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부합하는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헌법재판소는 2024년 8월 29일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에서 탄소중립기본법의 중장기 감축 목표 조항에 대해 역사적인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2031년 이후 2050년 탄소중립 시점까지 중간적인 감축 목표를 법률에 규정하지 않은 것이 미래의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여 국민의 환경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2031년 이후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헌재가 제시한 '과학적 사실과 국제적 기준에 근거하여, 전지구적 감축 노력에 우리나라가 기여해야 할 몫에 부합'하게 결정되어야 한다.
헌법에 부합하는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헌재가 제시한 과학적 사실에 기초한 국제적 기준은 당연하게도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6차 보고서'가 제시하고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공인한 '1.5도씨(℃) 전지구적 감축경로'다. 이에 따르면 세계는 2019년 수준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43%, 2035년까지 60% 감축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2025년까지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출해야 한다. 한국을 포함해 2015년 체결된 파리협정을 비준한 195개국은 5년마다 더 강화된 목표를 제출해야 한다. 2020년에 2030년 목표를 제출했고, 내년에는 2035년 목표를 제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것이다.
더 강화된 목표와 헌재의 판결을 고려한 우리나라의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어느 정도여야 할까? 국가별 누적 배출량을 고려한 책임주의 원칙에 따라 산정한 2035년 감축 목표는 51.9~94.3%로 분석된다. 국가별 국내총생산(GDP)을 고려한 역량주의에 따른 목표는 83.8%, 국가별 인구 비중을 고려한 평등주의에 따른 감축 비율은 80.5%로 추산된다.
국제적 기준과 IPCC가 제시한 '공정배분' 원칙을 적용해 플랜1.5가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66.7%로 산출됐다. 위의 세 가지 원칙에 대해 국내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원칙별 가중치를 적용해 가중평균하는 방식으로 산정했다. 이는 2030년 이후 선형 감축 경로(2035년 55%)나 IPCC가 제시한 전 지구적 감축경로(63.6%)보다 높은 수준이다.
11차 전력계획은 국제적 기준에 부합할까?
올해 말 수립 예정인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향후 15년간 전력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계산한 뒤 필요한 만큼의 전력 생산을 위해 석탄·원자력·LNG·재생에너지 등을 조합한 '에너지 믹스'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를 담은 행정계획이다. 전기를 얼마나 사용하고, 사용하는 전기를 어떤 에너지로 얻을 것인가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달라지는 만큼 헌재가 제시한 과학적 사실에 기초한 국제적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5월 31에 공개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은 헌재와 국제적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면 전력수요를 줄여야 한다. 주요 선진국들은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구조 개선과 에너지 효율 향상을 통해 전력 소비를 줄이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이전 10차 전기본보다 전기 목표 수요가 10%가량 늘어났다. 전기화와 데이터센터 증설을 고려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2년 전과 현재의 수치 전망이 왜 이렇게 달라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검증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지난 기후변화협약총회(COP28)에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 확대하겠다고 국제 사회에 약속했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에 따르면 태양광·풍력 설비용량은 2022년 23GW에서 2030년 72GW로 확대돼 COP28에서 합의된 재생에너지 3배 확대 목표를 달성할 전망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재생에너지 3배 확대 서약의 의미는 개별 국가의 현재 설비용량 대비 3배 확대가 아니라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전 세계가 2030년에 도달해야 하는 재생에너지 설치 용량이 현재의 3배(7792GW)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1년 기준 전 세계 발전설비 용량 중 한국의 비중(약 1.7%)을 고려하면, 한국이 담당해야 하는 재생에너지 추가 용량은 132.4GW 수준이고, 이에 따른 2030년 목표는 2022년 대비 5배 증가한 164.9GW가 되어야 한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에서의 2030년 태양광·풍력 설비용량(72GW)보다도 2배 이상 더 늘려야 국제적 기준과 약속에 부합한다는 의미다. 실무안에서 제시한 2038년 신재생 발전량 목표 비중인 32.9%도 OECD 국가들의 2022년 기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32.8%)에 불과하다. OECD 국가들의 현재 수준을 한국은 15년 뒤에나 도달하게 된다는 의미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에 따르면 2038년에 석탄과 LNG 등 '탄소' 발전량 비중도 여전히 29.8%를 차지한다. 영국이 마지막 석탄발전소를 폐쇄함으로써 탈석탄을 이뤄냈고, 주요 선진국들이 2035년까지 탈석탄을 약속한 것과 같은 국제적 기준과는 다른 모습이다. 원전의 발전량 비중도 2038년에 35.6%로 늘어나게 되는데, 이 또한 원전이 사양 산업이 된 국제적 흐름에 역행한다. 정부가 집중 추진 중인 소형모듈원전(SMR)도 경제·사업성이 불투명·불확실하고, 무엇보다도 위험성과 핵폐기물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는 만큼 헌재의 판단처럼 미래의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여 국민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있다.
더도 덜도 말고 헌재가 제시한 과학적 사실에 기초한 국제적 기준을 따르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제11차 전력계획이 수립되길 바랄 뿐이다.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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