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1세대’ H&Q코리아, 'PEF 태동 20년' 업계 발전 이끈다 [넘버스]

H&Q코리아 /사진=H&Q코리아 홈페이지 갈무리

국내 1세대 토종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H&Q코리아가 제8대 PEF운용사협의회 회장사를 맡게 됐다. H&Q코리아에는 회장사로서 시장 정보와 규제환경 변화 등을 전달하는 데 힘써 사모펀드 업계의 발전을 이끌어야 하는 중책이 주어졌다. 그간 자본시장 갈등을 중재하는 등 PEF 태동 이후 풍부한 경험을 쌓아온 만큼 성공적인 역할 수행이 기대된다.

중책 맡은 'H&Q코리아', PEF 주요 현안은

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프랙시스캐피탈에 이어 H&Q코리아가 PEF협의회 회장사로 내정됐다. PEF협의회는 오는 10월 말 회의를 열고 H&Q코리아를 회장사로, 임유철 H&Q코리아 대표를 8대 회장으로 추대하기로 했다. 임기는 11월부터 약 1년간이다.

PEF협의회는 국내 PEF 운용사들을 대변하는 공식 창구로 지난 2013년 출범했다. 현재 91곳의 회원사가 참여하고 있으며 운용자산(AUM) 규모는 약 93조원에 이른다. 이는 국내 PEF 시장의 70%가량이라 PEF 업계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봐도 무방하다.

출범 당시 이재우 보고펀드(현 VIG파트너스) 대표가 회장을 맡았고, 김광일 MBK파트너스 대표, 곽대환 스틱인베스트먼트 대표, 김영호 IMM프라이빗에쿼티 대표, 김수민 유니슨캐피탈코리아 대표, 강민균 JKL파트너스 대표가 회장직을 이어왔다. 현재는 라민상 프랙시스캐피탈 대표가 회장에 올라 있다.

8대 회장사를 맡게 된 H&Q는 시장 정보와 규제환경 변화 등을 회원사들에 신속히 전달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의 자본시장법 개정 움직임과 관련해 의견이 충돌하고 있어 회장사의 역할은 작거나 가볍지 않다. 새로 출범할 8대 PEF협의회는 자본시장법 개정이 필요한 의무공개매수 제도 등에 대한 대응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의무공개매수 제도는 대주주가 경영권을 매각할 때 소액주주들도 보유주식을 대주주와 동일한 가격으로 인수자 측에 매각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는 것이 골자다. 정부가 1998년 증권거래법을 통해 도입했으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을 신속히 추진하기 위해 1년 만에 폐지했다. 그러나 소액주주 보호 차원에서 정부가 재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대주주가 경영권을 매각할 경우 프리미엄이 붙어 시가보다 높은 가격에 지분을 팔 수 있지만 소액주주는 지배권이 이전된 후 시장가로만 처분할 수 있어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PEF 업계는 제도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성 있는 선에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잉 규제할 경우 인수합병(M&A)과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어려워 투자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매수자 입장에서는 제도가 시행될 경우 대주주 지분에 더해 소액주주 지분까지 매수해야 하므로 인수 부담이 커지게 된다. 이로 인해 소액주주 지분 공개매수 비율 등 세부 사항을 합리적으로 조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고 있다.

태동기부터 활약한 'H&Q코리아', 풍부한 경험으로 업계 이끈다

H&Q코리아는 이정진, 이종원, 임유철, 김후정 등 4명의 공동대표가 운영하는 PEF운용사로, 토종펀드 중 업력이 가장 오래됐다. 1998년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PEF운용사 H&Q가 전신이며, 2005년 서울사무소가 분사되면서 토종 PEF로 출발했다.

이정진 대표는 서울증권(현 유진투자증권) 부사장, 한일투자신탁운용·밸류퀘스트·리드코프 대표이사를 거치며 금융권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는 미국 로펌 스캐든압스 변호사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현재 H&Q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하고 있다.

이종원 대표는 H&Q코리아 서울사무소 시절이었던 1998년부터 함께한 원년 멤버로 PEF 운용경력만 25년에 달한다. 이 대표는 최고투자책임자(CIO)로서 신규 딜 발굴과 실행 및 펀딩 등 거래실무(엑시큐션)를 담당해 H&Q코리아가 투자 명가로 발돋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PEF협의회장으로 내정된 임유철 대표는 리타워테크, 리드코프 등에서 근무하다 2002년 H&Q코리아에 합류했다. 임 대표는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투자관리 및 포트폴리오 회사의 밸류업을 총괄한다. 또 이정진 대표와 함께 출자자(LP)의 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가졌으며 1호 블라인드펀드인 'H&Q-국민연금 1호'를 조성할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9년 김후정 파트너가 H&Q코리아 공동대표로 선임되며 현재의 4인 체제가 완성됐다. 김 대표는 이종원 대표와 마찬가지로 1998년부터 함께해온 인물이다.

10년 넘게 합을 맞춰온 4인의 대표는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팬데믹 등 자본시장의 굴곡을 함께 겪으며 트랙레코드를 쌓아왔다. 투자원금 대비 8.6배인 9700억원을 회수한 코리아 바이아웃 투자가 대표적이다. H&Q는 잡코리아를 인수한 뒤 6년간 영업·마케팅·플랫폼 투자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렸다. 이외에 결제 솔루션 케이에스넷 투자로 원금 대비 3.4배를 거둬들인 것 등도 주요 투자건으로 꼽힌다.

H&Q코리아의 주요 포트폴리오 /사진=H&Q코리아 홈페이지 갈무리

이외에도 H&Q코리아는 기업 내부의 이해관계를 정리하는 백기사펀드로 활약해 일동제약과 하이마트 등 경영권 분쟁을 조율하며 성공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한 이력도 있다.

일동제약은 2대주주였던 녹십자가 2014년 경영참여를 목적으로 지분 29.36%를 매입하며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다. 이에 H&Q코리아가 오너 일가의 백기사로 나서 녹십자 지분 20%를 사들이며 분쟁이 일단락됐다. 녹십자에 엑시트의 길을 터준 거래였다. 이후 일동제약은 일동홀딩스와 일동제약으로 분할해 상장하는 등 지주회사 전환 작업을 순탄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H&Q는 이 거래로 투자원금의 약 2배를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마트 사례도 대표적인 트랙레코드다. H&Q코리아는 2010년 초 900억원을 하이마트 전환우선주에 투자해 3대주주가 됐다. 하이마트는 2011년 6월 기업공개(IPO) 이후 1대주주인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 2대주주인 선종구 전 회장이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H&Q코리아는 유 회장, 선 전 회장, 최대 채권자인 농협 등과 협의해 분쟁이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 이후 분쟁이 종식되면서 하이마트 매각이 진행됐다. 롯데그룹이 하이마트를 인수하면서 H&Q코리아는 투자원금의 약 2배를 거둬들였다.

남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