신은 결코 죽책문을 쓸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왕명을 따르는 것이 오히려 국가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하로서 분수를 잘 알고 있음에도 왕의 권위가 두려워 한 마디 말도 못해서는 안 된다며 조관빈은 당당히 말하고 있다.

MBC사극 '무신'을 찍을 당시 추국장 무대 세트. 오른쪽 무대에 왕이 앉아 직접  죄인들의 반역혐의를 심문했다. 그러나 드라마 '무신'은 고려시대 무신의 난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조관빈은 단순히 왕의 말을 듣지 않는 신하였을까? 조관빈은 이 일로 인해 추국장에 끌려가 추국을 받게 된다. 흔히 생각하는 전제주의적 왕조국가였다면, 신하가 왕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오히려 국가를 저버린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것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습은 단순히 불충한 신하가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왕으로 환원되지 않는 비인격체로서의 국가가 상상되고 있는 순간이다.

본 칼럼시리즈에서는 이러한 사건들을 다루고자 한다. 추국장은 단순히 왕권의 폭력성만으로 환원될 수 없는, 보다 복잡한 정치과정을 담고 있다. 특정한 범죄를 반역죄로 삼아야 하는지 혹은 죄인에게 어떠한 형벌을 내려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를 두고, 죄인을 비롯하여 왕과 주요 정치 행위자들이 논쟁을 펼치는 공간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러한 사건의 사례분석을 통해서, 국가권력의 특성을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후기 국가의 특징을 추론하고자 한다.


글을 쓴 이하경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조선시대 반역자 심문 기록을 분석하여 전근대 국가의 특성을 조망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정치사상 및 법제사 관련 교과목을 가르치고, 노무현재단 ‘민주주의 리더십 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및 전근대 국가론이 주된 관심 영역이며, 주요 연구로는 『역사화해 이정표』 (공저), 『조선후기 사법기구』 (공저), “조선후기 추국장의 정치적 의미”, “조선후기 범상부도죄의 정치적, 법제사적 의미”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