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 7건·특검법 13건·청문회 15번…거야 독주에 불붙이는 ‘이재명의 사법 시계’

구민주 기자 2024. 10. 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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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두 건의 선고 앞두고 ‘대통령 퇴진’ 시동…헌재는 ‘10월 마비’ 현실화
자기편 수사→검사 탄핵·고발…“尹 ‘김건희 방탄’이 자초했다”는 지적도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22대 국회는 매일이 '기록'의 연속이다. 그 기록은 주로 '입법권력'을 손에 쥔 170석 거야(巨野)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쓰이고 있다. 5월30일 개원 후 4개월 동안 민주당은 7번의 탄핵을 추진했고, 13건의 특별검사법(특검법)을 단독 발의했다. 사실상 사문화됐던 '입법 청문회'를 비롯해 단독으로 의결·개최한 청문회도 15차례에 이른다. 사나흘에 한 번 단독 입법 행위를 단행한 것으로, 제헌국회 이래 찾아볼 수 없던 속도와 양이다. 그사이 108석 여당에 허락된 공간은 사실상 전무했다.

개원 첫날 "국회가 가진 권능을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결의했던 민주당의 '단독 플레이'는 이제 더욱 본격화할 전망이다. 독주 가도에 가장 큰 연료가 되고 있는 건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다. 이 대표의 정치 운명을 좌우할 순간이 수년 만에 최근 가시권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위증교사 관련 1심 결심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9월20일과 30일 공직선거법 위반·위증교사 혐의에 대해 각각 징역 2년과 3년을 구형했다. 대법원 양형 기준 상한선을 꽉 채운 구형이다. 특히 지난해 법원이 이 대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위증교사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한 것도 이 대표를 옥죄고 있는 지점이다. 이 대표 입장에선 오는 11월로 확정된 1심에서 의원직 상실·5년 피선거권 박탈에 해당하는 '유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커질 만큼 커진 셈이다.

민주당은 1심 선고로 이 대표의 당권·대권 리더십이 흔들릴 일은 결코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중형이 선고될수록 친명(親이재명)으로 채워진 민주당은 이 대표로의 구심력(결집)을 더 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 내 시선은 다가오는 1심이 아닌 그 후에 있을 대법원 판결 시점에 쏠려 있다. 법조계에선 2027년 3월 대선 전까지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올 것이란 관측이 많다. 1심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점을 감안하더라도 두 사건 모두 구조가 단순한 데다, 위증교사의 경우 위증 혐의 피고인의 자백도 확보돼 있어 재판에 속도가 붙을 거란 분석이다.

더불어민주당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10월1일 국회 소통관에 2일 박상용 검사 '탄핵소추사건 조사' 청문회에 박 검사의 출석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방탄'이 시작된 후 민주주의는 사라졌다"

이 대표의 '사법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자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한 '탄핵 시계'를 재촉하고 있다. 최근 조국혁신당뿐 아니라 민주당에서도 공공연히 윤 대통령 탄핵 언급을 늘려가는 것이 이 대표의 사법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9월27일 강득구 민주당 의원 주선으로 한 시민단체가 국회 안에서 진행한 '탄핵의 밤' 행사와 28일 여러 진보단체 주최로 열린 '윤석열 정권 퇴진 시국대회'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여당은 민주당이 이러한 움직임의 '본체'로서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민주당은 일찍이 이번 국정감사를 윤 대통령 탄핵의 '스모킹건'을 찾아낼 '탄핵 국감'으로 규정한 것 같다"며 "이재명 외에 아무런 대안이 없는 민주당의 조급함, 불안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탄과 탄핵으로 점철된 국회에 '협치'가 숨 쉴 틈은 없다. 한 여당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거대 민주당이 '이재명 방탄'을 시작함과 동시에 국회 안에서 '민주주의'는 사라졌다"며 "이 대표의 '운명의 날'이 다가올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고 여야 간 최소한의 신뢰도 잃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국회에서 벌어진 한 장면이 '의회 민주주의 실종'의 단적인 예라고 언급했다. 9월26일 국회 몫의 국가인권위원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여야 격돌 사태다. 이날 국회는 본회의에서 여야가 1명씩 추천한 인권위 비상임위원 선출안 2건을 표결에 부쳤으나 여권 추천 인사만 야당의 무더기 반대표로 부결됐다. 당초 2명 모두 통과시키기로 한 여야 간 합의를 민주당이 깬 것이다.

