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지 엔지니어링 작업을 좀 더 해야 할 뿐이에요. 아직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제까지 끝나길 바랐지만, 아직 다 못했어요.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고대역폭메모리(HBM)가 품질인증 절차를 밟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황 CEO의 발언은 삼성전자의 HBM이 최종 공급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 기술적 보완점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로선 엔비디아의 품질인증이 장기화하는 상황이 야속하다. 하지만 엔비디아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충분한 HBM 물량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SK하이닉스 외에 대규모 생산능력을 갖춘 삼성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황 CEO는 현재 독점 공급자 지위를 누리는 SK하이닉스 외에도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으로부터 HBM을 조달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엔비디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메모리반도체 제조사로부터 HBM을 받아 자체 그래픽처리장치(GPU) 칩과 함께 포장해 인공지능(AI)용 반도체를 완성한다. 품질인증은 생산을 맡긴 HBM이 만족할 만한 성능을 갖췄는지 평가하는 작업이다. 현재까지 엔비디아의 HBM 품질인증을 통과한 업체는 SK하이닉스가 유일하다. 지난 2022년 6월 HBM3(4세대)를, 올해 3월에는 HBM3E(5세대)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품질인증을 넘어야 SK하이닉스와 경쟁할 자격을 얻을 수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HBM3와 HBM3E에 대한 품질인증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론은 HBM3를 건너뛰고 HBM3E 공급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HBM 사업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커지는 이유는 품질인증이 길어지고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해 초 HBM3의 양산 준비를 마무리하고 시제품을 출하했다. 하지만 엔비디아는 자사 AI 반도체인 'H100'에 탑재할 HBM3를 모두 SK하이닉스로부터 조달하면서 삼성전자의 HBM 사업 경쟁력을 놓고 우려가 증폭됐다. 1년이 지나도록 삼성전자가 HBM3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급기야는 열과 소비전력 문제로 엔비디아의 품질인증에서 탈락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삼성전자는 즉시 HBM 사업화 계획에 이상이 없다고 반박했다.

다만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품질인증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는 점은 사실로 파악된다. HBM은 D램 칩을 수직으로 쌓는 실리콘관통전극(TSV) 기술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반도체원판(웨이퍼)을 화학적으로 가공하는 전공정부터, 회로가 그려진 칩을 적층한 다음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후공정까지 복잡한 공정이 다수 추가된다. 삼성전자는 불량 요인을 줄이기 위해 제조 장비와 소재 등을 놓고 다양한 해결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품질인증에 드는 시간도 길다. 엔비디아가 발열과 소비전력, 성능을 깐깐하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지난 4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HBM 품질인증을 위해 1000시간의 테스트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 걸림돌"이라며 "다양한 환경과 조건에서 속도, 발열, 전력소모량 등 성능을 종합적으로 체크해야 하기 때문에 이전 탈락 요인만 검사하는 것이 아닌 종합 검사 과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도 삼성전자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현재 SK하이닉스가 독점 공급하는 HBM 물량을 다변화해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동시에 AI 반도체 제조를 위한 충분한 HBM을 조달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가 당장 제품의 완성도 측면에서 SK하이닉스에 뒤진다는 평가를 받지만, D램 3사 중 가장 넉넉한 생산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박상욱 신영증권 연구원은 5일 보고서에서 "(HBM의)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황에서 HBM 제조업체보다 팹리스 업체들이 더 조급할 것으로 추측된다"며 "현재 엔비디아에 HBM3E를 공급하는 업체는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있지만 양사의 생산능력으로 수요를 충당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진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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