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하거나 과하거나! 2023 FW 트렌드 메이크업 밸런스 게임
더 이상 중간은 없다. 끝과 끝, 극단으로 치닫는 맥시멀 뷰티의 시대를 열어 줄 숨 막히는 밸런스 게임이 시작됐다.
HI BARBIE!
인스타그램에는 바비 인형, 분홍색 하트 모양의 마이크로 미니 백, 이제는 구하기도 힘든 디올의 핑크빔 하이라이터가 잔뜩 올라와 사람들로 하여금 밤새 구글을 검색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이게 다 영화 <바비> 때문이다. 누군가는 핑크를 지나치게 징그러운 컬러라고 하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컬러로 여긴다. 단순히 분홍색에 대한 해석이 달라서 생긴 논란은 아니다. 무언가에 어중간한 관심을 가지면 질리기 직전까지 당해봐야 정신을 차린다. 곱디고운 분홍색을 눈두덩에, 입술에, 두 뺨에 한가득 뿌려보자. 분홍색에 듬뿍 취해보는 거다. 사랑에서 증오로 변하게 되면 오히려 애착이 강해지는데, 이때 핑크의 절정을 맛볼지도 모른다. 사랑과 미움은 원래 한 끗 차이거든.
NEO GEISHA
눈가를 둘러싼 붉은 기운이 런웨이를 장악했다. 사라웡, 브루스 글렌이 보여준 형광기 가득한 핑크부터 코르미오의 파스텔 핑크를 지나 희용희, 언더커버의 쨍한 레드까지. 게이샤 룩을 소화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채도와 명도에 따라 강렬하면서도 수줍음을 잃지 않는 소녀 뉘앙스가 표현되기도 한다. 크리미한 텍스처의 아이템을 눈가 전체에 바르거나 매트한 파우더 타입을 사용해 얼굴 전체를 물들여도 된다. 여기에 손끝으로 경계를 흐트러뜨리듯 살짝 번지게 연출하면 오즈 야스지로 영화 속 신비한 여성처럼 만들어줄 거다. 참고로 ‘게이샤’는 춤과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예술가로, 매춘을 하던 ‘오이란’과는 다르니 따라 하는 데 거부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THE FIFTH ELEMENT
미래엔 어떤 형태로 진화해갈까? 지구는 더워지고, 기계는 지능을 갖추고, 인간은 우주로 나아가는 미래에도, 여전히 우리는 같은 모습일까? 아마 영화 <매드 맥스>의 전사를 보듯 체인 피어싱과 드레드 헤어를 선보인 안나키키나 기하학적이고 반복적인 메탈 기어를 온몸에 장식한 오프화이트, SF 판타지 영화 속 3D 인물 같은 가우라브 굽타 쇼의 모델 같지 않을까? 어릴 적 상상한 2023년이란 미래 속 인류의 모습과 지금을 비교하고, 미래에 등장할 요소는 어떨까 상상하며 메이크업에 재미를 가미해보자. 이런 룩을 시도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맑고 투명한 피부 연출이다. 디온 리, 캘빈 루오처럼 입자가 아주 고운 하이라이터로 얼굴에서 광선 빔을 뿜어내는 것도 방법이다.
GOTH PRINCESS
블랙 컬러 섀도와 립스틱을 구입했다면? 고민 말고 한 번에 두 가지 모두 사용하자. 넷플릭스 <웬즈데이> 열풍으로 고스 룩은 계속될 전망이다. 시대가 흘러도 고스 룩 자체는 대체로 비슷하지만 크게 달라진 게 하나 있다. <웬즈데이> 속 ‘웬즈데이’보다는 영화 <아담스 패밀리> 속 ‘모티시아’에 가깝다. 검은색을 지저분하게 칠하면 끝나는 스타일 같지만, 의외로 정교한 메이크업 스킬이 필요하다. 메이크업에 자신 있다면 로다테의 쇼처럼 서슬 퍼런 아이라인과 똑 떨어지는 다크 립을 매치하면 된다.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면 로베르토 카발리를 참고해 아이 메이크업 스머징에 공을 들여 겹겹이 레이어를 쌓는 것부터 시작할 것.
OH METALLICA!
보석보다 귀한 금속의 등장. 재미있는 건 전형적인 메탈 클리셰에서 벗어나려던 예전과 달리 본격적이고 노골적인 접근을 시도했다는 것. 실제로 톰 브라운 쇼를 리드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사마야 프렌치는 ‘소행성’을 모티프로 룩을 전개했다고. 끌로에의 메이크업은 마치 달에서 디스코를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SAVE MY EYES
한밤중 자유로에 가면 선글라스를 쓴 묘령의 여인이 차를 세워달라며 손짓한다고 한다. 가까이서 보면 선글라스가 아닌 시커멓게 뚫린 눈을 가졌다는 게 ‘자유로 귀신’. 사실인지 환각인지 알 수 없지만, 자유로 귀신의 움푹 파인 눈이 트렌드가 됐다. 퀭하다 못해 귀신처럼 파인 눈가, 며칠 밤을 새운 사람 혹은 죽은 사람처럼 보일 수도있겠지만 뭐 어떤가? 밝고 화사한 아이섀도만큼 기분 전환에 좋은 게 없지만, 이번만큼은 흙빛, 잿빛, 또는 회갈빛 섀도를 이용해 한 차례 톤을 낮출 때다.
