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아가 선보인 소형 SUV EV3는 전기차 대중화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글·사진 | 이승용
사진제공 | 최진호(스튜디어 굿)

지난 7월 23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부터 강원도 속초까지 기아 EV3를 시승했다.
요즘 장마철 날씨는 마치 동남아의 스콜처럼, 멀쩡하던 하늘이 어둑어둑하더니 갑작스레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를 세차게 퍼붓는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에서 시승차를 받아 요목조목 살펴보았다. 디자인은 전기차답게 미래지향적이었다. 디지털 키로 잠금을 해제하자 기아의 디자인 시그니처인 스타맵 라이팅이 순차적으로 밝게 빛나며 깜짝쇼를 펼치고 존재감을 드러냈다.
보닛 끝자락에서 앞 범퍼 아래로 내려오는 세로형 헤드램프 안에서 작은 큐브 모양의 12개 LED 램프가 보석처럼 반짝인다.

스타맵 라이팅과 스몰 큐브 헤드램프의 디자인은 차체를 넓어 보이게 한다. 타이거 마스크의 프런트 엔드 디자인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보닛 윗부분은 평평하게 다듬고 앞 범퍼와 좌·우 펜더로 이어지는 면은 휘어지듯 주름 없이 매끄럽게 마무리했다. 철판의 선과 면이 맞닿은 부분은 세밀하게 마무리했다.
수평의 지붕 선과 A필러에서 D필러로 갈수록 좁아지는 벨트 라인은 역동적인 이미지를 부각한다. 짧은 앞·뒤 오버행과 블랙 컬러의 5각형 휠 아치 디자인, 크롬으로 힘을 준 사이드 가니시, 독특한 휠 디자인과 앞문의 플러시 도어 핸들은 독창적이고 인상적이다. 특히 앞·뒤 휠 아치 위쪽의 펜더를 삼각형 모양으로 철판을 접어 성형한 블리스터 디자인은 흘깃 쳐다보면 기아 EV9인가 싶을 정도로 닮았다. 기아 EV 브랜드의 선과 면을 넘나드는 기하학적 패밀리 룩 디자인은 독창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다.

시승차인 GT 라인은 앞 범퍼와 뒤 범퍼의 디자인을 더 강렬하게 디자인했다. 사이드미러도 휠 아치 몰딩도 고광택 블랙 컬러다. 사이드 가니시도 크롬이 아닌 외장 컬러와 동일하다.

모던하고 미니멀한 구성의 실내
플러시 도어 핸들을 잡고 문을 열었다. 한눈에 보아도 심플하다. 놀랍도록 간결하다. 하지만, 디테일에 집중했다.
전기차 실내 디자인은 테슬라의 혁신 이후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디자인뿐 아니라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재활용품을 사용한 특별한 소재도 등장해야 한다. 무엇보다 브랜드가 꿈꾸는 비전과 첨단 기술, 그런 것들을 담아내야 한다. 그 흐름이 단연 거센 분야다.
EV3는 넓은 실내 공간을 실용적으로 구성하면서도 브랜드의 비전을 담은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재치로 가득하다. 구석구석 교묘히 어우러진 소품의 소재와 색상은 소박하면서도 눈길을 끄는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기아 EV 라인업의 디자인은 수평과 수직의 조화를 강조한다. 12.3인치 클러스터와 5인치 공조, 12.3인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하고, 길게 뻗은 대시보드의 디자인과 위·아래를 플랫하게 디자인한 스티어링 휠을 보아도 알 수 있다. GT 라인은 3 스포크 타입의 플랫 바텀 디자인이다.

