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예감…눈덩이 의혹 뭉개다 정권 무너질 수도
거짓·조작·국정개입 의혹 줄줄이
보수언론 사법 처리 불가피 점화
국민의힘 ‘ 반윤친한 ’그룹도 가세
윤대통령·김여사 스스로 결단해야
불길한 예감은 늘 적중하는 것 같습니다. 1992년 12월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둘째 아들 김현철씨 때문에 정권이 곤란을 겪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김현철씨는 대선 전부터 이미 ‘정치인 김영삼’의 최측근 실세였고 핵심 참모였습니다.
30년 뒤인 2022년 3월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김건희 여사 때문에 정권이 곤란을 겪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김건희 여사는 대선 전부터 이미 학력 부풀리기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 여러 의혹에 휘말려 있었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대통령 가족은 늘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 가족은 현실적으로 대통령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대통령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민은 대통령을 선출한 것이지, 대통령 가족을 선출한 것이 아닙니다. 고위 공직에 진출하려는 사람들, 권력을 등에 업고 돈을 벌려는 사람들 중에는 대통령 가족에게 필사적으로 줄을 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통령 가족은 ‘은밀하고도 튼튼한 동아줄’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가족은 그 존재 자체가 국정 개입과 국정 농단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도의 정치적 사안…민심이 관건
대통령 재임 중에 가족의 비리나 국정 개입 의혹이 불거지면 대통령의 리더십이 급격히 훼손되고 국정 운영의 동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대통령 가족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비리나 범죄의 영역이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영역일 수밖에 없습니다. 불법이냐 아니냐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 민심을 어떻게 달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가족 문제가 터지면 중대한 정치적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민심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김건희 여사가 국민의힘 공천과 당무에 개입했다는 증언과 정황이 연일 쏟아지고 있습니다. 공직 인선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불거질 조짐입니다. 아직 결정적인 물증은 나오지 않았지만, 김대남·명태균씨 등 관련자들의 발언 수위로 미루어 이른바 ‘스모킹건’이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습니다.
정가의 관심은 벌써 김건희 여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로 급속히 쏠리고 있습니다. 사건의 실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처리’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한 이유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김건희 여사 사태는 고도의 정치적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김건희 여사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윤석열 정권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정가와 언론에서 제시하는 김건희 여사 ‘처리’ 방안은 크게 세 갈래입니다.
첫째, 근신론입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0월9일 부산 금정구청장 후보 사무실 앞에서 기자들과 문답을 했습니다.
“친한동훈계 의원들이 김건희 여사가 활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의원들이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르는데, 저도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동훈 대표는 다음날에도 기자들과 이런 문답을 주고받았습니다.
“어제 김건희 여사 활동 자제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했는데, 정확히 무슨 말인가? 어느 수준까지 조처가 있어야 하나?”
“당초 대선 과정에서 이미 국민에게 약속한 부분 아닌가? 그거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활동 자제 요구는 사실 하나 마나 한 소리입니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 김건희 여사가 대외 활동을 계속하며 얼굴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둘째, 유배론입니다.
유배론은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월25일 ‘엠비시(MBC) 뉴스외전’에서 가장 먼저 꺼낸 것 같습니다.
“지금 만악의 근원은 김건희 여사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민심이 용서 안 한다. 차라리 저는 김건희 여사를 백담사로 보내서 조용하게 살게 하면서 처리해라, 이런 것을 권하고 싶다.”
김웅 전 국민의힘 의원은 10월2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소록도 유배를 제안했습니다.
“예를 들면 소록도 같은 데 가서 거기서 몇달간 자원봉사를 하든지 좀 그런 식으로 해서 국민이 정말로 뭔가 변했구나라는 느낌이 드실 수 있도록 목숨 걸고 한번 해보시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유배론도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박지원 의원이나 김웅 전 의원이나 답답한 마음에서 백담사나 소록도를 사례로 든 것에 불과하다고 봐야 합니다.
천하의 양김도 눈물로 ‘아들 구속’ 수용
셋째, 사법 처리 불가피론입니다.