여기에서도 이 대표가 등장한다. 여당이 추천한 한석훈 후보자가 최근 민주당의 이 대표 수사 검사 탄핵 행보를 비판했는데, 민주당이 이를 '부결 뒤통수'로 보복했다는 게 여당의 주장이다. 민주당은 '사기'라는 여당의 반발에 "좋은 인물을 추천하지 그랬느냐. 사기는 국민이 당한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 같은 충돌에 대해 앞선 여당 중진 의원은 "이 대표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민주당은 이성을 잃는 것 같다"며 "이런 행동들이 타협을 본질로 하는 민주주의를 해치고 신뢰를 무너트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출신의 전병헌 새미래민주당 대표도 9월26일 시사저널TV에 출연해 "이 대표가 70년 역사의 민주당을 '본인 방탄'의 볼모로 삼으며 정체성을 소멸시키고 있다"고 직격했다.

거대 야당이 국회에서의 각종 활동을 정치 공세의 '무대'로 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적으로 국회의 꽃이라 불리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야당은 단독으로 각 상임위 증인들을 채택하고 있다. 김건희 여사 모녀는 증인으로 곧장 의결한 반면, 여당이 요구한 문재인 전 대통령 딸 다혜씨와 대장동 핵심 관계자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은 보류됐다.

22대 국회 들어 약 일주일에 한 번꼴로 개최된 청문회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 국회 4년간 5차례 안팎으로 열렸던 청문회는 이번 국회 들어 15번(인사청문회 제외)을 채운 상태다. 단독으로 추진한 법안을 위한 '입법 청문회'나 방송통신위원장 및 이 대표 수사 검사 등을 향한 '탄핵 청문회'가 대다수다. 이에 대해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거야가 답을 정해 놓은 인민재판의 장만 늘리면서 협치가 들어설 자리를 더욱 좁히고 있다"고 꼬집었다.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검찰·법원 직접 겨누는 野…헌재조차 마비 위기

이처럼 기울어진 입법권력의 폭주가 헌법 정신인 '삼권분립'마저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대표 수사 검사들에 대한 탄핵 추진과 연이은 청문회 소환이 대표적인 행위로 꼽힌다. 민주당은 지난 7월 당론으로 김영철·박상용·강백신·엄희준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이 중 9월14일 김영철 검사 탄핵 청문회를 강행한 데 이어 10월2일 박상용 검사를 상대로 한 청문회도 열었다. 두 검사는 모두 불출석했지만 민주당은 아랑곳없이 "이 대표에 대한 수사는 정치검찰의 탄압"이란 공세를 이어갔다.

검찰과 법원을 직접 겨냥한 입법 활동을 이어가며 압박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9월26일 민주당 내 검찰독재대책위원회는 이 대표가 연루된 '대장동·성남FC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허위 공문서를 작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고발을 예고했다. 친명 의원들은 검사가 법을 왜곡해 사건 당사자를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드는 경우 중형에 처하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 검사의 평정을 강화하는 검찰청법 개정안 등을 줄이어 발의했다. 해당 법안들은 당 소속 정청래 위원장이 지휘하는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곧장 단독 상정됐으며 본회의까지 '프리 패스'할 예정이다.

그보다 앞서 지난 5월 이화영 전 부지사가 대북 송금 관련 1심 재판에서 징역 9년6개월의 중형을 선고받자, 민주당 지도부는 '판사 선출제'를 공개 언급해 한바탕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어 강성 지지층은 이 대표를 재판하는 판사 탄핵 서명운동도 펼치며 힘을 실었다.

