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와 샤넬이 선택한 향수 장인의 브랜드 '로렌조 빌로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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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백화점에 갈 때마다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하거든요.

한 브랜드의 팝업 매장에 갔어요. 로렌조 빌로레시Lorenzo Villoresi. 저에겐 낯선 브랜드입니다.

향수병이 독특하더군요. 투명하고 새빨간 육각형 병에 은색 뚜껑. 디자인만큼이나 향도 강렬합니다. 장미와 재스민 사이로 퍼지는 파촐리. 묵직한 샌달우드와 머스크까지. 굉장히 이국적이에요.

향 이름은 알라무트. 제품 소개를 읽으니, 제가 느낀 생경함이 또렷한 이미지로 바뀝니다.

‘향기로운 아라베스크가 떠오르는 중동 여행을 담은 향’. 신기하게도 직접 가본 적도 없는 중동의 궁전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이 브랜드의 모든 향수는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이야기가 더 있을지 궁금해졌어요.

‘마스터 조향사’로 불리는 로렌조 빌로레시를 화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어요.

희끗한 머리와 수염, 짙은 눈썹과 눈동자. 향만큼이나 눈빛이 강렬한 그는 2시간이 넘게 자신의 향수 철학을 들려줬습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아틀리에를 직접 구석구석 비춰가면서요.’

로렌조의 '떵 드 네쥬' 향수. ⓒ로렌조 빌로레시

Chapter 1. 에르메스와 샤넬이 선택한 향수 장인의 브랜드

로렌조 빌로레시는 1990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출발한 향수 브랜드입니다.

패션의 나라 이탈리아. 역사 깊은 향수 브랜드가 적지 않습니다. 800년이 넘은 피렌체 브랜드 산타마리아노벨라, 117년 된 밀라노 브랜드 아쿠아 디 파르마가 대표적이죠.

이들 사이에서 30년 남짓 된 브랜드 로렌조 빌로레시가 뿜어내는 무게감은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건 조향사 로렌조 빌로레시의 존재감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탈리아의 대표 향수 장인이에요. 이력이 화려합니다. 2006년에 향수계의 오스카상이라는 ‘프랑수아 코티’를 받았습니다.

2022년엔 이탈리아 장인을 선정하는 ‘마에스트로 디 아르테 미스티에르’의 ‘아티스틱 퍼퓨머리’상을 받았어요.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샤넬·펜디·구찌와 향수 작업을 했고, 포시즌스 호텔 어매니티에 그의 향을 담았습니다.

동시에 그는 조향 감각을 뛰어넘는 오라를 지니고 있습니다. 고대 철학과 성서신학을 연구한 독특한 경력. 중동과 아프리카를 여행한 경험이 담긴 이국적인 향. 이 낯선 향을 소개하는 문학적 서사.

예를 들어볼까요. 그는 자신이 거닐었던 사막의 향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막의 향기는 지울 수 없는 향기, 시간의 향기, 바람의 향기와 저 먼 곳 수천 송이 꽃에서 휘날리는 꽃가루의 향기, 모래의 결정, 유리의 울림처럼 섬세하고 투명한, 꿈과 수정처럼 맑은 생각의 향기, 숨겨진 주문과 잠들지 못하는 바다의 향기입니다.”

이 브랜드의 남다름이 느껴지시나요. 그의 향수엔 깊고도 섬세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로렌조 빌로레시 조향사. ⓒ로렌조 빌로레시

Chapter 2. 중동의 향에 빠진 철학자, 조향사가 되다

로렌조 빌로레시는 원래 철학자를 꿈꿨습니다. 피렌체 대학에서 고대 철학과 신학을 연구했어요. 1981년, 연구를 위해 찾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그는 향의 세계에 눈을 뜹니다. 중동의 향에 사로잡힌 거예요.

“굉장히 강렬한, 맡아본 적 없는 향을 일상 속에서 만났어요. 물담배용 장미꽃 향, 카다멈 커피, 민트차, 커리 향… 이렇게 풍부한 향이 끝없이 나타난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이때부터 향과 향신료, 에센스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스물다섯의 로렌조.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시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이집트부터 모로코, 수단, 이스라엘, 요르단… 연구 여행을 떠날 때마다 향료를 사 모았습니다.

피렌체로 돌아오면 조향을 연구했어요. 증류 시설을 만들어 에센셜 오일을 뽑아냈죠. 실력이 늘면서 맞춤 향수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직접 만든 ‘향기 팔레트’를 섞어 친구에게 가장 어울리는 향을 찾아주는 취미가 생긴 거예요.

그렇게 취미로 향을 다룬 지 10년. 럭셔리 브랜드 펜디FENDI가 문을 두드렸어요. 지인에게 선물한 향수를 펜디의 직원이 시향한 거예요.

펜디의 의뢰로 그는 갑자기 1000개의 향초를 만들게 됩니다. 1990년. 철학자가 조향사가 된 순간이었죠.


Chapter 3. 메소포타미아 전설과 그리스 신화를 담은 향수

철학자가 만든 향수는 무엇이 다를까요.

