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스타전은 늘 가볍고 즐거운 날처럼 보인다.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V-리그 올스타전도 그랬다. 선수들은 평소보다 더 크게 웃고, 팬들은 카메라 셔터를 더 자주 누른다. 그런데 그 축제의 한가운데서, 이상하게 마음이 묵직해지는 순간이 있다. “내년에도 볼 수 있나요?” 같은 질문이 나오면 그렇다. 누군가에겐 장난처럼 들릴 수 있지만, 어떤 선수에게는 사실상 ‘마지막이냐’는 확인이 된다.

이번 올스타전 여자부 MVP는 현대건설의 양효진이었다. 기자단 투표에서 19표를 받았다. 올스타전 MVP가 처음이라며 “제가요?”를 몇 번이나 되물었다는 말이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다. 양효진은 원래 그런 식의 ‘호들갑’을 떠는 선수는 아니다. 코트에서 묵묵히 해내고, 끝나고 짧게 말하는 타입에 가깝다. 그런데도 그날은 달랐다. 심판석에 앉아 주심 흉내를 내고, 선글라스를 쓰고, 댄스 퍼포먼스까지 곁들였다. 본인 표현대로라면 “나이가 들어 뻔뻔함이 생긴 것 같다”는 건데, 사실 팬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그 뻔뻔함이 아니다. 팬들이 좋아하는 건 ‘양효진이 아직도 코트 위에서 즐기고 있다’는 신호다. 그 신호가 반갑고, 그래서 더 크게 환호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MVP 트로피를 들고도 양효진의 표정 어딘가엔 망설임이 남아 있었다. 은퇴 질문이 나오자 “조만간 결정하겠다”고 했다. 주변에서는 마흔까지 뛰라고 하지만, 그러면 테이핑을 너무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이 왜 이렇게 현실적으로 들리냐면, 선수 생활이라는 게 결국 ‘몸의 회계장부’이기 때문이다. 오늘 한 경기를 뛰면 내일의 몸이 달라지고, 한 시즌을 버티면 다음 시즌의 관절이 달라진다. 양효진은 그 장부를 2007~2008시즌부터 지금까지 혼자서 꼼꼼히 적어온 사람이다.

우리는 양효진의 커리어를 숫자로 설명하는 데 익숙하다. 통산 득점 1위, 통산 블로킹 1위. 17시즌 연속 올스타. 국가대표로 런던과 도쿄에서 4강까지. 이런 문장을 나열하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양효진이 지금 고민하는 건 숫자가 아니라 ‘통증’이다. 시즌 초반 공격 자세가 나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고, 무릎에 물이 찼다고 했다. 오랜 세월 했는데 지금에서야 물이 찬 게 다행이라는 말도 했다. 이 대목이 참 양효진답다. 아프다고 드러누워 울기보다, “이 정도면 운이 좋다”고 스스로를 달래는 방식. 다만 그 달램이 쌓이면 어느 순간 결론이 나온다. ‘이제는 더는 버티기 어렵다’거나, 혹은 ‘조금만 더 해보자’거나.
여기서 양효진의 은퇴 고민이 더 크게 다가오는 이유가 하나 있다. 김연경이 이미 떠났기 때문이다. 김연경이 은퇴한 뒤, 리그가 ‘다음 얼굴’을 찾는 과정은 생각보다 험했다. 새 스타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실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오래 버틴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팬은 결국 “그 선수의 시간”을 사랑한다. 그래서 레전드의 은퇴는 늘 리그 전체의 공기까지 바꿔놓는다. 양효진은 현대건설의 한 선수이기 전에, V-리그 자체를 상징하는 장면들이 많은 선수다. 미들블로커가 주인공이 되기 어려운 스포츠에서, 미들블로커가 리그의 얼굴로 오래 버틴 사례는 흔치 않다. 그게 양효진이라는 이름의 무게다.

그렇다고 해서 “리그를 위해 더 뛰어야 한다” 같은 말은 너무 잔인하다. 결국 경기는 사람이 뛰고, 무릎이 뛰고, 허리가 뛴다. 특히 미들블로커는 더 그렇다. 미들은 화려한 스파이크 한 번으로 끝나는 포지션이 아니다. 매 랠리마다 점프하고, 착지하고, 옆으로 미끄러지고, 다시 점프한다. 블로킹 하나는 화면에 찍히지만, 그 블로킹을 위해 움직인 수십 번의 예비 동작은 아무도 기록해주지 않는다. 테이핑이 늘어난다는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그 ‘보이지 않는 비용’이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는 고백에 가깝다.
그럼에도 양효진이 “조만간 결정하겠다”고 말을 아끼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마음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팀이 시즌 중이라는 현실도 있다. 현대건설은 시즌을 치르고 있고, 그 안에서 양효진은 여전히 중심이다. 코트 위에서 한 명이 사라진다는 건 전술 하나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팀 분위기와 리듬이 바뀐다는 뜻이다. 특히 주장 경험이 많고, 코트에서 정리 역할을 하는 선수가 빠지면 더 그렇다. 양효진은 그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결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팀의 호흡과도 연결된다. 은퇴는 혼자 결심하고 끝내는 일 같지만, 실제로는 그 사람의 마지막을 둘러싼 수많은 관계가 정리되는 과정이다.

여기서 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아마 이거일 것이다. “계속 뛸까요, 그만둘까요?” 그런데 솔직히 말해, 정답은 양효진 본인도 지금은 모를 수 있다. 다만 흐름은 읽힌다. 올스타전 MVP를 받고, 관중 앞에서 즐겼다. 그게 ‘마지막 인사’처럼 느껴져서 더 마음이 철렁했다. 동시에 그 즐거움이 ‘아직은 할 만하다’는 신호처럼 보이기도 했다. 은퇴를 앞둔 선수들은 보통 두 가지 중 하나다. 더 이상 즐겁지 않아서 떠나거나, 아직 즐거운데 몸이 안 따라줘서 떠난다. 양효진은 후자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러니 결론은 아주 단순한 곳에서 날 가능성이 크다. 무릎이 다음 달에 어떤 표정을 짓느냐, 테이핑이 다음 라운드에 얼마나 늘어나느냐,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오늘도 뛰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 있느냐.
만약 양효진이 은퇴를 택한다면, 그것은 패배가 아니다. 그건 ‘완주’다. 10년 뛰기도 힘든 리그에서 거의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버틴 선수다. 기록은 이미 충분하다. 반대로 현역 연장을 택한다면, 그건 욕심이 아니라 용기다. 테이핑이 늘어나는 걸 알면서도 코트에 선다는 건, 여전히 자신의 배구가 팀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선택이다. 양효진은 그런 선택을 함부로 하지 않는 선수다. 그래서 더 믿게 된다. 어떤 결정을 내려도, 그 결정을 가볍게 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올스타전은 끝났지만, 양효진의 고민은 이제 더 또렷해졌다. ‘올스타전 MVP’라는 선물이 은퇴를 더 가까이 당겨놓았을 수도 있고, 반대로 한 시즌을 더 해볼 힘을 줬을 수도 있다. 확실한 건 하나다. 양효진은 지금도 리그의 중심에서, 자기 몸과 마음을 정확히 저울질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저울질이야말로 레전드가 레전드인 이유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누구 탓도 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방식대로 결정한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다. 어떤 선택이든 존중하고, 남은 시간 동안은 더 크게 박수치는 것. 그게 ‘오래 본 팬’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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