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관리 달인' 애플, 불량 칩 안 버리는 이유
결함 있는 칩, 보급형에 재활용
반도체 품귀 속 낮은 제품값 유지
노트북 '맥북 네오' 글로벌 흥행
애플은 오랫동안 ‘공급망관리(SCM)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해왔다. 아이폰, 맥북에 들어가는 주요 부품 생산과 완제품 조립을 전 세계 수천 개 협력사에 위탁하면서도 높은 수익성과 품질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애플 SCM 전략의 또 다른 강점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공개됐다. 일부 결함이 있는 반도체 칩을 폐기하지 않고 보급형 제품에 사용해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최근 선풍적 인기를 끄는 보급형 노트북 ‘맥북 네오’가 대표적이다. 599달러(약 90만원)로 2000달러가 넘는 ‘맥북 프로’ 대비 저렴한 가격을 강점으로 자랑한다. 반도체 품귀로 스마트폰과 노트북 가격이 치솟는 가운데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배경은 ‘불량 칩’ 사용에 있다.

맥북 네오에는 ‘A18 프로’ 칩이 사용된다. 6개 그래픽처리장치(GPU) 코어가 들어간 칩으로 ‘아이폰16 프로’에 적용하기 위해 개발했다. 하지만 A18 프로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전체의 5~10%에 불량이 발생했다. 이 중 대부분은 6개 코어 중 1개가 작동하지 않는 불량이었다. 일반적인 전자제품 회사는 불량칩을 폐기 처리하지만 애플은 재활용을 택했다. 결함이 있는 부분을 비활성화하면 나머지 5개 코어는 정상 작동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에 따라 불량 A18 프로는 아이폰16 프로보다 연산 성능이 낮은 맥북 프로에 사용될 수 있었다. 1년에 2억 대 이상 아이폰을 생산하는 애플은 이 같은 불량칩 수백만 개를 재활용할 수 있다.
칩 재활용은 애플 제품 설계 전략의 핵심이 됐다. 처리 코어가 많은 칩을 대형 화면과 고용량 저장 공간 제품에 넣어 고가 모델을 제조하고, 신형 칩이 출시되면 이전 세대 칩은 저가 제품에 재활용한다. 예컨대 A8 칩은 2014년 아이폰6에 처음 들어간 뒤 아이패드 미니, 애플TV, 홈팟 등에 확대 적용됐다
팀 컬펀 공급망 분석가는 “비용과 폐기물, 시간을 줄이는 전략”이라며 “기존에 접근하지 못한 소비자층까지 공략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고객층 확대는 단순히 기기 판매 수익에 그치지 않는다. 애플 생태계로 새로운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 새 애플 기기 사용자는 아이클라우드 저장 공간, 앱스토어 같은 고수익 서비스의 잠재 고객이 되기 때문이다.
애플 사례는 다른 제조업체에도 시사점을 준다. 단순히 부품을 조달하고 재고를 최소화하는 것을 넘어 제품군 전체를 어떻게 설계하는지로 SCM 범위를 확대했기 때문이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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