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최근에는 정영선 조경가의 작품과 그곳의 사계절을 담은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가 개봉하며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조경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정다운 감독은 〈이타미 준의 바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를 연출하며 건축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새로이 개척하고 있는데요, 브릭스 매거진에서 정다운 감독을 만나 〈땅에 쓰는 시〉 제작 과정과 정영선 조경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감독
- 출연
- 정다운,김선,장준구
- 평점
- 3.34

땅에 쓰는 시
이번 다큐멘터리의 제목인 〈땅에 쓰는 시〉를 제가 지은 제목이라고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땅에 쓰는 시’는 당신의 작업 세계를 표현하는 정영선 선생님의 철학입니다. 땅에 시를 쓰는 마음으로 국토를 매만지고 사랑하시는 것이지요.
시는 사람을 위로하는 은유의 예술이에요. 정영선 선생님께서도 시처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영혼을 매만져서 위로를 줄 수 있는 형태의 작업을 희망하세요. 시를 읽으며 이게 무슨 뜻일까 생각하다 보면 한 템포, 호흡을 가다듬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처럼 시 같은 공간에서 사람은 여유를 가지고, 사유하고, 자연과 교감하는 거예요.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이 바로 땅에 시를 쓰는 과정이고요.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땅에 쓰는 시〉가 될 수밖에 없었지요.

오프닝 시퀀스에 담은 철학
〈이타미 준의 바다〉와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의 오프닝을 기억하시나요? 저희는 항상 오프닝 시퀀스에 영화가 어떤 것을 다루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땅에 쓰는 시〉도 마찬가지고요.
영화의 오프닝에는 대동여지도가 등장했다가 현대의 지도로 바뀌고, 지도 위에 선생님이 작업하신 프로젝트를 땅에 꽃이 피어나는 듯이 표현했어요. 대동여지도와 정영선 선생님의 작업은 일맥상통한다고 보았기 때문이에요. 정영선 선생님은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에 관해 말씀하실 때 대동여지도를 자주 언급하세요. 아시다시피 김정호 선생님의 대동여지도는 애민 사상으로부터 그려진 작품입니다. 간단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뱅뱅 돌며 한 달에 걸쳐 가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셨으니, 그 안에 사람들과 국토의 사랑이 기본이 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동여지도는 그 자체로 예술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작품이 그렇듯이요.

〈땅에 쓰는 시〉의 오프닝에는 아이도 등장합니다. 〈이타미 준의 바다〉에는 저의 첫째 아이가 등장했고요, 이번 작품에는 둘째 아이가 선유도공원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엔딩에 쓰인 동요 〈모두 다 꽃이야〉도 둘째 아이가 부른 곡이에요.
아이는 저희의 상징입니다. 아이들이 품고 있는 우주, 미래라는 시간성에 대한 은유이지요. 저희 작품은 미래 세대에 바치는 연서예요. 좋은 철학, 좋은 생각, 좋은 경관 등 우리가 가진 좋은 것들을 미래 세대에게 잘 전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사랑의 편지요. 아이가 선유도공원에서 아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실 텐데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정말 혼자 좋아서 노는 모습이었어요. 아이의 행복한 표정이 선생님이 작업하신 공간을 풍요롭게 향유하는 사람들의 얼굴인 것이지요.

건축과 조경
한국은 건축과 조경이 서로 분리되는 경향을 보여요. 일반인들은 조경 분야를 잘 모르시기도 하고, 그냥 꽃과 나무를 심는 정원사의 느낌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건축물이 다 세워지고 난 다음 조경은 마지막에 들어와 꽃이나 나무를 집어넣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 있는데, 사실 절대 그렇지 않아요. 건축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일정 이상 규모의 프로젝트에는 건축과 조경이 처음부터 함께 들어가요. 어느 하나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이 아니지요.
건축은 땅 위에 서고, 그러다 보면 원래 있던 자연을 파괴하는 물리적인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하지만 일단 세워지고 나면 건축과 자연은 함께 고려될 수밖에 없어요. 땅 위든 물 위든, 결국 건축물은 자연의 경관 안에 들어오게 되니까요. 그 랜드스케이프에서 우리의 삶과 건축적 공간성을 이어주는 사람이 바로 조경가예요. 건축물이 어떤 방향으로 놓이고, 어떤 식으로 자연성하고 연결이 되면 좋을지, 건축가와 조경가가 시작부터 함께 고민해야 좋은 작업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예요.

건축과 자연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저희 부모님을 따라 작은 섬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어요. 온통 자연밖에 없었던 곳에서 뛰어놀고 자랐기 때문에 지금도 저는 자연이 있어야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연의 생명력 자체가 예술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요소라고 생각하고요.
그러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의 전근으로 서울로 올라왔어요. 갑자기 온갖 건물들로 가득한 도시 속에 떨어지자 온몸으로 문화 충격을 느꼈지요. 그 충격 속에서 반대급부로 건축에 굉장히 예민해졌고요. 그렇게 자연과 건축을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런 사람이 제주도에서 이타미 준 선생님의 수풍석박물관을 보게 된 거예요. 제주도의 자연성 앞에 건축이 굉장히 겸손하게 들어가 있는데, 한편으로는 자연을 품는 듯한 포용력에 충격과 감동을 받았어요. 어떻게 일본 건축가가 이렇게 제주를, 한국을 잘 이해하고 있을까 궁금해서 조사해 보니 이타미 준 선생님이 재일한국인이었던 거지요. 사람이 굉장히 상처받기 쉽고 아픈 존재라는 걸 아는 사람이기에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는 공간을 만드셨구나, 알 수 있었어요. 그때, 저희 인생도 바뀌었는데요, 원래 극영화를 하려던 사람들이었는데 건축 다큐멘터리로 전향했지요.
이처럼 저는 건축과 자연이 잘 어우러질 때, 그 공간성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생명력을 전달해 주는 좋은 공간이 된다고 믿어요. 그래서 건축 공간에 자연성을 부여하는 조경가라는 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정영선 선생님과의 인연
조경가 정영선 선생님과는 〈이타미 준의 바다〉를 통해 처음 만났어요. 하지만 제 인생 곳곳에 이미 정영선 선생님의 영향이 미치고 있었지요.
섬에서 서울로 올라온 저는 힘들 때마다 숨쉬기 위해 자연을 찾았어요. 유년 시절에는 집 근처에 있던 양재천이 그런 장소였지요. 그러다가 청년기, 나 같은 사람이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고통스러웠던 시기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당시 한국영상자료원이 예술의 전당에 있었거든요. 아시다시피 예술의 전당의 조경은 정영선 선생님의 작품이었고요.