인포테인먼트 버튼은 터치 타입이다. 햅틱 기능을 포함하고 있어 직관적으로 기능을 조절할 수 있다. 이런 선과 면의 구성이 실내를 넓어 보이게 한다.
특히 EV3의 실내 공간은 얇은 대시보드 덕분에 더 여유롭다. 거기엔 엔지니어들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담겨 있다.
이 차를 위해 새롭게 고안해 처음 적용한 공조 시스템 'Thin HVAC(Heating, Ventilation and Air Conditioning)'이 그 주역이다.
엔지니어들은 공조 시스템 내부의 열교환기를 대시보드 위쪽에 눕혀 쌓는 방식으로 배치했다. 기존처럼 세로 형태로 나란히 세워 앞쪽에 배치할 때보다 공간을 덜 차지하기 때문에 공조 장치의 크기를 기존보다 33% 작게 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확보한 공간은 1열의 레그룸을 여유롭게 해 주었다. 특히 동승석의 다리 공간이 6cm나 넓어졌다. 풍량도 증가하고 소음과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어 일석사조의 효과를 거뒀다. 공간적인 이로움과 함께 성능적으로도 혜택이 컸다.

운전석과 동승석 사이에 장착한 슬라이딩 콘솔 테이블은 노트북을 놓고 업무를 보거나 간단한 식사를 할 때도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 운전석의 릴렉션 컴포트 시트와 함께 사용하면 편안한 휴식 공간이 된다. 이런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미래지향적 전기차의 특성에 잘 맞아떨어진다.
GT 라인은 바이오 인조가죽으로 시트를 감쌌다. 2열 시트도 등받이를 뒤로 14° 눕힐 수 있는 리클라이닝 기능을 적용했다. 1열 시트의 헤드레스트는 사무용 의자처럼 메시형으로 통풍성이 뛰어나다. 대시보드의 크래시 패드와 시트 뒷면을 패브릭으로 감싸는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 쾌적한 공간을 만들었다. 트렁크 공간도 460ℓ로 널찍하다. 보닛을 열면 25ℓ의 프런트 트렁크도 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에서 생산하는 소형 SUV
EV3의 차체는 길이×너비×높이가 4300(GT 라인은 4310)×1850×1560(mm)으로 현대 코나 EV보다 길이가 55mm 작지만, 휠베이스가 20mm 긴 2680mm다. E-GMP 전기차 전용 플랫폼에서 생산하기에 오버행을 짧게 만들 수 있어 휠베이스를 동급 SUV보다 길게 할 수 있다. 길어진 휠베이스 바닥에 배터리팩을 탑재하다 보니 배터리 용량을 늘릴 수 있었다.
소형 SUV지만,배터리의 음극재인 니켈의 비중을 80%로 늘리고 나머지 망간 10%, 코발트의 비중을 10%로 제작한 NMC 배터리를 사용해 1회 완충 후 주행 거리를 최대치로 높였다. 하이 니켈 배터리와 통합 충전 시스템(ICCU, Intergrated Charging Control Unit)과 81.4kW 배터리가 탑재된 롱레인지의 경우 501km(17인치 휠타이어 기준), 58.3kW 배터리를 장착한 스탠다드는 350km(17인치 휠타이어 기준)를 이동할 수 있다.
충전 시간도 단축했다. 충전 출력과 밀도를 높인 양방향 통합 충전 시스템(ICCU)은 50kW 급속 충전기에서 배터리 용량 10%에서 80%까지 완충하는데 55분(스탠다드)이 걸린다. 롱레인지인 경우 79분이 소요된다. 350kW 급속 충전기에서 스탠다드 29분, 롱레인지 31분이면 충분해 충전에 대한 불편을 줄였다.
현대차그룹의 다른 전기차들은 드라이브 레디 상태(내연기관 차의 시동을 건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이제 EV3는 전원 버튼을 한 번만 누른 파워 온 상태에서도 V2L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유틸리티 모드에서 충전과 동시에 V2L 기능을 사용할 수도 있다.
기아는 EV3를 출시하면서 인프라에 대한 정의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마이 무빙 인프라(My Moving Infra)'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EV3를 타는 고객들은 전기차만의 첨단 기술과 공간 활용성, 경제성 등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EV3는 대화하듯이 자연어로 음성 명령이 가능한 AI 어시스턴트 기능과 다양한 앱을 구매할 수 있는 기아 커넥트 스토어 등 하이테크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연결성을 강화했고, 고효율 하이 니켈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완충 후 주행 거리를 늘렸으며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주는 널찍한 공간을 강조하고 있다. EV3는 이러한 점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차량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보다 소음과 진동에 더 예민하다. 내연기관 차처럼 흡기, 압축, 연소 및 팽창, 배기의 4행정 사이클이 없기에 바람 소리나 노면 등 외부 소음이 더 잘 들리기 때문이다.
EV3는 이러한 점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했다. 윈드 스크린과 앞문의 창은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차음 글라스를 장착했다. 차체 바닥은 분리형 흡음 패드와 풀 언더 커버로 노면에서 올라오는 소음을 막을 차폐막을 견고히 했다.

