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손잡고 한숨 돌린 신세계...'적과의 동침'으로 쿠팡 독주 흔들까

신세계그룹이 알리바바그룹의 자회사인 알리바바인터내셔널과 손잡고 합작법인 ‘그랜드오푸스홀딩’(가칭)을 설립한다고 지난 26일 공시했다. 이번 합작법인은 정용진 회장과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의 전략적 판단으로 평가된다. /사진=박진화 기자

신세계그룹과 중국의 알리바바그룹이 손잡은 합작법인을 두고 유통업계에선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교착 상태를 깨고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신세계의 지마켓은 알리바바의 글로벌 유통망을 활용해 해외 시장에 진출하고, 알리바바는 지마켓의 셀러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국내 판매자를 확보해 물류 속도와 가격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번 협업을 통해 쿠팡과 네이버 양강 구도로 굳어진 이커머스 판도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알리바바그룹의 자회사인 알리바바인터내셔널과 손잡고 합작법인 ‘그랜드오푸스홀딩’(가칭)을 설립한다. 양측의 출자 비율은 5대 5다. 신세계는 이마트를 통해 보유한 지마켓 지분 80%를 현물로 출자하고, 알리바바는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 지분과 현금 3000억 원을 출자할 예정이다.

합작법인은 지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를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업계는 합작법인의 총 기업가치는 6조원으로 예상하지만 정확한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기업가치와 투자 규모는 현재 논의 중이고 지배구조와 경영 방식 등 세부적인 사항은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신세계는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지마켓의 부담을 덜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기회를 마련했다. 2021년 신세계는 3조5591억원을 투자해 지마켓(당시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해 국내 유통업계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당시 이커머스 시장은 급성장 중이었고 지마켓은 오픈마켓 점유율 1위 기업이었다. 신세계 정용진 회장은 자체 플랫폼 쓱닷컴과의 시너지를 기대하며 성수동 본사 매각까지 감행해 인수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커머스 시장 환경이 급변했다. 직매입 모델의 쿠팡이 시장을 주도하고, 네이버가 오픈마켓을 장악하면서 지마켓의 점유율은 하락세를 보였다. 2021년 43억원의 흑자를 냈던 지마켓은 2022년 655억원, 2023년 321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3년간 누적 영업손실이 1000억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의 약진으로 가격 경쟁력까지 약화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신세계-알리 협력으로 쿠팡 흔드나

신세계와 알리바바의 합작법인 설립은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정체를 타개할 새로운 전환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신세계는 알리바바의 물류 및 소싱 경쟁력을 통해 지마켓의 부진을 해결하고 글로벌 시장 선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세계는 알리바바의 글로벌 유통망을 활용해 미국, 유럽, 일본 등 200여 개 국가로의 판로를 개척할 계획이다. 이는 60만 명의 지마켓 셀러에게도 새로운 시장 진출 기회를 제공할 전망이다. 쿠팡이 대만 중심의 글로벌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과 달리, 지마켓은 알리바바 플랫폼과 연계해 보다 폭넓은 시장 확장을 꾀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지마켓 셀러들이 알리바바인터내셔널 플랫폼에 쉽게 입점할 수 있도록 시스템 개선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국내 시장에서 저가·저품질 이미지로 인해 고전해왔지만, 이번 협업을 계기로 지마켓의 브랜드 신뢰성을 기반으로 이미지 쇄신과 셀러 확충에 나설 계획이다. 알리는 국내 법인을 설립하고, 2022년 한국 판매자를 위한 ‘케이베뉴’를 론칭하며 시장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낮은 품질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국내 판매자와 셀러들의 참여가 미흡했다. 특히,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27%를 차지하는 신선식품 분야에서 신뢰 부족은 큰 약점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마켓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국내 셀러를 대거 확보하며 가격 경쟁력을 강화해 쿠팡과의 본격적인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CJ대한통운과 협력해 제공 중인 ‘오늘 오네’ 당일 도착 서비스는 기존 해외직구 배송 기간을 1~2주에서 3~5일로 단축하며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더 많은 국내 셀러와 협력하고 물류 협업을 확대하면, 쿠팡의 로켓배송에 버금가는 국내 당일 배송 체계를 구현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넘어야 할 과제는

다만 플랫폼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만큼 알리와 지마켓이 실질적인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유기적인 결합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신세계가 지마켓과 쓱닷컴의 시너지를 기대하며 통합 멤버십을 도입하는 등 외형적 결합을 시도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알리와 지마켓이 각각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독립적으로 운영될 경우 고객이 체감할 서비스 변화나 이미지 개선이 부족하면 기대한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신세계가 알리바바와 손잡은 이상 국내 수백만명에 달하는 고객의 개인정보 유출 우려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마켓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지난달 기준 562만명 수준이다. 합작법인을 통해 이와 같은 신뢰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협력의 장기적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알리바바가 한국 시장에서 자리 잡지 못했던 주요 이유 중 하나는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기 때문"이라며 "데이터 보호를 강화하는 기술적·법적 장치를 마련하거나 고객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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