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가이를 위한 시계 설명서(3) 끝내주는 영화, MSG를 치는 IWC

소니 헤이즈는 로터스 팀 소속으로 F1에 데뷔한 젊은 드라이버였다. 과감하고 공격적인 성향과 천재적인 주행 감각으로 큰 기대를 받았으나, 데뷔 첫 해 경주차가 완파되고 운전석에서 날아갈 정도로 큰 사고를 당하며 F1 세계를 떠났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23년, 소니 헤이즈는 떠돌이 도박꾼 또는 용병과 같은 드라이버로 살아간다. 가진 것은 헬멧과 수트가 담긴 가방, 낡은 밴 한 대와 아버지의 유품인 IWC 인제니어 시계. 그에게 돈과 영광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저 레이스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강렬한 등장과 함께 번개처럼 사라진 포르쉐 911. 현실에서 우승은 못 했다.
영화의 인트로, 미국에서 열린 'Rolex 24 At DAYTONA' 내구 레이스에서 주인공 소니 헤이즈는 포르쉐의 운전석에 올라 강력한 경쟁자인 BMW를 물리치고 우승한다. 감독은 그에게 팀의 정규 드라이버 자리를 제안하며 데이토나 24시의 상금과 부상인 시계를 전해주지만, 그는 이미 자기에게 시계가 있다고 말하며 드라이버로 일한 보수만을 받고 다시 여행을 떠난다.
2023 데이토나 24h 우승자에게 수여된 '롤렉스 데이토나' 워치

소니 헤이즈에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시계는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고, 다른 시계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강렬하게 등장했으나 인트로 이후 전혀 존재감이 없는 포르쉐처럼, 레이스 우승 기념 각인이 케이스백에 새겨진 롤렉스 데이토나는 그에게 별로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스폰서는 IWC
소니 헤이즈는 옛 동료의 제의로 F1 순위 말석을 차지한 APXGP 팀에 합류한다. 그의 헬멧 친가드에는 IWC 세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카메라가 그의 얼굴 정면을 비출 때마다 화면 중앙 하단 1/3 지점에 IWC 글씨가 무척 잘 보인다. 시계 회사가 F1 팀의 스폰서로 나서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작중 스쿠데리아 페라리 머신의 노즈에는 자세히 보면 태그호이어 로고가 새겨져 있다거나.

IWC가 후원하는 팀이니 당연히 팀 주요 멤버들은 IWC를 착용하고 있다. 영화를 위한 PPL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것이 당연한 모습일 것이다. 소니 헤이즈는 후원사 제공이 아닌 아버지에게 받은 시계를 착용하고 있지만, 이 시계가 IWC인 것은 우연의 일치다.

경기에 나서기 전 그는 시계를 라커에 벗어둔다. 그가 늘 착용하는 IWC 인제니어는 시계 본체와 줄이 전부 금속으로 만들어진 모델인데, 이런시계를 착용하고 실제 레이스에 출전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가죽이나 고무와 달리 메탈 소재의 줄은 큰 힘을 받아도 쉽게 끊어지지 않으며, F1과 같은 레이스에서 시계를 착용하는 행위는 손목에 금속 추를 매달고 스티어링 휠을 조작 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새벽에 벗어 놓은 시계 바늘이 딱 이 색으로 빛나는 것은 우연이다.

주인공이 벗어 놓은 시계는 극 중 시간을 암시하는 수단으로 종종 사용한다. 새벽에 그가 눈을 떴을 때, 시계의 야광 바늘이 가리키고 있는 모양으로 시간을 짐작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바늘 색은, 자연스러운 연두색이 아니라 푸른빛이 강한 청녹색, 공교롭게도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F1 컬러다. APXGP는 영화 속 세상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팀이다. IWC는 현실의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F1 팀의 스폰서이며, 올해 초 청록색 컬러의 한정 모델 시계 시리즈를 출시했다.

현실 세계에서 롤렉스는 모터스포츠에 많은 투자를 한 기업이며, 전 세계 곳곳의 서킷에서 롤렉스의 상징인 녹색 바탕과 금색 왕관이 발견된다. 영화의 주 무대가 서킷인 만큼 뜻하지 않게 자주 눈에 띄기 마련인데, ROLEX 글씨가 화면 가장자리에 반쯤 잘린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은 화면 중심에 주인공을 담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일 것이다.
극적인 그 장면 아닙니다. 영화사 배포 공식 스틸 컷입니다.

영화의 스토리가 흐르고, 주인공은 뜨거운 동료애와 극적인 모험의 결과 극적인 성공을 쟁취한다.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누구라 말할 수 없는 여성 등장인물은 주인공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데,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그에게 말한다. "(앞으로도 당신은) 계속 빨리 달리고요."