김건희 여사를 사법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특이한 것은 언론에서 먼저 이런 주장이 제기된 것입니다. 동아일보 이기홍 대기자가 10월4일치 신문에 “‘김건희 수렁’, 사법심판대 서는 게 유일한 탈출구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여권은 이런 눈사태가 본격화하기 전에 신속히 김 여사가 사법적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 과거 전직 대통령들 수준에 버금가게 소환돼 밤샘 조사받고, 만약 조금이라도 실정법 위반 혐의가 있다면 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한다.”
“아직 대통령 임기가 절반 넘게 남아 있다. 자기 팔을 도려내는 결단이 대통령과 여권 전체는 물론 김 여사를 위해서도 현명한 해법이다.”
중앙일보 이하경 대기자는 10월7일치 신문에 “기로에 선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권력은 한순간에 소멸하는 꿈일 뿐이다. 천하의 양김도 재임 중 눈물로 아들의 구속을 받아들였다. 대신 나라를 혼란으로부터 지켰다. 과연 이 나라 민주주의를 건설한 거인답다. 윤 대통령이 부디 실기(失期)하지 말기 바란다.”
두 칼럼의 논지는 정권이 무너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김건희 여사를 신속히 사법 처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하경 대기자가 거론한 ‘천하의 양김(김영삼 김대중)’, 그중에서도 김영삼 대통령 사례를 찾아봤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한보 부도 사태’와 ‘둘째 아들 구속’ 두 곳으로 나누어 당시 상황과 심경을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아들은 결백을 주장했고, 나는 아버지로서 솔직히 그 말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들의 아버지이기에 앞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4주년인 1997년 2월25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이 모든 것은 저의 부덕의 결과이며 대통령인 저의 책임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김현철씨는 4월25일 국회 청문회 증언대에 섰습니다. 신한국당이 국회 과반수였고 김영삼 대통령이 총재였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의 청문회 출석을 막을 수 있었지만 막지 않았습니다. 청문회 이후에도 민심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고통스럽고 쓸쓸한 날들이 이어졌다. 나의 재임 중 가장 괴롭고 고독한 시간들이었다.”
“‘내 아들을 구속시켜야 한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현철이를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나는 몇날 며칠을 두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심했다. 나는 김기수 검찰총장한테 직접 전화를 해 ‘현철이를 구속하라’고 지시했다.”
“나 역시 대통령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아버지였다. 자식을 자기 손으로 감옥에 보내고 싶은 아버지가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수많은 날을 번민 속에 보냈다.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냉혹하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면서 나는 부정(父情)을 떨쳐버리고, 내 자신과 가족에게 참으로 가혹한 결단을 내렸다.”
김영삼 대통령의 인간적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여권도 ‘털고 가야’ 분위기
보수 신문 대기자들이 먼저 제기한 김건희 여사 사법 처리 불가피론은 여권 안에서 점점 확산하는 추세입니다. 신지호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이 10월8일 ‘에스비에스(SBS)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검찰이 김건희 여사 기소를 하면 오히려 당의 부담이 줄어든다.”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하게 되면 오히려 야당이 ‘거봐라, 명품 백도 봐주기 수사 불기소, 도이치모터스도 불기소, 그러니까 특검이 필요한 것 아니냐’ 하면 이 특검법에서 방어하기가 조금 더 어려워진다 하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한동훈 대표도 가세했습니다. 검찰의 도이치모터스 사건 김건희 여사 불기소 방침에 대한 10월10일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검찰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검찰이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급하긴 급했던 것 같습니다. 평생 검사를 하고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사람의 발언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한동훈 대표가 마침내 윤석열 대통령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모양새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김건희 여사 사법 처리를 요구하는 여론이 아무리 빗발쳐도 최종 결정은 결국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해야 합니다. 특히 김건희 여사의 ‘결심’이 필요합니다. 두 사람의 독특한 관계로 추정컨대 김건희 여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를 사법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과연 김영삼 대통령의 길을 따를 수 있을까요? 먼 훗날 회고록에 이렇게 쓸 수 있을까요?
“나 역시 대통령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남편이었다. 아내를 자기 손으로 감옥에 보내고 싶은 남편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수많은 날을 번민 속에 보냈다.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냉혹하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면서 나는 부정(夫情)을 떨쳐버리고, 내 자신과 가족에게 참으로 가혹한 결단을 내렸다.”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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