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하는 사이, 누가 조용히 권력을 키우고 있는가?

‘증오의 시대’다.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자주, 훨씬 더 직설적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계층 간, 세대 간, 성별 간, 모든 관계에서 날 선 언어가 오간다. 특히 유튜브, SNS 같은 공간에서는 증오가 하나의 유희처럼 소비된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언제부터 상대를 이해하는 것보다 깎아내리는 것이 더 편한 사회가 되었을까? 증오를 탓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이 감정의 ‘기원’을 다시 물어야 한다. 증오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삶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직한 거울이다

1. 증오는 생각을 멈춘 자리에서 자란다
증오는 겉보기엔 강한 감정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주 단순하고 자동적인 감정이다. 우리는 어떤 것을 깊이 이해할 때보다, 어설프게 알 때 훨씬 더 쉽게 분노한다. 오해가 확신처럼 굳어질 때, 그 틈으로 증오가 자라난다. 이해는 복잡하고 느린 과정이다. 상대의 맥락을 들여다봐야 하고,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하지만 증오는 다르다. 선과 악, 좌와 우, 세상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나누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 '사고의 포기'가 바로 증오의 온상이다. 생각을 멈춘 자리에 증오는 가장 쉽게 뿌리 내린다.

2. 강해 보이는 감정일수록 속은 더 불안하다
우리는 종종 증오를 ‘강함’으로 착각한다. 거칠게 말하고,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마치 더 당당하고 우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은 그 반대일 때가 많다. 증오에 쉽게 휘둘리는 사람일수록, 내면 어딘가에 결핍과 불안을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존감이 단단한 사람은 타인을 함부로 깎아내릴 필요가 없다.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가장 큰 소리로 누군가를 비난하는 이가 가장 깊은 불안과 증오를 안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증오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감정일 때가 많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추기 위해 선택하는 방어 기제다. 그래서 증오는 '강함의 표시'가 아니라, '불안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3. 우리는 점점 더 ‘쉬운 감정’에 중독되고 있다
생각보다 증오는 편리하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나누고, 불편한 감정을 외부의 ‘적’에게 떠넘기기 쉽다. 그래서 증오는 정서적 패스트푸드와도 같다. 빠르고, 강하고, 쉽게 중독된다. 하지만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증오가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비판 대신 조롱을 택하고, 토론 대신 독설을 날린다. 상대의 관점은 삭제되고 다름은 위협이 된다. 결국 증오에 중독된 사회는 서로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은 지워지고, 감정만 남는다. 오직 반응만 존재하는 세계, 서로를 ‘대화의 주체’가 아닌 ‘타격의 대상’으로 여기는 시대가 된다. 우리는 지금 누가 옳은지를 묻기보다, 누가 더 쉽게 미워질 수 있는지를 따지는 세계에 살고 있다.

4. 결론 : 가장 쉬운 감정이 증오라면 가장 어려운 감정은 사유다
증오가 이토록 쉬운 시대에, 생각은 점점 더 희귀해지고 있다. 단정은 빠르고, 이해는 느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빠른 쪽, 쉬운 쪽을 택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 정말 더 많은 비난과 증오가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었는가? 결국 이 시대를 바꾸는 건 더 강한 목소리가 아니라, 더 깊은 사유다. 지금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누군가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길들여진 사고의 습관일지도 모른다. 가장 쉬운 감정이 증오라면, 가장 어려운 감정은 사유다. 그리고 그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사람만이 이 시대를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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