주행 중 장대비가 쏟아지며 차체를 두드리고 거센 바람이 창가를 훑고 지나가도 짜증스러운 소음으로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었다.
정지상태에서 출발할 때 론칭 필링은 가볍고 부드럽다. 가속 페달에 전해지는 힘과 바퀴가 굴러가는 속도가 일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속 60km 정도에서 급가속하자 망설임 없이 도로를 박차고 나갔다. 추월 가속 성능이 준수하다.
한적한 도로에서 정지한 후 시속 100km까지 속력을 높였다. 빗길이라서 미끄럽기도 했지만, 체감상 가속 성능은 그리 출중하진 않았다. 제원상 배터리 용량이 커 무거운 롱레인지가 7.7초이고 스탠다드가 7.5초다.

GT 라인 롱레인지인 시승차는 최고출력이 150kW인 전기모터를 탑재하고 있다. 마력으로 환산하면 204마력이라고 하지만, 공차중량이 제원상 1850kg이나 다양한 옵션을 탑재한 모델이라서 100kg이상은 더 무거울 테고 패밀리 소형 SUV인 점을 고려하면 굳이 더 빠른 가속 성능을 위해 전기모터의 출력을 높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최대토크는 283Nm다. 와인딩 구간에서 코너링은 배터리가 바닥에 깔려있어서 저중심이고, 초고장력강 강판과 핫 스탬핑 부품을 많이 사용해서 그런지 코너 진입만 정확하면 그 이후로는 안정적이고 깔끔하게 굽이진 길을 벗어날 수 있다. 빗길이라서 거세게 밀어붙일 수 없었으나 가속 성능보다 코너링 상황에서 민첩성이 돋보였다.
EV3는 새로운 회생제동 시스템을 추가했다. 바로 i-페달 3.0이다. 스티어링 휠 양쪽의 패들 시프트 레버를 사용해 회생제동의 강도를 제어하는데 왼쪽 패들 시프트를 1초간 당기면 i-페달 기능이 바로 작동하고, 오른쪽을 길게 당기면 오토 모드로 바로 바뀐다. 회생제동 단계도 3단계로 조절 가능하고 후진 상황에서도 i-페달을 사용할 수 있다.

레벨 0이나 1로 맞추고 가속 페달만으로 원 페달 운전하면 가·감속 시 울컥거림도 적어서 일반 내연기관 차와 별 차이 없이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다.
EV3는 무엇보다 착한 가격으로 현실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EV3는 이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소형 전기 SUV다.
스탠다드 에어 트림의 가격은 4208만원부터 시작하지만, 친환경 차 세제 혜택을 받으면 3995만원이다. 여기에 보조금을 최대로 받는다면 실구매가격은 2419만~3290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 가장 비싼 GT 라인 롱레인지도 차량 가격이 5108만원이지만,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최대로 받으면 3134만~4084만원에 살 수 있다.
EV3 출시로 소비자들의 선택지가 넓어졌다. 소형 전기 SUV 시장뿐만 아니라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바뀌고 전기차 정체기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310×1850×1560mm
휠베이스 2680 mm | 공차중량 1850kg
엔진형식 전기모터 | 최고출력 204마력
최대토크 283Nm | 회생제동 3단계
구동방식 RWD | 0→시속 100km 7.7초
1회 완충 주행거리(복합) 478km(19인치 휠타이어)
가격 5108만원(친환경 차 세제 혜택 전)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