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항조의 음악 인생은 1978년 록 그룹 '서기 1999년'의 리드보컬로 데뷔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나 정말 그대를', '폭우' 등의 곡을 발표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음악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다. 인기를 좇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밴드 활동을 이어갔다.

긴 무명생활에 지쳐가던 중, 조항조는 음악을 잠시 내려놓고 가족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밴드 'New Wave Band'를 결성해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지만, 결국 음악 없는 삶이 얼마나 허전한지를 깨닫게 된다.
훗날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로 그 시절을 회상했다.

1995년, 영주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조항조.
1997년에 발표한 '남자라는 이유로'가 예상치 못한 인기를 얻게된다.
IMF로 힘들던 시절, 많은 남성들의 위로가 되었고, 조항조의 존재를 전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이후 '사나이 눈물', '만약에', '거짓말'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성인가요계를 대표하는 가수로 자리 잡았다.

조항조의 긴 음악 인생 속 가장 든든한 조력자는 단연 아내였다.
데뷔 후 무명가수로 20년을 보낼 동안, 조항조의 월수입은 고작 15만 원이었다.
매달 빠듯한 생활이 반복됐지만 아내는 단 한 번도 "생활비가 부족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음악 외길만 고집하던 남편을 향해 원망 대신 묵묵히 응원해준 것이다.

아내는 시댁에서도 쉽지 않은 시선을 견뎌야 했다.
조항조가 무명일 때 가족들은 가수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고, 결혼을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는 주변의 시선을 이겨내고 끝까지 조항조의 손을 놓지 않았다.
가정을 위해 음악을 포기하려던 조항조에게 아내는 "당신은 음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라며 음악의 길을 계속 걸어가길 응원한다.

생활고와 음악 실패의 위기 속에서도 한결같았던 아내의 뒷받침 덕분에 조항조는 음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고, 마침내 ‘남자라는 이유로’라는 인생곡으로 무명 생활을 청산했다.

조항조는 지금도 방송에서 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내가 음악에 빠져 있을 때도, 힘든 시기를 버텨준 사람이 아내였다.
지금까지 지켜봐줘서 늘 고맙다"며 영상편지로 고백하기도 했다.

조항조의 인생 성공 뒤엔 음악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조항조는 지금도 꾸준한 신곡 발표와 전국 투어 콘서트, 디너쇼를 통해 팬들과 만나고 있다.
'기다림' 시리즈 음반을 비롯해 다수의 드라마 OST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은 여전히 열정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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