로렌조 빌로레시의 모든 향은 선명한 비전Vision에서 출발합니다.

“향수를 만들 땐 먼저 내가 어떤 장면을 표현하고 싶은지 상상해요. 그 장면 속의 이야기와 감정, 감각까지 세세하게 떠올리죠.”

예를 들어볼까요. 2000년에 출시한 ‘딜먼’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낙원입니다. 태양이 뜨는 땅이자, 수메르 신화가 펼쳐지는 곳이죠.

로렌조는 고대 철학 수업에서 들었던 전설을 떠올렸어요. 수풀에는 보석이 박혀있고, 새싹과 꽃과 과일이 가득한 땅. 그 장면을 향수로 옮겼죠.

직접 시향한 딜먼. 탑 노트부터 베이스 노트까지 이어지는 시트러스 향에서 태양의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장미와 재스민 향에선 낙원의 꽃밭이, 오렌지블라썸과 바닐라에서 반짝이는 수풀이 떠오릅니다.

향의 출발점에 독창적인 비전이 있다는 것. 이것이 아티스틱 향수와 상업적 향수를 가르는 차이라고 빌로레시는 말합니다.

“매년 수천 가지의 향수가 쏟아져나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미 성공한 향수를 분석해 이를 흉내 낸 제품이에요. 트렌드를 쫓아서 만든 향수인 거죠.

계획적이거나 의도적인 결과물은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없어요. 아티스틱 향수는 자유로운 영감과 아이디어의 결과물이어야 합니다.”

로렌조의 '딜먼' 향수. ⓒ로렌조 빌로레시

Chapter 4. 상상 속 장면을 향으로 번역하다

비전을 떠올리고 나면, 다음은 이를 향으로 풀어내야겠죠. 로렌조 빌로레시는 이를 ‘번역’이라고 표현합니다.

번역 작업에는 단어가 필요하죠. 그의 아틀리에를 꽉 채운 나무 선반, 그 위에 줄지어 선 1000개가 넘는 흑갈색 유리병이 ‘향기의 알파벳’입니다.

“이 향료들을 조합해 제가 표현하고 싶은 장면과 그 속의 감정을 구현하는 거예요. 단순히 장면만 구현한다면 실패입니다. 반드시 감정이 함께 떠오르게 만들어야 해요.”

상상한 장면이 완벽하게 향으로 재현되는 순간을 어떻게 알아챌 수 있을까요?

“물잔을 두드릴 때와 같아요. 좋은 잔을 두드리면 쨍, 하고 맑은 소리가 울리죠. 향이 완벽히 구현되면 바로 그런 울림을 느끼게 됩니다. 원료가 1g만 넘쳐도, 1g이 부족해도 그 울림을 얻을 수 없어요.”

최고의 원료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마다가스카르와 스리랑카를 여행하며 레드 참파카와 푸른 연꽃, 베티버를 들여오는 식이에요.

그가 사용하는 파촐리만 해도 인도네시아산부터 아랍산까지, 다섯 가지나 됩니다.

하지만 그는 ‘희귀한 원료’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강조했어요.

“희귀하고 비싼 원료를 쓴다고 좋은 향수가 되는 게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이 최고의 조향사가 되겠죠. 원료를 구할 땐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해요. 내가 구상하는 향에 딱 맞는 원료인지, 그게 중요하죠.”


Chapter 5. 향수는 한 편의 ‘시'와 같다

향에 대한 취향은 어린 시절에 결정된다고, 빌로레시는 믿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좋아하는 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죠.

“예술가는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는 내 작품을 사랑하겠지’하는 희망으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겁니다. 향수도 똑같습니다.”

조향사에게도 개인의 취향이 있겠죠. 어떤 향을 가장 좋아하냐고 물으니 이렇게 답했습니다.

“사실 제가 어떤 향을 좋아하는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상상한 장면을 제대로 담아내는 향을 찾아내려고만 하죠.

가장 인기 있는 향수 ‘떵 드 네쥬’만 해도 그래요. 전 사실 달콤한 향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향수를 만들 땐 벨 에포크 시대의 무도회를 상상했어요. 달콤한 꽃 향이 파우더 향을 감싸는 듯한 느낌의 향수가 나왔죠.”

로렌조 빌로레시는 향을 ‘코로 즐기는 시詩’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시공간을 초월한 풍경을 보여주고,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향과 시가 닮았다는 거예요.

향을 설명하는 그의 표현을 듣다보면, 그가 진짜 시인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우라 마리스’라는 향수가 있습니다.

지중해의 풍경을 그려낸, 솔향이 감도는 향수죠. 그는 “바다 위로 굽이치는 소나무가 바람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설명하더군요.

“향기는 우리 일상에 시를 더합니다. 나만의 장소에서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시공간을 초월하는 감각을 경험할 수 있죠. 향과 함께한다는 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이에요.”

로렌조의 '아우라 마리스' 향수. ⓒ로렌조 빌로레시

*이 노트는 로렌조 빌로레시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롱블랙 무료 아티클 - 로렌조 빌로레시 : 조향사가 된 철학자, 역사와 신화를 향으로 그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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