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커상 최종 후보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 어떤 작품인가?
[김경은 소설가]
오늘밤 최종 발표 남겨놓은 부커상
당대 최고 '구라쟁이'의 두번째 도전
역사와 민담 사이의 '근현대 노동운동사'
철도원 3대의 노동, 해방, 여성 문제 다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황석영 작품
황석영 작가의 『철도원 삼대』(영문판 Mater 2-10)가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라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해 질 무렵』(영문판 At Dusk)이 지난 2019년 1차 후보에 오른 이래 그의 작품으로는 두 번째다. 2022년 정보라의 『저주 토끼』와 2023년 천명관의 『고래』에 이어 3년 연속 한국의 작가들이 부커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앞서 2016년에는 작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이 상을 받기도 했다.
1943년 태어난 황석영 작가는 한국 3대 '구라쟁이'로 꼽힌다. 1962년 단편소설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받았고 1970년 「탑」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본격 시작한다. 이후 『객지』, 『가객』,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오래된 정원』, 『손님』, 『모랫말 아이들』, 『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 질 무렵』 등을 세상에 내놨다.
그의 작품 면면을 보면 조선 후기에서 식민지 시기와 근현대까지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봉건사회의 모순은 물론 우리 현대사의 비극인 전쟁과 분단, 냉전시대를 넘어 통일을 열망하던 시기와 인간의 소비욕망이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주요 국면마다 작가는 사회 모순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시대 이슈를 다뤄왔다. 베트남 파병 부대에 지원해 이때의 경험을 소설로 옮겼고,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면서까지 방북을 단행해 작가로서 화두를 던지고 사회 변화를 이끈 역할이 그 예다.
예술 작품은 그 자체로 형식과 내용 가운데 하나 이상을 충족하는 완결 구조이지만, 한 작가의 생애로 보면 모든 작품은 연속성을 띤다. 그의 작품은 노동, 민중, 분단, 혁명, 샤머니즘 등에 걸쳐 있으며 그동안의 작품이 이들 두 가지 이상의 이슈를 포함했다면, 2020년 출간한 『철도원 삼대』는 작품 안에 모두 아우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부커상이 황석영 작가의 작품을 주목한 것은 작가의 평생 연대기를 평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철도에서 시작한 한국 노동운동사
소설 『철도원 삼대』는 삼대(三代)가 철도원인 집안의 가족사를 기둥으로 한국 근현대 노동운동사를 관통한다. 이는 “한국문학의 빈 부분에 채워넣으면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 『철도원 삼대』, 619쪽)한다는 작가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한국 노동운동 서사에서 영등포와 인천이라는 장소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두 곳을 잇는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1899년 개통)이었다. 철도는 근대의 표상으로, 서구 자본주의는 근대 과학기술이 집약된 철도 건설로 식민 지배의 발판을 놓았으며, 황석영의 소설은 이 지점을 포착했다.
소설 속 '이진오'는 홀로 고립된 굴뚝 위에서 그의 선대를 불러낸다. 그는 철도원 삼대의 후손으로 복직투쟁을 하느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굴뚝 꼭대기는 이곳과 저곳, 다시 말해 선대와 후대를 연결하는 경계로, 1백여 년의 노동운동사가 펼쳐지는 마술적 공간이다. 철도원 가족의 시조로부터 삼대로 이어지고 이진오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철도원이 되었고, 철도원에서 뻗어나가 관계를 맺으며 노동운동 활동가로 제국주의에 맞선 독립운동을 하였는지 이야기한다.
이 소설에는 1930년대 초중반 국내 노동운동을 담당한 '경성트로이카'의 수장 이재유와 주요 활동가 이관술, 김삼룡, 이순금, 안병춘 등의 역사적 인물이 등장한다.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던 뛰어난 활동가 이재유의 영웅서사가 소개되는가 하면, 영등포 방직공장 노동자들의 파업농성, 현장 활동가 김삼룡의 점조직 활약, 이론가 박헌영의 잠행도 소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1931년 만주를 침략하고 1937년에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강경탄압 일변도였다. 독립운동가들이 속속 해외로 떠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도 국내에 남은 이들은, 형사와 밀정 들의 물샐틈 없는 감시망을 피해가면서 일제 당국과 일본 자본가들에 대항해 싸웠다.
민담으로 펼치는 민중 생활사
철도원 집안의 '두쇠'와 '한쇠'를 축으로 하는 철도원 삼대의 가족서사는 이들의 활약에 간섭하면서 박제된 역사적 기록에 숨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가족서사와 노동운동사를 한 그릇 안에 조화롭게 담은 비법은 ‘민담적 리얼리즘’에 있으며 이를 끌어가는 중심에 여성서사가 있다. 민담적 리얼리즘은 ‘민간 기억법으로서의 민담을 소설 그릇으로 삼은 성취’를 말한다(최원식, 「‘철도원 삼대’가 성취한 민담적 리얼리즘의 세계」, 『철도원 삼대와 인천 걷기』). 한편 민담은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역사가 될 민중 생활사를 ‘구라’로 버무린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등장인물을 꼽자면 단연 ‘주안댁’이다. 주안은 우리나라 최초의 염전이 있던 곳으로, 여기서 자란 염부의 딸 주안댁은 인천과 영등포를 잇는 상징적 인물이기도 하다. 주안댁과 이백만이 맺어진 일화는 유화와 해모수의 첫날밤을 방불케 한다. 이백만이 곯아떨어진 방으로 등 떠밀려 들어간 주안댁은 그와 결혼하는데 이는 ‘만이 아저씨’의 계략이었다. 그는 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리라는 혜안으로 공작창 고원(雇員)인 이백만에게 딸을 맡길 심산이었다. 장래의 사위에게 잔뜩 술을 먹인 그의 행위는 천제(天帝) 해모수를 탐냈던 하백을 닮았다. 다른 점이라면 유화는 버려지지만 주안댁은 이백만과 결혼해 영등포로 이사하고 일가를 이루어 두쇠와 한쇠를 낳았다는 것이다.
