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니 헤이즈는 로터스 팀 소속으로 F1에 데뷔한 젊은 드라이버였다. 과감하고 공격적인 성향과 천재적인 주행 감각으로 큰 기대를 받았으나, 데뷔 첫 해 경주차가 완파되고 운전석에서 날아갈 정도로 큰 사고를 당하며 F1 세계를 떠났다.



소니 헤이즈에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시계는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고, 다른 시계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강렬하게 등장했으나 인트로 이후 전혀 존재감이 없는 포르쉐처럼, 레이스 우승 기념 각인이 케이스백에 새겨진 롤렉스 데이토나는 그에게 별로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IWC가 후원하는 팀이니 당연히 팀 주요 멤버들은 IWC를 착용하고 있다. 영화를 위한 PPL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것이 당연한 모습일 것이다. 소니 헤이즈는 후원사 제공이 아닌 아버지에게 받은 시계를 착용하고 있지만, 이 시계가 IWC인 것은 우연의 일치다.

주인공이 벗어 놓은 시계는 극 중 시간을 암시하는 수단으로 종종 사용한다. 새벽에 그가 눈을 떴을 때, 시계의 야광 바늘이 가리키고 있는 모양으로 시간을 짐작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바늘 색은, 자연스러운 연두색이 아니라 푸른빛이 강한 청녹색, 공교롭게도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F1 컬러다. APXGP는 영화 속 세상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팀이다. IWC는 현실의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F1 팀의 스폰서이며, 올해 초 청록색 컬러의 한정 모델 시계 시리즈를 출시했다.

영화의 스토리가 흐르고, 주인공은 뜨거운 동료애와 극적인 모험의 결과 극적인 성공을 쟁취한다.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누구라 말할 수 없는 여성 등장인물은 주인공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데,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그에게 말한다. "(앞으로도 당신은) 계속 빨리 달리고요."
아, 이 대사가 증거나 마찬가지다. IWC는 어지간히 롤렉스를 의식하고 있거나, 어쩌면 콤플렉스 같은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게 된다. 롤렉스를 상징하는 모터스포츠용 크로노그래프 모델이 바로 데이토나다. 그리고 폴 뉴먼이 찼던 데이토나에 그의 아내가 '천천히 달리세요'라는 문구를 새겨서 선물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화다.


한 가지 더, APXGP 팀 컬러가 블랙/골드다. 'IWC 파일럿 워치 퍼포먼스 크로노그래프 41 Ref. IW388309'의 컬러와 꼭 맞는 매칭이다. 마케팅의 세계가 항상 철저한 계산으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니, 이건 우연이라고 해두자. 사진 많이 넣었으니 시계 광고나 다름없는 이 글이 IWC를 내려까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 또한 우연이라 하겠다.


그러나 브래드 피트는 인제니어 Ref. 1832를 그대로 착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취향에 맞도록 수정하기를 원했고, 편안한 착용감을 위해 Ref. 1832를 모티브로 더 얇은 시계를 제작하고, 다이얼 컬러는 차분한 녹색을 선택했다.
영화 촬영을 위해 시계는 총 2점의 실물이 제작되었다. 촬영을 마친 후 하나는 브래드 피트 본인이, 남은 하나는 IWC의 수장고로 갔다. 그리고 올해 4월 IWC는 녹색 다이얼의 인제니어를 출시했는데, 영화에서 소니 헤이즈가 착용한 시계는 아니다.
IWC의 현행 인제니어 오토매틱 40 모델은 1,690만 원의 가격표가 붙어 있다. 다만 영화를 모티프로 제작된 그린 다이얼 모델은 1,000점이 한정 제작되며, 국내 판매 가격은 그보다 비싼 1,850만 원이다. 승용차 한 대 가격의 시계는 부담스러우니 빈티지로 눈을 돌리면, Ref. 1832 모델은 출시 당시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1,000점 정도가 제작되었으니 구하기 쉬운 물건은 아니다. 가격은 적어도 우리 돈으로 3,000만 원 이상이다. 사치품 구입이 아닌 투자 목적이라고 합리화하려면 차라리 롤렉스 데이토나가 낫다.
편집자 주
*자동차 관련 회사 중 국내에서 F1 더 무비를 가장 먼저 마케팅 툴로 사용한 곳은 포르쉐코리아다. 그런데 왜? 영화 전반부에 잠깐 포르쉐가 아주 잠깐 등장한다는 이유로 이런 프로모션을 하는 건 F1이랑 큰 연관이 없는 포르쉐에 어울리는 일은 아닌 듯. 포르쉐코리아 홍보 담당자야 회사돈으로 기자들 모아 빵빵한 상품 살포해 가며 나름 괜찮아 보이는 업적 쌓기 퀘스트를 완료 했겠지만, 오랜 시간 F1 팀을 운영해 온 자동차회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이 투자해 온 필드에 갑자기 숟가락 하나 들고 나타난 반갑지 않은 손님일 것이다. F1 더 무비에 대해 현실적인 이유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골수 F1 팬들이 아니더라도 포르쉐와 F1 더 무비는 연관성이라는 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포르쉐는 F1에서 활동했던 기록도 미미하고, 여전히 '간'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여튼 레이스의 현실성을 떠나 영화 자체만 놓고 보면 재미있는 영화고 발 빠르게 움직인 포르쉐코리아 덕분에 모처럼 극장을 찾아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