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 손흥민 “마지막 월드컵이라고 말한 적 없어요”

2018년 5월, 손흥민은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에서 스물 여섯 살 나이에 처음 주장 완장을 찼다. 4년 전 브라질 월드컵에서 벨기에에 0대1로 패하고 조별 리그 탈락이 확정되자 굵은 눈물을 쏟았던 대표팀 막내가 어느덧 한국 축구를 이끄는 얼굴이 된 순간이었다.
손흥민은 한국 축구 역사상 최장수 캡틴이다. 그는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에서 주장 기성용이 부상으로 빠지자 대신 완장을 차고 쐐기골을 터뜨리며 ‘카잔의 기적’을 썼다. 2022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선 안면 부상으로 마스크를 쓴 채 황희찬에게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내줘 16강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네 번째 월드컵을 앞둔 그는 11일 기자회견에서 “첫 번째든 네 번째든 여섯 번째든 월드컵은 여전히 꿈의 무대이며 선수 인생을 걸고 뛰는 중요한 대회”라고 말했다.
앞선 3차례 월드컵에서 10경기 모두 선발로 나섰던 손흥민은 12일 체코와의 북중미 월드컵 조별 리그 1차전에도 주전 공격수로 출격할 전망이다. 그라운드에 나서는 순간 1990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02 한일 월드컵까지 네 차례 연속 본선 무대를 밟은 홍명보 감독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두 번째로 4회 연속 월드컵 출전이라는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대회 통산 3골을 기록 중이라 한 골을 보태면 한국 선수 월드컵 최다 골의 영광도 안게 된다.

손흥민은 지난해 8월, 10시즌을 몸담았던 잉글랜드 토트넘을 떠나 MLS(미 프로축구) LA FC로 이적했다.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공격수였던 그가 축구 변방으로 여겨지는 미국행을 택한 데에는 2026 월드컵 개최국이라는 점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비록 한국은 조별 리그를 멕시코에서 치르게 됐지만, 토너먼트에 진출할 경우 미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이번 월드컵에 진심이었던 손흥민이 이번에도 대표팀을 16강에 올려 놓는다면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2회 연속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끈 캡틴이 된다.
그런 그에게 ‘라스트 댄스’란 표현은 시기상조로 보인다. 손흥민은 “마지막 월드컵이라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팀에 도움이 되는 플레이를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41·포르투갈)가 손흥민에겐 도전 의식을 일깨우는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손흥민은 여러 차례 자신의 우상으로 호날두를 꼽아왔다. 호날두는 이번 대회가 개인 통산 6번째 월드컵 무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부터 주장 완장을 찼으니 포르투갈 캡틴으로도 5번째 월드컵을 맞는다. 월드컵 역사상 유일하게 5대회 연속 득점에 성공한 그는 이번에도 골망을 흔들 경우 자신의 기록을 또 한 번 경신하게 된다. 전성기 시절보다 득점력은 무뎌졌지만, 라이벌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가 직전 대회에서 FIFA컵을 들어 올린 만큼 우승을 향한 갈증은 더 커졌다.

축구 이적 시장 전문 매체인 트랜스퍼마르크트에 따르면, 이번 대회 본선 참가 48국 주장의 평균 연령은 32.9세로 집계됐다. 4년 전 카타르 월드컵보다 0.5세 높아진 수치다. 특히 호날두를 비롯해 40대 주장만 3명에 달한다. 1930년 1회 대회부터 지난 카타르 월드컵까지 본선 무대를 밟은 40대 선수가 단 7명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대회에선 베테랑들의 존재감이 어느 때보다 두드러지는 분위기다. 체계적인 식단 관리와 회복 프로그램 등 스포츠 과학의 발전으로 선수들의 현역 수명이 길어지면서 40대 주장의 등장도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게 됐다.
또 다른 40대 주장 루카 모드리치(크로아티아)는 이번 대회에서 ‘마스크 투혼’을 불태운다. 마흔 살인 그는 지난 4월 소속팀 AC 밀란 경기에서 광대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했지만, 다섯 번째 월드컵 출전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모드리치는 주장 완장을 차고 처음 나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를 준우승으로 이끌며 골든볼(대회 MVP)을 수상했다. 이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팀을 3위에 올려놓으며 브론즈볼을 받는 등 월드컵 역사에 손 꼽히는 캡틴으로 평가 받는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40세 주장 에딘 제코는 이번이 두 번째 월드컵 출전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이란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조국에 월드컵 본선 첫 승을 안긴 그는 이후 보스니아가 잇따라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더는 월드컵과 인연을 맺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제코는 유럽 플레이오프 준결승 웨일스전에서 0-1로 뒤진 후반 41분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리는 등 본선행 티켓을 따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며 다시 한 번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됐다.
반면 이번 대회 최연소 주장은 캐나다의 알폰소 데이비스다. 26세의 데이비스는 독일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 중이며, 이번이 두 번째 월드컵 본선 출전이다. 킬리안 음바페(28·프랑스)와 마틴 외데고르(28·노르웨이)도 이번 대회에 나서는 젊은 주장들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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