『철도원 삼대』에 등장하는 주요 장소로는 영등포와 인천, 만주가 있지만 이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곳은 아무래도 철도원 가족의 거주지이던 영등포다. 만주 장춘(長春)에서 태어난 작가 황석영은 1947년 영등포로 이주한 이후 1959년까지 12년을 살았으니, 영등포는 그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툭하면 물에 잠기던 영등포랄지, 시장이 들어서는 과정 등의 초기 풍경이 생생하다.
대모신을 부활시키는 여성 서사
인천에서 새우젓이나 생선을 떼어온 주안댁은 영등포시장이 막 형성될 무렵, 그 한 귀퉁이에서 장사를 시작한다. 도무지 집안사에 관심 없는 남편을 대신해 가족을 살뜰히 보살피는 일도 그녀의 몫이었다. 그녀는 기골이 장대해 '을축년 대홍수(1925년)' 때는 피신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기적을 보였다. 단명하는 바람에 주로 시누이인 막음이와 며느리 신금이의 입을 통해 전해지던 주안댁의 활약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일지언정 신통한 힘을 부려 엄혹한 시대를 지탱하는 숨구멍 역할을 한다.
이들 여성 서사는 주안댁에서 집안을 꿋꿋이 지켜낸 첫째 며느리 신금이로 이어지고 만주로 넘어간 둘째 며느리이자 활동가인 한여옥으로 갈려 미래를 기약하는 한편, 신금이에서 이진오의 어머니인 윤복례로 내려온다. 식민지 시기에도 일상은 있었고 사람들은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아갔다는 점에서 민중들이 어떻게 고난을 넘기고 어떤 식으로 삶에 가치를 부여하며 해학을 입히는지, 소설은 그 단면을 보여준다.
주안댁은 고구마 한 자루를 삶아 먹고 문지방에 대자로 뻗어 즉사한 뒤, 퇴근한 남편 이백만에 의해 발견된다. 비극적인 죽음의 희화화는 그 자체로는 의미를 알아채기 어렵지만 오백 명의 아들을 먹이려 죽을 끓이다 솥에 빠져 숨진 설문대할망의 면모라는 점에서 대모신 주안댁의 위상을 드러낸다. 주안댁은 사후에도 철도원 집안을 보듬으며 전설이 되어간다.
작가는 바라던 대로 한국문학에 비어 있는 노동운동사를 채워 넣었을뿐더러 민담 기법으로 평면적인 근현대사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소설 속 인물, 김근식은 이런 말을 한다.
"그런데 가끔 이상한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은 우리가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진 않고 늘 미흡하거나 다른 모양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시간이 무척 오래 지나서야 그러더군요. 장구한 세월에 비하면 우리는 먼지 같은 흔적에 지나지 않아요." (『철도원 삼대』, 585쪽)
소설에서 타고난 대중활동가이던 김근식은 누구보다 민심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말하는 세상 이치는,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이야기 속에서 변화를 꾀하는 민담과도 다르지 않다. 김근식의 말대로라면 세상은 아귀가 짱짱하게 맞아 돌아가지 않으며, 작가가 지향하는 소설 역시 촘촘히 짠 듯 느슨하게 풀어진 구조일 것이다. 치열한 창작 활동의 스무고개를 넘어 도달한 자리에서 대가(大家)가 하고 싶은 말도 이런 것 아니었을까?
독립운동가를 구하는 웅장한 첩보작전도
철도원 가족사인 만큼 소설에는 철도원 형제가 힘을 합하는 첩보작전도 등장한다. 신의주에서 경성까지 경의선을 이용해 ‘김선생’을 모셔오는 특급작전이었다. 연평도 연안을 거쳐 개성에 닿고 신의주, 의주, 서울로 돌아오는 경로였다. 수륙 양면작전이었으나 핵심은 열차였고 '한쇠'가 운전하는 히카리호의 화물칸을 이용했으니, 서슬 퍼런 식민 치하에서 적의 심장 한가운데를 통과한 쾌거였다.
황석영은 방북 당시 철도원 기관사이던 노인을 만나면서 『철도원 삼대』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한쇠'로 구현된 노인의 삶이 상당 부분 소설에 들어왔을 테지만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논픽션인지 딱 떨어지게 가를 수는 없다. 다만 부두노조와 특급열차 기관사가 동원되는 스케일 큰 작전을 읽노라면, 이런 게 ‘구라’의 맛이지 싶게 저절로 가슴이 웅장해진다.
세상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칭, 타칭 ‘구라쟁이’ 작가도 민담적 리얼리즘을 이만큼 성취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평생의 이슈들을 『철도원 삼대』에 조화롭게 담아낸 대가는, 다음 작품에서 이를 또 어디까지 끌어올릴지 기대가 크다.
※ 김경은 소설가는 소설 외에 이런저런 잡글을 쓰는 중. 최근 <나타나다><매일 안녕하세요><마오리전사><애스컴시티> 등을 씀.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신화는 새롭지 않지만, 언제나 새롭게 읽힌다. 오랜 세월 만들어져 온 신화가 있는가 하면 오늘의 우리가 만들어 가는 신화도 있다. 신화의 시대에서 이 시대의 신화까지를 더듬어 갈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