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서 플레이하는 메이저 대회, 그중에서도 마스터스 대회에는 뭔가 특별함이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유난히 더 기억에 남는 대회가 될 것 같습니다..
드디어 맞춰진 마지막 퍼즐, 커리어 그랜드 슬램
오거스타의 18번 홀, 로리 맥길로이는 정규 라운드 18번 홀과 연장전 모두 같은 거리의 세컨드 샷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번은 벙커로, 나머지 한 번은 우승을 확정 짓는 위치로 공을 보냈습니다.
2000년 이후, '커리어 그랜드 슬램'의 새 주인공이 확정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골프 역사상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기록한 선수는 5명입니다. (바비 존스가 단일 시즌에 캘린더 그랜드 슬램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바로 진 사라센, 벤 호건, 게리 플레이어, 잭 니클라우스 그리고 타이거 우즈입니다.
늘 황제의 자리에 가깝게 있었지만, 마지막 한 조각의 퍼즐을 맞추지 못했던 로리 맥길로이가 드디어 그린 재킷을 입으며, 6번째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레전드'가 되었습니다.
공식 선수가 아닌데도 출전한 사람이 있다
이 우승 소식이 가장 잘 알려져 있겠지만, 이번 대회에는 조금 더 특이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한국의 김주형 선수와 함께 플레이한 선수가 있습니다. 정확히 선수가 아니라 '골퍼'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바로 '마이클 맥더모트(Michael McDermott)'입니다.
이 사람의 역할은 바로 마커(Marker)라는 것입니다. 원래 마커라는 표현은 동반자의 경기 즉 스코어를 기록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선수들이 스코어카드를 제출할 때에는 'Marker's signature', 즉 서명을 받아서 제출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의 '마커'는 플레이하는 인원수가 홀수일 경우, 페이스를 유지하고 경기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 지정되는 비경쟁 자의 의미로 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비경쟁자라고 말하는 이유는 실제 공식 집계에는 들어가지 않고, 그 골퍼는 적극적으로 홀 아웃까지 할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컷 통과를 한 선수의 수가 '홀수'가 된 것이고, 이 경우 한 명의 선수는 혼자 플레이해야 하기 때문에, '마커'가 배정된 것입니다.
이는 '혼자' 플레이하는 경우에 공정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생긴 제도입니다. 혼자 플레이하는 경우, 어떤 선수에게는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으니,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 2인 1조를 유지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역할을 아무나 할 수는 없습니다. 실력이 엉망인 사람이 갑자기 함께 플레이하거나 혹은 추첨으로 선발할 수는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경우는 분명 선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마이클 맥더모트(Michael McDermott)는 오거스타 내셔널의 회원이며 핸디캡은 3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주형 선수도 경기 후에 높게 평가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했으니, 마커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거스타 내셔널 회원이자, 훌륭한 골퍼였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일반 아마추어 골퍼의 입장에서 이렇게 마스터스 대회에 최고의 선수와 함께 플레이하는 경험은 정말 부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PGA tour vs. LIV Tour, 그리고 페어링 기준
마스터스 대회를 포함한 메이저 대회에서는 최종 라운드에 보통 2명씩 플레이하게 됩니다. 이 페어링(Pairing)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도 합니다. 일반 아마추어 골퍼들도 어떤 동반자와 함께 하는지에 따라 스코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듯이 말이죠.
로리 맥길로이가 1라운에 부진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동반자의 늑장 플레이(Slow Play)가 원인이었다는 분석도 있었으니까요.
어찌 되었든 이번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격돌한 로리 맥길로이와 브라이슨 디섐보는 현재 남자 투어를 양분하고 있는 PGA Tour와 LIV Tour의 대표선수들이었기 때문에, 두 선수의 경쟁 역시 유난히 더 주목을 받았습니다. (물론 언젠가는 통합이 될 것 같지만 말이죠.)
참고로, 최종 라운드의 페어링은 이전 라운드까지의 점수 순위를 기준으로 정해집니다.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한 선수가 마지막 조로 배치되며, 그다음 낮은 점수를 기록한 선수가 함께 페어링 됩니다.
당연히 동점자가 있을 텐데요. 이 경우에는 "First In, Last Out" 규칙이 적용됩니다. '선입 후출'의 개념이라고 해야 할까요? 동점자가 발생할 경우 먼저 경기를 끝낸 선수가 뒤쪽 조로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알다가도 모를 골프, 90타 vs. 71타
골프가 쉽다고 생각하는 골퍼는 아마 없을 겁니다. 평소와는 달리 갑자기 잘 맞는 날도 있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스스로(?) 무너지는 날도 있습니다.
전반에 아주 잘 치다가도 갑자기 어느 순간 트리플과 양파를 하기도 합니다. "핸디캡은 카트길바닥도 뚫고 나온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듯, 아무리 컨디션과 샷 감이 좋아도, 갑자기 나빠질 수 있는 게 골프입니다. 얼마 전 동반자와의 라운드에서 들었던 말 중에 "아수라 골퍼"라는 표현이 있었는데요. 전반과 후반의 극적인 차이를 가진 골퍼에게 쓰는 적절한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대회에서도 이런 '아수라 골퍼' 실력을 보여준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닉 던랩 선수입니다.
닉 던랩(Nick Dunlap)은 2025년 마스터스 대회 첫 라운드에서 18 오버파 90타를 치면서 대회 역사상 최악의 첫 라운드 중 하나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마스터스에서 나온 가장 높은 첫 라운드 점수로, 대회 역사상 최악의 점수인 찰리 쿤클(Charlie Kunkle)의 95타(1956년)보다는 낮지만, 당연히 기분 좋은 기록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이 선수가 2라운드에서는 71타를 기록했으니, 같은 코스에서 하루 사이에 19타의 개선이 있었던 겁니다. 보기 골퍼의 모습에서 스크래치 골퍼로 바뀐 것이죠. 이는 마스터스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점수차의 개선이었는데요. 가장 큰 점수차이는 바로 21타로, 1936년 크레이그 우드(Craig Wood)가 1라운드에서 88타를 기록한 후, 2라운드에서 67타를 기록하며 21타 차이를 기록한 것입니다.
닉의 19타 차는 메이저 대회 전체에서 지난 50년간 가장 큰 점수 변화로 평가되는데요. 리키 파울러(Rickie Fowler)가 2018년 US 오픈에서 3라운드 84타 후 4라운드 65타를 기록하며 개선한 사례와 함께 50년간 가장 큰 점수 변화로 기록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올해의 마스터스는 참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로리 맥길로이라는 또 하나의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으니까요. 이러한 극적인 순간이 골퍼들에게 더 많은 동기부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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