최근엔 삼권분립의 또 다른 축인 행정부 권한에 칼을 들이대기도 했다. 민주당은 조국혁신당과 함께 9월25일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제한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단독으로 추진했다. 역시나 민주당 소속 박찬대 위원장이 있는 운영위원회에서 이를 상정해 소위원회로 회부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 권한을 법률로써 침해해 삼권분립 원칙에 심각하게 위배된다"고 비판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거야의 독주 여파는 또 하나의 권력기관이자 사법부의 한 축인 헌법재판소마저 흔들고 있다. 헌법재판관 인선 절차가 국회에서 지연되면서 이른바 '헌재 10월 마비설'이 사실상 현실화된 것이다. 당장 10월17일 임기가 만료되는 국회 몫 헌법재판관 3인의 후임자 지명이 마지노선을 넘어 여전히 캄캄한 안갯속이기 때문이다. 총 9인의 재판관 중 3인의 부재로 '6인 체제'가 될 경우, 7인 이상 출석해야 열리는 사건 심리는 모두 멈춰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그간 국회 몫 헌법재판관은 여당 추천 1인, 야당 추천 1인, 여야 합의 1인으로 정하는 게 관례였다. 재판관 구성의 다양성을 살리자는 취지에 국회도 동의해 왔고, 따라서 그동안 별다른 충돌 없이 무난히 지명이 이뤄졌다. 그러나 민주당이 의석수대로 3인 중 2인을 야당이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유례없는 제동이 걸린 상태다. 국민의힘은 "헌정 질서를 마비시키려는 시도"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정당한 추천권 요구"라고 맞서고 있다.

헌재는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 등 월평균 230여 건을 처리한다. 현재 약 1200건이 계류돼 있으며 이 중엔 사형제 관련 형법 조항과 연명치료 중단 관련 연명의료결정법 등 사회 질서에 큰 변화를 가져올 사안이 다수 포함돼 있다. 하지만 김건희·채 해병 특검법에 대한 재표결과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어 헌재 마비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비관적 관측이 정치권 내에선 커지고 있다. 특히 인권위원 통과 과정에서 민주당에 '뒤통수'를 맞은 여당은 "재판관 지명도 언제 배신할지 모른다"는 경계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신뢰가 사라진 독주 정치의 악순환이다.

여당은 나아가 민주당이 의도적으로 헌재를 마비시키려 한다는 의혹도 키우고 있다. 헌재 기능을 정지시켜 민주당이 탄핵을 강행한 대상자들의 직무정지 기간을 계속 늘리고 '탄핵 정치 효과'를 높이려 한다는 의심이다. 현재 탄핵심판 심리가 진행 중이어서 직무가 정지돼 있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민주당의 브레이크 없는 독주의 동력은 '이것이 곧 민심'이라는 믿음에 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세 가지 구체적인 근거를 댄다. 우선 4·10 총선에서의 압승이다. 범야권에 192석을 몰아준 민심이 곧 야당의 '정권 심판'에 단단히 힘을 실어준 것이란 게 민주당의 중론이다. 친명계 인사들은 총선 후 이어지고 있는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 부진 이유 역시 '정부와 더 강하게 싸우지 않아서'라고 주로 해석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9월26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여당 몫의 한석훈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선출안이 부결된 것에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탄핵' 외쳐도 '역풍' 없다…무력 자초한 정부·여당

총선 후 지난 8월 진행된 민주당 전당대회 또한 민주당의 방향에 확신을 키워준 계기가 됐다. 초반부터 '확대명'(확실히 당대표는 이재명) 분위기로 굳어지면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이 대표를 엄호하는 분위기가 한층 강화된 것이다. 이 대표를 사법 리스크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곧 당심이며, 이러한 당심이 곧 전체 민심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역풍'이 '무풍'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 민주당 내 독주 자신감을 키우는 핵심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해도 민심의 바람이 정부와 여당으로 향하지 않고 있으며, 뚜렷한 역풍도 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같은 거야 독주 속에서도 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만 연일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단단히 결집해 거야에 맞서야 할 당정은 연일 의료 개혁 이견과 윤·한(윤석열·한동훈) 갈등 속에 분열만 노출하고 있다. 특히 날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김건희 여사 문제를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면서 국정 동력을 잃어가고 민심에서 열세에 놓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여사를 방탄하는 탓에, 이 대표를 방탄하는 민주당을 향한 공세가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거부권 미로에 갇힌 정부, 존재감 없이 무력한 여당이 지금의 현실을 자초했다는 씁쓸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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