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글로벌AI] 美 AI빅테크 간 주고받기식 순환 거래… 윈윈인가 거품인가

이규화 2025. 10. 2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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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와 구매로 스파게티처럼 얽힌 순환거래
생태계 중심에 MS, 주요 투자자이자 구매자
거대 자금 필요한데 한정적…그래서 ‘품앗이
닷컴버블 매출 부풀리기 ‘벤더 파이낸싱’ 연상
수익창출 없는 거대 순환거래는 거품키울 수도
샘 올트먼(왼쪽) 오픈AI CEO와 팀 쿡 애플 CEO. 연합뉴스


인공지능(AI) 산업의 중심에 선 미국 빅테크들 사이에서 서로 투자하고, 동시에 상대방의 제품(서비스)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순환적 거래’(circular deals)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이러한 거래 구조가 단기적으로는 ‘윈윈’(win-win)처럼 보이지만, 거품을 키우는 불안한 조짐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엔비디아와 오픈AI의 파트너십이다. 엔비디아는 최근 오픈AI에 최대 10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오픈AI는 이 자금으로 엔비디아의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수백만개 구매할 예정이다.

이 거래는 겉으로는 단순한 협력처럼 보이지만, 자금이 투자에서 구매로 다시 순환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WSJ은 이를 ‘신형 벤더 파이낸싱’이라고 지적했다.

오픈AI는 여전히 적자 상태지만 이 거래로 인프라 확충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고, 엔비디아는 매출을 확대하는 구조다. 그러나 낙관적인 투자자에게는 상생처럼 보이지만, 비관론자들에겐 AI 생태계 내 거품 확산의 근거로 읽힌다.

이러한 순환 구조는 엔비디아와 오픈AI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모건스탠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오픈AI,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MS), 오라클, AMD, 코어위브(CoreWeave) 등 6개 기업 간의 자금 흐름은 마치 물고 물리듯 얽혀있다. 이를 WSJ는 ‘스파게티 접시’같다고 했다.

오픈AI는 오라클로부터 향후 5년간 3000억달러 규모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구매하기로 합의했지만, 이 막대한 구매 자금이 실제로 어떻게 조달될지는 불투명하다. 엔비디아의 투자가 전제가 아니면 거래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엔비디아의 경쟁사 AMD는 오픈AI를 주요 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오픈AI가 AMD 주식을 주당 1센트에 최대 10%까지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면서 수백억 달러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이 거래는 사실상 “고객이 되어달라”며 돈을 건넨 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또 다른 축인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 코어위브는 이 순환 거래의 또다른 복잡한 단면을 보여준다.

엔비디아는 코어위브의 지분 약 5%를 보유하고 칩을 공급하면서 코어위브가 팔지 못한 클라우드 용량을 2032년까지 전량 매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사실상 고객사에 대한 재정 보증이나 다름없다.

이 생태계의 중심에는 MS가 있다. MS는 오픈AI의 주요 투자자이자 매출 공유 파트너이며, 엔비디아의 GPU를 대규모로 구매하고, 동시에 AMD와도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코어위브의 최대 고객도 MS다. 오픈AI는 코어위브의 고객이자 또 주주이기도 하다. 투자, 제품(서비스) 구매, 지분 참여가 얽히고설킨 구조 속에서 한 회사의 자금이 다른 회사의 매출이 되고, 그 매출이 다시 투자금으로 돌아가는 선순환(악순환일 수도 있다)이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이와 별개로 오라클과 AMD가 새로운 AI 칩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빅테크 사이의 교차 거래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아마존과 메타 역시 AI 서버용 반도체 확보를 위해 엔비디아에 수십억 달러를 선투자하면서 동시에 자사 클라우드 인프라를 경쟁사들에게 빌려주는 방식으로 순환 구조에 편입되고 있다.

미국 AI 빅테크들의 순환 거래는 마치 품앗이를 해주는 듯한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AI산업에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돼야 하는데 이를 ‘생짜로’ 마련하는 기업은 극소수다. 그러니 같은 자금규모가 어느 회사는 투자, 다른 회사에는 매출, 또다른 회사에는 ‘빌리는 자금’이 되는 것이다.

WSJ는 이러한 거래 구조가 반드시 문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AI로의 산업 전환기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대규모 자본 투입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익 창출이 가시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천문학적 자금이 내부 순환만을 반복할 경우, 투자자 피로감이 커지고 거품이 꺼질 위험이 있다는 경고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과거 닷컴 버블 당시 기업들이 서로의 매출을 부풀리기 위해 자금을 돌렸던 ‘벤더 파이낸싱’과 닮은꼴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순환적 거래가 지금은 산업 성장을 가속하는 ‘선순환’처럼 보이지만, 시장이 조정기에 들어서면 ‘악순환’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투자금이 실질적인 매출과 현금흐름으로 이어지지 않거나 구매 약속이 자금력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할 경우 순환 고리가 끊어지고, AI 생태계는 한순간에 급격한 냉각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AI 혁신의 열기가 한창인 현재, 미국 빅테크의 이 복잡한 거래 구조가 미래의 성장 동력이 될지, 아니면 또 한 번의 거품 붕괴로 이어질지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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