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유가족, 국가책임 묻는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8일째인 2022년 11월15일,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처음으로 한데 모였다. 희생자 17명의 유가족 30여 명은 이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서울역 인근에서 연 간담회에 참가해 2시간30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민변에 따르면, 유가족들은 함께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소통할 기회가 이제야 마련된 점에 아쉬워했다고 한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유가족은 “(희생자들이) 왜 그곳에 갔는지를 물을 것이 아니라,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민변은 전했다.
그동안 정부는 참사 유가족들의 만남 자리는 마련하지 않았다. 다만 국가배상 가능성은 언급했다. 윤석열 대통령 국외 순방 중인 11월13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태원 참사 관련 국가배상 가능성 유무를 두고 법률 검토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대통령 순방 중 “국가배상 법률 검토”
변호사단체들이 정부보다 먼저 나섰다. 11월8일 민변이 ‘10·29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 티에프(TF)’를 꾸렸고,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에 유가족 등을 모집했다.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도 이태원 참사 관련 법률지원을 하겠다고 11월14일 밝혔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법률지원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민변 ‘10·29 참사 티에프’ 공동간사를 맡은 이창민 변호사는 “이미 민사소송에서 국가배상을 요구할 수 있을 만큼 (밝혀진 국가의 잘못은) 충분하다”며 “어느 선까지 참사 당일 상황이 보고됐느냐가 핵심이다. 경찰, 행정안전부 등 지휘계통에 있는 사람들이 상황을 인지했다는 사실이 나오면 국가가 책임져야 할 배상액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현재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진행하는 수사에서 역시 이들 지휘계통에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만약 참사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국가배상을 요구한다면, 국가책임을 다툴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핼러윈을 앞둔 사전대비 단계에서 참사의 예견 가능성 △참사 당일인 10월29일 밤부터 10월30일 새벽 사이 정부 대응의 적절성 △주최자가 정해지지 않은 행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 유무다.
첫째, 경찰이나 용산구청은 핼러윈을 앞두고 이처럼 인파가 몰리는 상황을 예견할 수 없었을까. 용산경찰서가 작성한 ‘2017~2022년 핼러윈데이 대책’ 문건을 보면, 경찰은 2020년 ‘인구 밀집으로 인한 압사 및 추락 등’에 대비해야 한다는 문구를 언급한 적이 있다. 만약 경찰이 참사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막을 주의의무를 불이행했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면 국가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창민 변호사는 “용산경찰서는 2022년 10월 초부터 수차례 핼러윈데이를 맞아 이태원 일대에 인파가 몰릴 거라는 정보보고서를 작성해 서울경찰청에 전달했다. 그럼에도 사전대비 계획은 세워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한변협도 11월14일 낸 보도자료에서 “3년 만에 마스크 없이 열리는 축제 기간이었으므로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에 대규모 인파가 모여들 것이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이었다며 “용산구청과 용산경찰서도 자체적으로 시민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정보보고서와 문건을 사전에 생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지적했다.
1998년 위험 발생 방지 미조치, 국가배상 책임 인정
둘째, 이태원 참사 당일 정부 대응에서도 위법성을 따질 몇 가지 대목이 있다. 시민들이 압사 위험을 알리며 수차례 112 신고를 했지만 경찰이 제때 경찰력을 배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사 희생자를 위한 국가배상청구소송인단 모집 공고문을 낸 굿로이어스의 전수미 대표변호사는 “112 신고뿐만 아니라 해밀톤호텔 골목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CCTV) 등으로도 경찰이 위급한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었지만 조치가 없었다”며 “공무원인 경찰이 직무상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점은 위법하고, 국가배상법에 따라 유가족은 국가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98년 대법원은 경찰관이 경찰관직무집행법 제5조에 규정된 ‘위험 발생 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한 바 있다(대법원 98다16890 판결).
셋째, 용산구청과 행정안전부 등은 ‘주최자 없는 행사’였다는 이유로 지방자치단체의 법적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는 국가, 지자체가 재난관리책임기관으로서 재난 및 안전사고를 대비해야 한다는 의무를 못박아뒀다. 재난이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도 지자체장은 △응급조치를 해야 할 의무 △동원명령 △위험구역 설정 △통행제한 등을 해야 한다. 민변 ‘10·29 참사 티에프’ 공동간사를 맡은 오민애 변호사는 11월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용산구와 서울시, 행정안전부는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소 3~4년 걸리는 긴 싸움
“국가가 제대로 된 책임 규명을 하지 않다보니 좌절감과 무력감이 느껴진다고 유가족들이 말한다. 법을 잘 모르는 유가족들의 경우, 소송하면 국가로부터 불이익을 얻는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 다들 움츠러들어 있다.”(전수미 변호사)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을 만난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이태원 참사는) 희생자 가족들이 (서로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다 파편화돼 있다. 각각의 유가족 입장을 전체 입장으로 일반화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각각 다른 희생자 가족들이 소송을 내더라도 법원에서는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다만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소송은) 최소 3~4년 걸리는 굉장히 긴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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