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식이 먼저 여행 가자고 연락해오면 부모 마음은 들뜬다. 숙소 예약부터 맛집 동선까지 자식이 알아서 다 짜두었다는 말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출발 전날에는 가방을 몇 번이나 다시 싸며 잠을 설친다. 그런데 한 번 다녀온 뒤로 다음 여행 이야기가 쏙 들어가는 집이 많다. 분명 즐겁게 다녀왔다고 생각했는데 자식 쪽에서는 말이 없다. 명절에 넌지시 꺼내봐도 요즘 바쁘다는 대답만 돌아온다.

부모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오히려 자식 돈 아껴주고 자식 편하게 해주려고 애썼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 마음이 자식에게는 고스란히 전해지지 않는다. 그 배려가 여행 내내 자식의 기운을 빼놓았을 수도 있다. 자식들이 부모와의 여행을 슬며시 피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3위. 좋은 곳에서 언제 또 오겠냐는 말을 해서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단풍 든 능선이 한눈에 펼쳐졌다. 둘째 딸이 휴대폰을 들고 엄마를 바위 앞에 세웠다.
"내가 이 다리로 여길 또 올 수나 있으려나."
딸은 셔터를 누르지 못하고 휴대폰을 내렸다. 내려오는 길 내내 딸은 창밖만 바라봤다. 그날 밤 숙소에서 딸은 한참을 뒤척이다 늦게 잠들었다.
부모는 감탄처럼 한 말이지만 자식 귀에는 작별 인사처럼 들린다. 자식은 부모의 나이를 누구보다 의식하며 산다. 더 자주 모시고 다니지 못한 미안함과 언젠가 부모가 곁에 없을 날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좋은 풍경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지니 여행의 기억도 슬픔으로 남는다. 다음 여행을 계획하려다가도 그 말이 떠올라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같은 마음이라도 다음엔 어디 가볼까라고 말하면 아쉬움이 약속으로 바뀐다.

2위. 뭘 물어도 아무거나라고 해서
점심때가 되자 아들이 물었다.
"엄마, 뭐 드시고 싶어요?"
엄마는 아무거나 괜찮다고 했다. 식당 세 곳을 지나도록 대답은 같았다. 아들은 지도 앱을 뒤지며 땡볕 아래를 한참 걸었다. 눈에 띄는 칼국수집에 들어갔지만 엄마는 젓가락을 몇 번 들다 말았다. 돌아오는 휴게소에서 엄마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아까 지나온 짬뽕집이 맛있어 보였다고.
아무거나라는 말은 짐을 덜어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든 선택을 자식에게 떠넘긴다. 자식은 끼니마다 부모 마음에 들지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 된다. 숙소도, 관광지도, 쉬는 시간까지 전부 자식이 정하다 보면 여행이 아니라 업무처럼 느껴진다. 속으로는 원하는 게 있으면서 말하지 않으면 자식은 알아맞힐 방법이 없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먼저 말해주는 게 진짜 배려다.

1위. 가는 곳마다 비싸다는 말부터 해서
딸이 어렵게 예약한 산속 리조트에 짐을 풀자마자 엄마가 물었다.
"여기 하룻밤에 얼마니?"
저녁 숯불고기집에서도, 다음 날 카페에서도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딸은 고기를 굽던 집게를 내려놓았다. 사위는 괜히 물만 연거푸 들이켰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이 조용히 말했다.
"다음엔 그냥 집 근처에서 밥 먹자."
부모에게 비싸다는 말은 나한테 이렇게까지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식에게는 네 선택이 틀렸다는 말로 들린다. 몇 달씩 돈을 모아 준비한 자식은 기쁨 대신 민망함을 안고 돌아온다. 다음에는 더 싼 곳을 알아봐야 하나, 아예 안 가는 게 낫나 고민하게 된다. 주는 사람의 기쁨은 받는 사람의 표정에서 완성된다. 가격이 궁금해도 그 순간만큼은 좋다고 말해주는 게 자식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다.

자식이 바라는 건 아껴주는 부모가 아니라 즐거워하는 부모다. 평생 주기만 해서 받는 일이 어색할 수 있다. 다음 여행에서는 맛있다, 고맙다는 말로 그 마음을 온전히 받아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