SKIN POSITIVE
몇 년째 이어지는 베어 스킨 트렌드는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선 보디 포지티브의 일환이다. 최소한의 터치로 피부 자체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피부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며, 더 자유롭게 메이크업을 즐기는 무브먼트이기도 하다. 잊지 말자. 아무것도 안 바를수록 더 쿨하다.
WE’RE BLUSHING
어떤 컬러를 택하든 블러셔를 손에 들었다면 치크의 영역을 확장해볼 것. 결코 튀거나 무섭지 않을 거다. 리퀴드 타입을 사용해 메이크업 스펀지로 얼굴 중앙 부분부터 터치해 컬러를 풀면 되는데, 블러셔가 아닌 브론저라고 생각하면 접근하기 더 쉽다. 같은 컬러 파우더 블러셔로 가볍게 쓸어주면 진한 발색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A BAD HAIR DAY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주인공 금자는 감옥에서 다양한 인물을 만난다. 그중 가장 강한 임팩트를 남긴 건 단연 ‘마녀’. 엽기적인 범죄 설정에 걸맞은 그는 무척 잔혹해 보였는데, 빗질이라곤 해본 적도 없는 듯 크게 부풀려진 헤어가 이미지에 단단히 한몫했다. 풍성한 ‘배드 헤어’는 과감하고 도전적인 스타일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다. 실험을 망친 과학자 같은 어웨이크 모드와 코페르니, 폭탄을 맞은 것처럼 부스스하게 날리는 요지 야마모토나 아키 마스다 쇼까지도 연출해볼 수 있다. 상대에게 강함을 보여주기 위해 깃털을 부풀리는 앵무새도, 감옥 속에서 서열 정리가 시급한 것도 아니지만 한번쯤 해볼 법한 머리다. 마침 정전기가 한창인 계절,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해보겠는가?
PLAITS, PLEASE
런던 주거 지역을 걸어본 적이 있다면, 런던 틴에이저가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수단 중 하나가 바로 헤어스타일링임을 알 수 있다. 콘로우나 박스 브레이드, 드레드 록, 크로셰 브레이드까지. 언젠가부터 모든 이의 꼬임이 과감해졌다. 높이와 모양을 통해 다양한 구조를 실험하고 누가 더 많이 땋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다양하게 연출한다. 배배 꼬일 대로 꼬인 머리가 한편으론 조각상 같기도,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이쯤 되니 도대체 어디까지 꼬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뻔뻔함과 엉터리로 대충 꼬아놓은 머리도, 상식의 범주에서 허용할 수 없는 범위의 브레이드 헤어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
I ‘FILL’ YOU
연애 시장이 얼어붙은 걸까? 작년 한 해 키스를 끝낸 뒤 마구잡이로 번져 있던 스머징 립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똑 떨어지는 립 라인의 풀 립이 그 자리를 꿰찼는데, ‘저 여자 쥐 잡아먹은 것 같아’라는 말이 절로 입 밖에 나온다. 그야말로 입술만 동동 뜨는 듯 이목구비 중 ‘구’만 보일 정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검은색과 갈색, 붉은색 등 컬러에 상관없이 꽉 채워 바르는 게 포인트.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입술 모양인데, 풀 립을 연출할 때 지저분한 립 라인만큼 못난 게 없으니 조심할 것. 정교하게 다듬은 모양과 입술 선, 여러 번 레이어링해 바른 듯한 매끈함까지 신경 써야 한다.
NAKED LIPS
“어디 아파?” 아픈 게 아니라 ‘멋’이야. 어디 갇혀 있다 나온 사람처럼 파리하고 창백하다 못해 팀 버튼 영화에 나올 법한 입술 색이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면 당신은 진정한 Y2K 미학의 추종자. 케이트 모스와 나오미 캠벨, 파멜라 앤더슨을 시작으로 온스타일에서 미국 리얼리티 쇼가 유행하던 시절 패리스 힐튼과 킴 카다시안을 떠올리기도 한다. 헤일리 비버, 지지 하디드, 도자 캣의 튜토리얼을 참고해 립밤이나 입술의 톤을 살짝 낮추는 글로시한 립글로스를 사용해도 좋지만, 컨실러를 입술에 바른 뒤 파우더로 가볍게 마무리하는 방식이 가장 확실한 효과를 얻는다. 물론 페일 립의 정석은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 거다.
SILVER VIM
불꽃처럼 강렬한 인상을 나타내려면 오로지 원색을 사용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파민 분비의 특효약은 실버라는 걸 요즘 들어 다시금 실감한다. 숨 막힐 정도로 시린 실버 컬러를 살짝 얹는 것만으로도 꽤 근사해지거든. 팁을 주자면 실버 아이템은 대부분 무겁고 끈적이니 평평하고 빳빳한 브러시를 사용하는 게 좋다.
WHITE SPECTRUM
화이트 컬러를 시도하기로 결심했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활용하자. 눈썹뼈, 옆 광대에 흰색을 쓸어 발라놓은 것이 꼭 ‘누워서 찹쌀떡을 먹다가 얼굴 위로 흘린 사람 아니야?’ 생각하게 만들거나 배트맨 가면을 탈색한 건가 싶도록 눈썹까지 하얗게 칠하는 거다. 지금 말한 모든 메이크업을 다 한다면 어느 모임에서도 당신이 주인공이 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