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서버 투자 확대와 함께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촉발된 메모리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이번 호황이 단기반등이 아닌 구조적 변화에 기반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도 종료시점과 관련해서는 2027년과 2028년으로 엇갈린 전망을 내놓는다. 이에 메모리 시장의 방향성을 가를 분기점이 언제가 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내년까지 이어질 강력한 호황 시그널… "공급이 수요 못 따라가"
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메모리 공급 부족이 심화되면서 슈퍼사이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글로벌 투자은행(IB) 다수의 공통된 시각은 메모리 수급 부족 국면이 최소 내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서버용 D램과 HBM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공급확대 속도는 즉각적으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HBM은 기존 범용D램과 달리 고난도 공정과 패키징 기술이 필요해 증설에 시간이 걸린다. 장비확보, 공정전환, 수율안정화까지 감안하면 단기간에 생산능력을 크게 늘리기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에 메모리 업체들이 설비투자를 확대하더라도 실제로 시장에 물량이 도달하는 시점은 내년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평택캠퍼스 내 차세대 라인과 미국 테일러 공장을 중심으로 HBM을 포함한 첨단 메모리 생산능력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공장 건설과 장비반입, 공정전환 이후 양산 안정화 단계까지 최소 수년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SK하이닉스도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를 핵심 거점으로 HBM 전용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다만 양산 물량은 올해 이후 순차적으로 시장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마이크론 역시 일본 히로시마 공장과 미국 내 생산시설을 중심으로 첨단 D램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신규 설비의 수율 안정과 고객인증 절차를 감안하면 의미 있는 공급확대 시점은 내년 이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IB들은 내년을 메모리 업황의 첫 변곡점으로 꼽는다. 이 시기를 전후해 주요 업체들의 증설 효과가 점진적으로 나타나면서 수급긴장도가 완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과거처럼 공급과잉으로 급격히 꺾이는 사이클이 나타나기보다는 완만한 조정에 가까울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2028년까지 간다"… 더 길 것이라는 시각도
일각에서는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2028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최근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업계의 논의를 인용해 메모리 공급 완화 시점을 내후년 이후로 언급하면서 이런 관측에 힘이 실렸다. 이는 개별기업의 자체 전망이 아니라 주요 메모리 업체 고위급과의 교류에서 체감한 시장 분위기를 반영한 발언이라 신뢰도가 높다.
AI가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메모리 호황이 길어질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AI가 본격 적용된 초기만 해도 대규모언어모델(LLM)을 학습시키는 과정에 수요가 몰렸고, 메모리 또한 특정 시점에 집중적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그러다 최근에는 학습이 끝난 AI가 실제 서비스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생성형AI가 검색과 고객상담, 사내업무 자동화 등에 상시 활용되면서 AI 서버 역시 필요할 때만 가동되는 설비가 아니라 연중 필요한 인프라로 바뀌고 있다.
여기에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뿐 아니라 맞춤형 AI 반도체를 적용한 서버와 기업 전용 AI 시스템을 직접 구축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메모리 수요 역시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HBM과 범용메모리 공급이 증가하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도 전망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다. 범용 제품은 상대적으로 증설과 전환이 빠르지만 HBM은 기술장벽이 높아 공급제약이 장기화될 수 있다. 이 경우 일부 제품군에서 가격과 수급이 완화되더라도 시장 전체로 보면 '호황이 끝났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
메모리 업계에서는 이번 슈퍼사이클이 과거처럼 전형적인 등락곡선을 그리기보다는 AI라는 구조적 수요를 바탕으로 길고 완만한 흐름을 보일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내년이 슈퍼사이클이 저무는 첫 분기점이 될지, 내후년까지 호황이 이어질지는 결국 AI 인프라 투자 속도와 메모리 업체들의 증설 실행력에 따라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장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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