이후로 제주도 사람을 만나 제주도 부모님께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갈 때, 오설록 티 뮤지엄에 들러서 선물을 샀던 기억이 나요. 결혼 이후에는 여기 선유도공원에서 태교도 하고 아이들도 뛰어놀게 했고요. 서울 아산병원도 마찬가지예요. 서울 아산병원의 숲과 눈물의 관계를 웬만한 분들은 다 한 번쯤 경험하셨을 거예요. 저도 그곳에서 엄청나게 울 수밖에 없던 순간이 있었고요. 이처럼 제 인생 중요한 지점에 있던 공간들에 전부 선생님의 손길이 닿아 있었어요. 한 마디로 저는 정영선 키즈였던 것이지요.

선생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쓰다듬으려 작업하셨는지 알게 된 다음에는 선생님과의 작업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질 수밖에 없었어요. 건축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건축과 조경이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작정하고 알리고 싶었지요.
정영선 선생님과의 작업
어떤 대상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는 마음의 결정을 위해 굉장히 강력한 내적 동기가 필요해요. 그런데 저는 선생님을 처음 뵀을 때 바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정영선 선생님은 정말 매력적이고 멋진 분이셨어요. 카리스마 넘치고 유머러스하고. 그런데 마지막에 당신 휴대전화를 꺼내셔서 손자 사진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손자가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며 자랑을 하시는데, 그 얼굴이 딱 제가 봤던 저의 할머니 얼굴인 거예요. 그래서 나도 질 수 없다, 우리 아들은 이렇습니다, 질세라 둘째 아이의 사진을 보여드렸지요.

서로 우와, 예쁘네, 이러면서 아이들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 정영선 선생님의 인간적인 면을 봤어요. 저는 천재에는 관심이 없어요. 노력하는 인간, 좀 더 치열하게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에게 매력을 느껴요. 정영선 선생님께 완벽하고 천재적인 면만 봤으면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까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오히려 선생님의 인간적인 매력,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아이들을 바라보는 표정에서 알게 된 거예요. 선생님께서 다음 세대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손길로 이 국토를 만지신다는 것을요.
정영선 선생님의 손자는 〈땅에 쓰는 시〉 후반부에 등장해요. 그 이전에도 손자 이야기를 하신다거나, 손자가 작업실에 남겨 둔 그림과 색연필을 설치 미술이라고 하신다거나 하는 장면으로 ‘빌드 업’을 하지요. 그러다가 손자가 등장해 품에 안으실 때의 표정은 그 이전까지 영화에 등장했던 선생님과는 또 다른 모습이에요. 일부러 그런 구조로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선생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지요.
물론 선생님과 작업하면서 한순간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어요. 선생님이 대가이시고 압도적인 존재감이 있으셔서만은 아니었어요. 선생님을 자주 뵙고 촬영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함께하는 동안 모든 순간을 제대로 포착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통스러울 만큼 노력했어요.

다큐멘터리는 빈 캔버스에 내 세상을 마음대로 그리는 작업이 아니에요. 다큐멘터리는 대상이 있는 상태에서 그 대상의 삶을 나의 카메라 프레임을 통해, 나의 시선을 통해, 흔히 말하는 나라는 ‘필터링’을 통해 편집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이에요. 엄청나게 무서운 과정이지요. 카메라를 드는 순간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사이에서는 권력 구조가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카메라를 들면 안 되고요.
하물며 대상을 찍는 앵글도 중요해요. 그게 그 사람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니까요. 내가 키가 크니까 대충 편하게 높은 데서 찍자, 이런 식으로 작업하면 안 돼요. 치열하게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하이 앵글도, 로우 앵글도 의도적으로 찍어야 하지요.
대상을 카메라 앞에 어떤 식으로 편하게 나오게 하느냐부터가 다큐멘터리스트의 일이고 숙명이에요. 조금이라도 선생님께서 편안해지시고, 그래서 마음을 열어 자신을 보여주실 수 있도록 한걸음 물러서서 기다렸어요. 〈땅에 쓰는 시〉의 긴 제작 기간 동안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마음을 여시는 데도 시간이 걸렸어요. 영화에서 들으셨을 텐데, “지랄하네.”라는 표현을 쓰시면 친해졌다는 뜻이에요.
선생님과 신뢰를 쌓는 데는 제작을 맡은 김종신 PD의 역할이 컸어요. 저는 아무래도 감독이기도 하고 미덥지 않기도 하셨을 거예요. 혼나기도 많이 혼났고, 믿음이 쌓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런 가운데 김종신 PD가 선생님의 마음을 먼저 열어주었어요. 나중에는 선생님께서 사랑하는 아들 보듯 흐뭇하게 바라보셨을 정도예요.

인터뷰 | 이주호, 신태진
사진 | 신태진
인터뷰 도움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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