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해도, 강행해도 역풍…‘금투세 딜레마’ 빠진 이재명
진성준 “비포장도 통행세” vs 이소영 “통행 줄어”…野 장외 설전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비포장도로라도 수익을 올렸으면 세금 내는 것이 맞다." (진성준 정책위의장)
"포장도 안 깔고 통행세 받겠다 하면 아우토반으로 빠진다." (이소영 의원)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도입을 놓고 더불어민주당 내 찬반 논쟁에 불이 붙었다. 금투세 시행과 유예의 갈림길 앞에서 야당 의원들 간 치열한 논박이 전개되는 양상이다. 당 지도부뿐 아니라 친명(親이재명)계 일각에서도 '금투세 유예론'이 제기되면서, '보완 후 시행'을 언급했던 이재명 대표도 고심에 빠진 모습이다. 거야(巨野)를 이끄는 이 대표의 결단에 정재계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역풍'이 적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금투세' 앞 단일대오 깨진 野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걷는다.' 민주당은 이 원칙에 따라 금투세 시행을 주장해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금투세를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나 국민의힘과 '개미 투자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이에 2020년 말 여야는 금투세 시행을 2년 유예하기로 합의해 2023년 도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2025년으로 금투세 시행 시점을 다시 2년 유예했다.
금투세 시행이 계속 밀리자 야권은 '더 이상의 유예는 없다'며 배수진을 쳤다. 지난 총선에서 거야가 압승하면서 금투세 시행을 밀어붙일 동력도 확보했단 평가가 나왔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이재명 대표가 증권거래세를 더 낮추는 조건으로 '금투세 기준 완화 후 시행'이라는 절충안을 들고 나왔으나, '금투세 2025년 시행'은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그러나 최근 민주당 내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는 모습이다. 통상 '명심'(이 대표 의중)을 따랐던 민주당 지도부, 친명계에서 금투세 시행 반대 목소리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금투세 폐지'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나, 침체된 국내 경기‧주식시장을 고려하면 금투세 시행이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언주 의원은 당 최고위원 중 처음으로 지난 10일 "금투세는 대한민국 주식시장 선진화를 시킨 다음에 시행해도 늦지 않다"며 시행 반대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내 금투세 유예론자인 이소영 의원은 금투세 시행 강경파인 진성준 정책위의장과 장외 설전을 벌였다. 진 의장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포장도로라도 수익을 올렸으면 세금을 내는 것이 맞다"고 적었다. 지난 10일 이 의원이 경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서 금투세 시행에 대해 "현재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엉망이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지금은 적절치 않다"며 "도로에 아스팔트 포장은 하고 통행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반박한 셈이다.
그러자 이 의원은 이날 오전에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출장 일정을 취소하고, 정책 의원총회 소집을 기다리겠다"고 적었다. 이어 "내일이라도 정책 의총을 열어 (금투세 시행) 가닥을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어렵다면, 추석 연휴 직후에 각자 지역에서 듣고 온 추석민심을 가지고 정책 의총 하자"며 "시간을 끌 문제가 아니다. 생중계 공개토론을 기다리는 게 능사도 아니다"라고 했다.
李 '금투세 결단'에 與野 관계 손익 갈릴 듯
민주당은 오는 24일 금투세와 관련한 공개 토론회를 할 예정이다. 그러나 아직 찬반 토론자들이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찬성 측 토론자 모집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개미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이 일면서 금투세 시행을 강하게 얘기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금투세와 관련한 명확한 의견을 밝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금투세 유예‧폐지'를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10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오는 24일로 예정된 민주당 내 금투세 토론회에서 치열한 논쟁을 거쳐 보다 더 전향적으로 차제에 소위 '민주당세'라 불리는 금투세 폐지를 결단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내에서 금투세 폐지를 가장 먼저 꺼내들었던 한동훈 대표도 9일 민주당에 관련 토론을 거듭 제안했다. 그는 "국내 증시를 버린다는 메시지를 다수당인 민주당이 줘서는 안된다. 금투세는 정치권이 대한민국의 '국장'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중요한 바로미터가 됐다"며 "금투세에 대해 일부 투자자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이름을 붙여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게 민심"이라고 지적했다.
이 상황에서 이 대표가 '금투세 유예'를 결단한다면, 여당과의 협치 물꼬를 야권이 먼저 텄다는 명분을 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생에 민감한 중도층 민심을 일부 흡수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에, 이 대표의 대권 경쟁력 면에서 '플러스'가 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반면 한동훈 대표가 이 대표의 '변심'을 이끌어냈다는 평가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이탈, 당내 의원들의 반발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금투세 폐지나 유예는 그간의 민주당 당론과 배치된다"며 "민주당 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지게 되고 한 대표가 정책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금투세 유예를 결정할 시 조국혁신당과의 관계에도 빨간불이 켜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20일 서왕진 조국혁신당 정책위의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금투세와 관련해 "민주당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는 정책인데 이미 낮춰놓고 뭘 또 낮추자는 것인가"라고 반문한 뒤 "흔들리면 안 된다. 이 부분에 있어선 비판을 주저할 생각이 없다"며 금투세 시행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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