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무로부터, 아방가르드 브랜드 데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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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박춘무는 자신만의 확고한 디자인 철학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모던 아방가르드 룩이라는 장르를 꽃피운 1세대 디자이너다. 그는 현재 ‘로부터’라는 뜻을 지닌 프랑스어 전치사 ‘데(DE)’에 자신의 이름 끝 자인 ‘무’를 붙여 브랜드명을 지은 디자이너 브랜드 데무를 이끌고 있다. 1988년 론칭한 데무는 국내에서 처음 접하는 미니멀한 디자인과 블랙 컬러가 중심이 된 피스들을 선보이며, 유니크하면서도 전에 없던 독창성으로 론칭과 동시에 큰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데무의 아이덴티티가 된 건축적인 테일러링과 구조적인 실루엣 그리고 독보적일 만큼 유려했던 블랙 컬러의 활용은 그를 국내 톱 디자이너 반열에 올려놓았고, 이후 파리 및 뉴욕 패션 위크까지 진출하며 성공적인 궤도를 만들어나갔다.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감각으로 여전히 굳건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디자이너 박춘무. 오랜만의 파리 패션 위크 준비로 출국을 약 한 달 반 앞둔 어느 여름날, 데무가 새롭게 오픈한 패션 복합문화공간인 PCM스퀘어에서 그를 만났다.
지금 이곳 ‘PCM스퀘어’의 공간이 정말 멋집니다. PCM은 디자이너 박춘무의 이니셜인가요?
패션의 기본인 ‘패턴(Pattern)’, ‘컬러(Colour)’, ‘머티리얼(Material·소재)’의 앞 글자인 동시에 제 이니셜이기도 해요. 이제 패션은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서 나아가 소비자의 경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새로운 공간을 통해 데무 그리고 다양한 브랜드를 소비자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완성했습니다. 시장은 계속 변화하고 있고, 우리 또한 변화에 대응해야 하니까요.
9월 말 시작되는 파리 패션 위크를 준비하고 계시죠. 오랜만에 여는 데무 파리 패션쇼인데, 기분이 어떠세요?
지난해 2월에 프랑스 쇼룸 기업인 ‘분 파리(BOON Paris)’와 컬래버레이션 쇼룸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때 반응이 좋아서 올해도 함께했는데, 우호적인 반응이 많았고 현지 관계자들과 이야기가 잘돼 패션 위크 기간에 팔레 드 도쿄에서 쇼를 하게 됐습니다. 파리는 패션에 있어서 상징성이 크지만, 그만큼 냉정하고 특히 외국인에게는 굉장히 배타적이에요. 운 좋게 현지 패션 시장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 무리 없이 진행하고 있지만, 실수하지 않기 위해 바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데무는 유난히 파리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차갑지만 동시에 열린 시각을 가진 도시인 만큼 실험적이거나 아티스틱한 부분을 많이 인정해주는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예를 들어 판매를 위해서는 여기서 디자인을 멈춰야 하는데, 좀 더 욕심을 부려도 파리는 수용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좀 더 창의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게 파리의 장점이고, 그런 면에서 데무의 분위기와 룩을 특별히 사랑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파리에는 얼마나 머무시나요?
열흘 정도 머물 예정이에요. 1년 만의 재방문이고 또 업무 출장이다 보니 사실 설레거나 들뜨는 마음은 없어요. 그래도 미술관은 좀 둘러볼 생각이에요. 퐁피두 미술관을 가장 좋아하는데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해요.
서울패션위크도 거의 쉬지 않고 참가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데무의 쇼가 궁금합니다.
30주년 쇼였어요. 데무의 히스토리를 되짚어보는 프로젝트였는데, ‘무(無)로부터’라는 주제로 데무의 아카이브 컬렉션을 전시했습니다. 1988년부터 2018년까지 모든 자료를 모아 한 공간에 압축해 데무가 그동안 쌓은 아이덴티티를 총망라한 전시였는데, 꽤 멋졌던 것 같아요. 제 그림들도 함께 전시하는 바람에 평소보다 더 고되기는 했지만,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그만큼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그림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실제로 미술을 전공하기도 하셨죠.
어릴 적 꿈이 화가였어요. 일로 바쁠 때는 그림을 그릴 틈이 안 났는데,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겨 몇 년 전부터 꾸준히 그리고 있습니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건 아니고, 나만의 스트레소 해소 방법이에요. 업무가 끝난 후 제 작업실에서 혼자 조용히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해요.
PCM스퀘어와 디자인실 곳곳, 심지어 데무 매장에도 박춘무의 그림이 걸려 있어요.
취미로 그린 건데, 공간 분위기에 맞춰 몇몇 작품을 걸어두고 있어요. 잠실 매장에 과거 작업했던 가로·세로 900×1800cm 크기의 작품을 걸었는데, 반응이 좋아 다른 매장 몇 군데에서 의뢰가 와 작업을 더 해야 해요. 크기도 크고 재료도 많이 필요해 쉽지 않은데, 그래도 재미있어요. 박춘무를 모르던 사람도 매장을 지나가면서 작품을 보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심지어 작품에 대한 질문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참 고맙고 기분이 좋죠.
‘PCM스퀘어’는 데무와 다른 여러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새롭게 만든 공간입니다.
시장은 계속 변화하고 있고,
우리 또한 변화에 대응해야 하니까요.
월요일과 화요일은 고정 회의가 있는 날이라 가장 바빠요. 그때 데무와 PCM 및 온라인과 관련된 전체적인 업무를 의논합니다. 실무 회의이기 때문에 제가 안 들어가도 되지만, 웬만하면 참여하려고 해요. 저 또한 시장을 잘 알아야 하니까요. 평일엔 거의 일만 하고 목요일 퇴근 후 그리고 토요일은 그림을 그리는 날로 정했어요. 일요일은 가족과 시간을 보냅니다. 사실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죠. 손자, 손녀들이 집으로 놀러 와 같이 놀 때.
그렇다면 옷 만드는 게 여전히 좋은지도 궁금해요.
좋죠. 제 기질과 잘 맞는 직업인 것 같아요. 옷 사업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옷을 보고 자라 그런지 돌이켜보면 천생 옷쟁이였던 것 같아. 물론 스트레스도 있어요. 특히 요즘처럼 트렌드가 빠른 세상에서는 매출을 감 잡을 수가 없거든요. 그래도 어느 날 디자인이 술술 풀릴 때, 트렌드와 딱 맞아떨어질 때 같은 날은 날개를 단 듯 일하는 거죠.
여성 디자이너이자 기업의 대표로 큰 성공을 거두셨는데 수많은 여성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을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세상이 달라진 만큼 자신의 개성을 죽이지 말고, 온전히 좋아하는 것을 해나가길 바랍니다.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면 다양한 시도를 통해 스스로 원하는 것을 꼭 찾으세요. 그리고 나이는 아무 제한이 되지 않아요. 시작하고 싶은 그때가 가장 빠르다는 것을 가슴에 담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박춘무에게 데무란 무엇인가요?
‘나를 만들어줬다.’ 데무를 론칭할 때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노력 끝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저도 완성할 수 있었죠. 데무는 저의 목표고 보람이었으니까요. 그래도 36년 동안 잘 살아남았으니 초심을 잃지 않고 잘 키워 데무가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예정입니다.
더 커질 데무의 미래, 그 옆에 디자이너 박춘무도 여전히 존재하겠죠?
계속 볼 수 있길 바랍니다. 가까운 미래, 데무에 더 좋은 일이 있을 때 꼭 다시 만나요.
에디터 : 이설희 | 사진 : 김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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