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 국가부터 다시 시작하자
‘야경 국가(夜警國家)’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국가 권력이 가장 축소된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다. 야경 국가에서 국가의 역할은 사회와 시장의 질서 유지에 필요한 국방과 치안에 국한한다. 이 용어는 독일의 사회주의 사상가 페르디난드 라살(Ferdinand Lassale)이 1862년 베를린에서 행한 연설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살은 적극적으로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자본주의 정부를 조롱하려는 의도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반대로 시장의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한 소정부주의(minarchism)의 상징으로 야경 국가를 사용해왔다.
국가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사회주의 학자들이나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자들이 공동으로 인정하는 국가의 역할은 ‘야경 국가(Nachtwächterstaat)’다. 독일어로는 ‘야경꾼’을 의미하는 ‘나하트뵈히터(Nachtwächter)’와 ‘국가’를 의미하는 ‘슈타아트(Staat)’가 결합한 단어다. 그러나 실제로 밤에 도둑을 잡는 것에 국가의 역할을 제한했다기보다는 공공의 안전을 지키는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시장의 자유를 강조한 대표적인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도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유사하게 설명했다. 1776년에 발표한 그의 저서 ‘국부론(Wealth of Nations)’에서 국가의 역할은 세 가지로 묘사된다.
첫째, 외부 사회로부터의 침략과 폭력으로부터 사회구성원을 보호하는 일이다. 둘째, 사회 내 다른 구성원들의 불의나 억압으로부터 구성원을 보호하는 일이다. 셋째, 구성원 전체에 이득이 되지만 개인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제공되지 못하는 공공사업을 시행하거나 공공기구를 유지하는 일이다. 첫째와 둘째는 국민의 안전을 외부와 내부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역할이며, 셋째는 공공재를 공급하는 역할이다. 그 외의 일들은 시장의 힘, 즉,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당시 유럽 국가들은 왕정이 중심이었다. 국가의 부는 당연히 왕실의 부를 의미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왕실이 부유해지기보다 국민이 부유해져야 부유한 나라가 된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개인은 부를 늘리려는 이기적 욕망을 따라 최선을 다해 생산물 가치를 제고할 수 있어야 부유해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 국가는 임의로 국민의 경제 활동에 간섭하거나 규제를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 그가 국가의 역할을 제한하고 시장 기능을 강조한 배경이다.
그러나 소수 독과점 기업이나 자본의 힘에 의해 시장이 왜곡되면서 사회주의자들은 국가의 개입을 통해 자본과 노동 간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라고 요구하게 된다. 라살이 국가를 고작 ‘야경’이나 맡아서 한다고 정부의 기능을 비판하게 된 배경이다. 지금은 라살이 비판했던 ‘야경 국가적’ 역할만 수행하려는 정부는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운용하는 국가들도 사회구성원에게 생존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복지국가적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장 기본적인 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야경 국가의 역할인 안전의 보장이다.
최근 우리 정부의 야경 국가적 기능이 실패하고 있어 국민적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태원에서 발생한 핼러윈 참사는 명백히 국가가 수행해야 할 기본적 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례다. 공공질서를 관리하여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이 역할이 수행되지 못하여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의 역할이 야경 국가적 기능에서 시작돼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국민의 다양한 욕구가 분출해 국가의 역할이 더 많아지고 복잡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가 가장 먼저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 정책 목표는 언제나 국민의 안전이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어야 나라다운 나라로 평가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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