아, 이 대사가 증거나 마찬가지다. IWC는 어지간히 롤렉스를 의식하고 있거나, 어쩌면 콤플렉스 같은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게 된다. 롤렉스를 상징하는 모터스포츠용 크로노그래프 모델이 바로 데이토나다. 그리고 폴 뉴먼이 찼던 데이토나에 그의 아내가 '천천히 달리세요'라는 문구를 새겨서 선물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화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IWC를 소유한 주인공이, 우승 상품인 롤렉스 데이토나를 거절하고, IWC가 후원하는 레이싱 팀에서 활약한 다음, 여주인공이 주인공에게 그 유명한 문구를 반대로 말하는 건 전부 우연이다.
영화 밖에서. 브래드 피트의 시계는...
사실 영화에서는 단 한 번도 주인공의 시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시계 줄만 보고 IWC 인제니어라 짐작할 수 있을 뿐. 진짜로 시계에 관심 많은 사람이라면 그 시계가 무엇인지 검색할 테니 참 세련되고 멋진 연출이다. 그러나 집요할 정도로 이어지는 IWC 노출은 설탕, 소금 팍팍 치고 MSG까지 듬뿍 뿌린 느낌이다. 맛있게 느낄지는 개인 취향이다.

한 가지 더, APXGP 팀 컬러가 블랙/골드다. 'IWC 파일럿 워치 퍼포먼스 크로노그래프 41 Ref. IW388309'의 컬러와 꼭 맞는 매칭이다. 마케팅의 세계가 항상 철저한 계산으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니, 이건 우연이라고 해두자. 사진 많이 넣었으니 시계 광고나 다름없는 이 글이 IWC를 내려까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 또한 우연이라 하겠다.

IWC 인제니어 Ref. 1832에서 '영감을 받은' 주인공 시계
만년 2인자 같은 촌스러운 PPL과 별개로, 브래드 피트가 분한 소니 헤이즈는 멋졌다는 것에 많은 분들이 동의할 것이다. 잠깐 현실로 돌아와, 브래드 피트는 빈티지를 수집할 만큼 시계에 관심이 많으며, 이번 영화에서 그가 연기할 캐릭터와 어울리는 시계를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영화적 이해 관계로 주인공이 IWC를 착용하는 것이 결정된 상황에서, 캐릭터에 어울리는 1970년대에 생산된 시계인 인제니어 Ref. 1832를 선택한 것은 브래드 피트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브래드 피트는 인제니어 Ref. 1832를 그대로 착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취향에 맞도록 수정하기를 원했고, 편안한 착용감을 위해 Ref. 1832를 모티브로 더 얇은 시계를 제작하고, 다이얼 컬러는 차분한 녹색을 선택했다.

영화 촬영을 위해 시계는 총 2점의 실물이 제작되었다. 촬영을 마친 후 하나는 브래드 피트 본인이, 남은 하나는 IWC의 수장고로 갔다. 그리고 올해 4월 IWC는 녹색 다이얼의 인제니어를 출시했는데, 영화에서 소니 헤이즈가 착용한 시계는 아니다.

IWC의 현행 인제니어 오토매틱 40 모델은 1,690만 원의 가격표가 붙어 있다. 다만 영화를 모티프로 제작된 그린 다이얼 모델은 1,000점이 한정 제작되며, 국내 판매 가격은 그보다 비싼 1,850만 원이다. 승용차 한 대 가격의 시계는 부담스러우니 빈티지로 눈을 돌리면, Ref. 1832 모델은 출시 당시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1,000점 정도가 제작되었으니 구하기 쉬운 물건은 아니다. 가격은 적어도 우리 돈으로 3,000만 원 이상이다. 사치품 구입이 아닌 투자 목적이라고 합리화하려면 차라리 롤렉스 데이토나가 낫다.

편집자 주 

*자동차 관련 회사 중 국내에서 F1 더 무비를 가장 먼저 마케팅 툴로 사용한 곳은 포르쉐코리아다. 그런데 왜? 영화 전반부에 잠깐 포르쉐가 아주 잠깐 등장한다는 이유로 이런 프로모션을 하는 건 F1이랑 큰 연관이 없는 포르쉐에 어울리는 일은 아닌 듯. 포르쉐코리아 홍보 담당자야 회사돈으로 기자들 모아 빵빵한 상품 살포해 가며 나름 괜찮아 보이는 업적 쌓기 퀘스트를 완료 했겠지만, 오랜 시간 F1 팀을 운영해 온 자동차회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이 투자해 온 필드에 갑자기 숟가락 하나 들고 나타난 반갑지 않은 손님일 것이다. F1 더 무비에 대해 현실적인 이유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골수 F1 팬들이 아니더라도 포르쉐와 F1 더 무비는 연관성이라는  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포르쉐는 F1에서 활동했던 기록도 미미하고, 여전히 '간'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여튼 레이스의 현실성을 떠나 영화 자체만 놓고 보면 재미있는 영화고 발 빠르게 움직인 포르쉐코리아 덕분에 모처럼 극장을 찾아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