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원에 진심인 시멘트회사?

옛날에 한국의 놀이공원 하면 떠오르던 건 에버랜드롯데월드 정도. 근데 요새는 좀 달라졌는데, 바로 전국구로 떠오른 경주월드 때문.

압도적인 입지와 이름값에도 최근 욕만 먹는 에버랜드. 요 주제를 다룬 왱 영상에도 오히려 경주월드를 칭찬하는 댓글이 엄~청 많았는데, 마침 ‘경주월드는 왜 갑자기 힙해진 건지 궁금하다’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경주월드를 전국구로 만든 건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들. 2007년 국내 최초 인버티드 롤러코스터 파에톤에 150억원, 2012년 워터 코스터 섬머린 스플래쉬에 100억원, 2018년 다이브코스터 드라켄에 180억원 등 지방 중소도시 놀이공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엄청난 금액이 투자됐다.

놀이기구 변화가 거의 없는 것 같은 에버랜드나 롯데월드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한 수준.

도대체 이 정도 돈을 꾸준히 넣을만한 여력이 있는 경주월드 운영사는 어디일까? 찾아보니 의외의 이름이 튀어 나왔다. 바로 ‘아세아시멘트’. 대중에게는 다소 낯선 시멘트 회사다.

사실 초대형 신규 놀이기구들을 줄줄이 들여오려면 막강한 자산을 갖고 있어야 한다. 시멘트 업종은 초기 투자비용은 높지만 이후 안정적으로 현금이 유입되는 업종이다.

특히 아세아시멘트는 부채비율이 낮고 현금성 자산이 많아 투자 여력이 상당한 편. 한마디로 현금 많은 알짜 회사라는 얘기.

요 회사가 돈이 많다는 건 알겠는데, 왜 뜬금없이 놀이공원을 갖게 된 걸까?

한때 봉명그룹이라는 재벌그룹이 있었다. 1947년 탄광사업으로 시작해 몸을 불린 이 회사는, 계열사가 한때 21개에 이르는 큰 회사였다. 성균관대도 이 봉명그룹 소유였고, 창업주 이동녕 회장과 셋째 아들은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이 회장은 아들 4형제에게 그룹 산하 11개 계열사를 물려준다. 첫째와 셋째가 6개 회사를, 둘째와 넷째가 5개 회사를 맡게 된 것.

첫째와 셋째가 맡은 계열사 중엔 ‘도투락’이라는 회사가 있었다. ‘고향만두’의 원조 ‘해태도투락 고향만두’ 제조사였던, 나름 네임드 기업이었다. 레저사업에 관심 많던 이 회사는 85년 경주에 놀이공원 ‘도투락월드’를 세웠는데 이게 바로 경주월드의 전신이다.

그러다 첫째와 셋째가 맡은 도투락 등 계열사들이 줄줄이 망하게 된다. 아까 말한 고향만두는 사실 도투락이 제조를 맡고 해태가 유통을 맡은 합작품으로 大냉동만두 시대를 연 초히트상품이었는데, 이걸 해태에 사실상 고스란히 빼앗기게 된 거다.

자연스럽게 도투락월드 역시 유탄을 맞았는데, 이걸 1991년 당시 500억원이라는, 후한 값에 인수한 게 둘째와 넷째가 가진 아세아시멘트였다.

사실상 형제 그룹 내부에서 ‘첫째·셋째가 만든 놀이공원’을 ‘둘째·넷째가 인수해 끌어안은’ 셈. ‘도투락월드’ 간판을 ‘경주월드’로 바꾼 아세아시멘트는 2000년대 후반부터 시설 리노베이션에 전폭적인 투자를 한다.

우리가 아는 경주월드의 모습은 사실상 이때부터 만들어졌다. 대구경북 지역민들 사이에선, 경주월드가 이랜드그룹이 운영하는 인근 이랜드(구 우방랜드)와 함께, 수도권 안 부러운 투톱 놀이공원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 경주월드의 평판은 급속히 올라간다. 에버랜드나 롯데월드의 노후화 등이 문제가 되면서 열심히 투자한 경주월드가 돋보이기 시작한 것. 경주월드 연간 방문객도 2009년 30만명에서 2022년 150만명까지 늘어났다.

아무래 그래도 지방에 있는 경주월드. 평일에 가면 손님이 별로 없어서 놀이기구를 맘껏 탈수 있다는 얘기도 있는데. 경주월드에 수백억원을 막 투자하는 아시아시멘트, 제대로 돈은 벌고 있을까?

찾아보니 코로나 때인 2020년을 제외하면, 경주월드는 지난 10년간 수백억대 매출, 수십억대 영업이익을 꾸준히 기록해왔다. 놀이공원 사업 자체가 건실하단 얘기다.

취재하다가 알게된건데, 아시아시멘트가 경주월드를 완전한 자회사로 만든건 아주 최근이다. 경주월드 지분은 봉명그룹 3대 손주 4명이 나눠 갖고 있었는데, 2023년 아시아시멘트가 이 지분을 모두 사들인 것.

근데 요 조치를 두고 “경주월드를 사실상 오너 일가의 현금 창구로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분 인수 후 경주월드는 매출·영업이익이 살짝 줄었는데도 배당금은 오히려 늘린 상황.

그러면 뭐가 문제냐? 놀이기구에 돈을 쏟아붓던 ‘투자 여력’이 예전만 못해질 수 있다는 것. 경주월드가 지금의 위상을 지켜내려면, 앞으로도 과감한 투자가 이어질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