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실패하는 무순위 청약
‘거래 절벽’ 장기화로 부동산 시장 침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있었던 장기 침체 시대가 다시 올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특히 분양 아파트 시장이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최근 부동산 시장을 점검했다.
◇쌓여가는 미분양

서울 미분양은 작년 12월만 해도54가구에 그쳤다. 하지만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719가구에 달했다. 거의 14배가 됐다. 강북구(318가구), 마포구(245가구) 등 최근 분양한 소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미분양이 대거 발생했기 때문이다. 경기 역시 미분양이 한 달 만에 35.5% 급증했다.
분양권 가격도 충격을 받고 있다. 강서구 마곡동 ‘마곡13단지힐스테이트마스터’ 전용 59㎡는 최근 9억 8000만원에 거래됐다. 작년 10월 기록한 최고가 13억 8000만원보다 4억원(29%) 낮은 것이다. 서대문구 남가좌동 ‘DMC파크뷰자이 3단지’ 전용 59㎡는 최근 9억원에 거래됐는데, 작년 9월 기록한 최고가 12억 5500만원보다 30%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올해 들어 분양 인기가 추락한 것은 작년 말부터 주택 경기가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출 규제 강화와 금리 인상으로 무주택 수요자들의 자금 마련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정부가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을 펴고 있어 청약 수요자들 사이에선 ‘좀 더 기다리겠다’는 심리가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분양 해결을 위해선 무순위 청약을 진행해야 하는데, 무순위 청약마저 실패하는 곳도 많다. 도봉구 창동 ‘창동 다우아트리체’는 지난달 무순위 청약을 했던 63가구 중 60가구가 계약을 포기했다. 이 아파트는 5월 최초 청약 때 12대1의 경쟁률로 1순위 마감했다가, 전체 89가구 중 63가구가 계약을 포기해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는데, 여기서도 수요자의 외면을 받은 것이다.
또 지난 6월 말 입주를 시작한 강북구 수유동 ‘칸타빌 수유팰리스’는 분양가를 15% 할인하는 결단을 했지만, 전체 216가구 중 아직 26가구가 미분양 상태다.
◇묻지마 청약 골치?

이렇게 몇 번이나 무순위 청약을 하고도 완판에 실패하는 일이 반복되자 건설사들 사이에선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지난달 무순위 청약 공고를 낸 서울 강북구 미아동 ‘한화 포레나 미아’의 공고문 첫 페이지엔 빨간 글씨로 ‘미자격자 및 계약 의사가 없는 고객은 청약을 자제해달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당첨 후 어차피 계약을 포기할 사람은 ‘묻지 마 청약’을 자제해 달라는 얘기다. 당첨 자격 확인도 없이 일단 넣고 보는 경우도 많다는 게 건설사 설명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묻지마 청약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청약 대기자가 줄을 서 있어서 순서대로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청약이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처럼 청약 시장 열기가 급속도로 식으면서 미분양이 늘어나는 시기엔 ‘묻지마 청약’이 큰 골칫거리가 된다.
무순위 청약은 일반 청약과 달리 예비 당첨자를 뽑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적격자가 당첨되거나 당첨자가 계약을 취소했을 때 무순위 청약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5차, 6차, 7차 등으로 무순위 청약이 계속 이뤄지는 건 이 때문이다. 당장 미계약분을 처리해야 하는 건설사 입장에선 비용 부담이 매우 커진다는 호소를 하고 있다.
◇수요자들 "가격 올릴 때는 언제고"

과거에는 1·2순위 청약 후 예비 당첨자 배정까지 마치고도 미분양 물량이 남으면 사업자가 임의로 처분할 수 있었다. 건설사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을 받거나 홍보관을 방문한 고객에게 면대면으로 미분양 아파트를 판매하는 식으로 처리했다. 길거리에서 계약자를 모집하는 장면도 흔했다.
하지만 정부가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2019년 2월부터 미분양이 20가구 이상 발생한 단지는 공식 시스템을 통한 무순위 청약을 의무화하면서 임의 처분이 불가능해졌다. 무순위 청약은 회차 사이에 한 달 정도 걸리고, 진행비도 소요된다고 한다.
결국 건설사 입장에서는 묻지 마 청약 자제를 호소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최근 6번째 무순위 청약을 받은 인천 연수구 ‘럭스 오션 SK뷰’는 ‘접수 전 대표전화로 문의 바람’이라는 문구를 공고문에 넣었다. 청약 자격이 있는지 안내를 받으란 것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청약 경쟁률이 많이 식어서 분양 희망자 모으기가 어려우니 건설사들이 임의 처분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주택 실수요자들 사이에선 건설사들의 자업자득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익 극대화를 위해 고분양가를 고수할 때는 언제고 제도 개선 요구를 하느냐는 것이다. 한 청약 대기자는 부동산 카페 올린 글을 통해 “가격만 합리적이면 도시락 싸갖고 다니며 말려도 분양 희망자가 줄을 설 것”이라며 “거듭되는 미분양에도 높은 가격을 고수하는 것을 보면 건설사들이 아직 여유가 있는 모양”이라고 했다.
/박유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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