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성병예방 접종 선호, 남성은 자발적 피임 관심…가벼운 관계가 낳은 사회문제 우려

청년세대 사이에서 연애나 성관계를 진지한 고민 없이 단지 즐기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성병과 피임의 부담이 한층 줄어든 영향이다. 심지어 성병 예방주사를 접종한 이성을 그렇지 않은 이성보다 더욱 매력적으로 느낀다는 연구 결과까지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연애나 성관계를 단순히 쾌락의 도구로만 인식할 경우 결혼기피 등 각종 사회 문제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여성 66% “연애 전 예방접종 여부 중요”, 먹는 피임약 개발 소식에 남성들 호응
최근 전 세계적으로 여성 중심으로 보급되던 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가다실’의 남성 접종률이 크게 늘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국 남성(18~21세)의 HPV 백신 접종률은 2011년 약 8%에서 2021년 약 36%로 4배 이상 급증했다. 국내에서도 S대학, Y대학 등 다수의 대학에서 총학생회 주관으로 가다실 접종 할인 행사를 진행하는 이벤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벤트에 참여하는 학생 중 남학생 비중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성들의 ‘가다실’ 예방 접종이 급증한 배경에는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심리가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여성들 사이에서 성관계 부담을 덜기 위해 성병 예방 주사를 맞은 이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자 남성들이 이를 의식하고 활발하게 예방 접종에 참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 대학교에서 진행한 ‘가다실 백신 접종률이 이성 선호에 미치는 영향’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 응답자의 약 68%가 ‘가다실 접종 여부가 연애 상대 선택에 중요한 요소’라고 답했다. 특히 성병 예방에 대한 인식이 높은 20~30대 여성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한국 청년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 소재 S대학에 재학 중인 김여정 씨(26·여·가명)는 “요즘 들어 부쩍 성병 예방 주사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긴 하다”며 “나도 그렇고 주변 친구들을 봐도 성병 예방 주사를 맞은 남성과 그렇지 않은 남성을 비교했을 때 확실히 주사 맞은 남성과의 연애가 덜 부담되는 게 사실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예 연애를 시작할 때 예방주사 접종 여부를 확인하고 안 맞으면 맞도록 요구한다는 친구도 있다”고 덧붙였다.
남성들 사이에선 ‘남성 피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여성들의 성병 예방접종 선호 이유와 성관계 부담을 덜기 위함이다. 미국 USC 케크 의과대학의 브라이언 응우옌(Brian Nguyen)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의 남성 2000여 명 중 약 75%가 새로운 피임법을 시도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앞서 2019년 조사에서는 임신을 원하지 않는 18~49세 남성의 약 절반이 남성 피임약에 “매우 관심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최근엔 남성 전용 ‘먹는’ 피임약까지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국제 학술지 커뮤니케이션즈 메디신(Communications Medicine)에 따르면 미국 바이오 기업 유어초이스 테라퓨틱스(YourChoice Therapeutics)는 비호르몬 경구 피임약 ‘YCT-529’의 임상 1상 시험에서 안전성을 입증했다. 이 약물은 남성 생식에 필수적인 단백질인 레티노산 수용체 알파(RAR-α)를 선택적으로 차단해 일시적으로 정자 생성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지금까지 개발된 남성 피임약들과 달리 부작용이 적고 복용을 중단하면 빠르게 생식 기능이 회복된다는 점에서 상용화에 대한 기대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생 조상현 씨(25·남·가명)는 “성적 욕구는 성별을 떠나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본능이다”며 “다만 욕구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성병, 임신 등의 부담을 가져야 하는데 그런 걸 줄일 방법이 있다면 당연히 시도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연애나 성관계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낮은 사람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셈인데 이런 식이면 나중엔 성병 예방 접종을 맞은 이성, 남성 피임약을 먹는 이성 등만 만나는 상황도 벌어질 것 같다”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청년세대 사이에서의 성관계 부담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는 데 대해 긍정적 부분과 부정적 부분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입을 모았다. 개인의 건강이나 안전을 챙기려는 시도는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일말의 책임 없이 연애나 성관계를 단순히 쾌락의 도구로만 여기려는 심리가 만연해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우려감을 표했다. 연애나 성관계 자체가 일시적이고 가볍게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술적인 피임 수단이나 예방접종을 선호하는 것은 분명히 개인의 건강에는 긍정적일지 모르나 자칫 ‘이제는 걱정할 필요 없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며 “연애나 성관계를 오로지 쾌락의 도구로만 여기는 인식이 생겨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성관계는 단순한 신체적 행위가 아니라 감정적 교감과 책임이 따르는 행위라는 점을 인식하도록 돕는 사회적 노력과 교육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김성원 르데스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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