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배드민턴 여자 단식 판도는 이미 한동안 ‘안세영 이전’과 ‘안세영 이후’로 나뉘고 있다. 올 시즌만 놓고 보면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코트 밖이다.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올해의 선수상(Most Promising / Player of the Year)을 둘러싸고 일부 중국 매체가 만들어낸 ‘딴지 서사’가 논란을 키웠고, 결국 스스로 물러서는 모양새까지 연출했다. 기록과 지표, 랭킹, 영향력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시즌을 보낸 선수에게 “수상이 확실치 않다”는 프레임이 씌워지는 과정 자체가 이미 한 편의 정치학처럼 보인다.

이번 시즌 안세영의 이력서를 다시 펼쳐보자. BWF 주관 대회 기준 단일 시즌 여자 단식 최다 우승 10회. 총 18개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10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 시즌 전적 73승 4패, 승률 94.8%. 그야말로 투어 전 구간에서 다른 선수들의 ‘목표’이자 ‘한계선’ 같은 존재였다. 2023년에 자신이 세웠던 단일 시즌 9관왕 기록을 스스로 갈아 치웠고, 시즌 내내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내주지 않았다. 이 정도면 “올해의 선수”라는 타이틀은 의미상 이미 따라붙고 있는 수식어에 가깝다. 공식 시상식에서 이름을 한 번 더 불러주느냐 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럼에도 논란의 불씨는 중국발 보도에서 시작됐다. BWF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올해의 선수상 후보를 발표하자, 일부 중국 매체는 곧바로 “안세영의 수상이 확실하지 않다”는 식의 해석을 내놓았다. 논리는 단순했다. “세계선수권 우승이 없다”, “월드투어 파이널 우승도 없다”는 두 줄짜리 명분이다. 대신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일본의 야마구치 아카네를 전면에 내세우며, “올해의 선수는 야마구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여기엔 숨은 전제가 하나 더 깔려 있다. 중국 여자 단식 간판 왕즈이, 천위페이의 수상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올 시즌 내내 안세영에게 완전히 밀렸고, 세계선수권에서 단일 대회 반짝 결과를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그러니 “안세영이 받게 두느니 차라리 일본 선수가 받는 게 낫다”는, 다분히 감정적인 프레임이 기사와 해석의 토대가 된다. 안세영이 중국 여자 단식을 상대로 만들어낸 일방적인 상성, “타도 안세영”이라는 키워드를 시즌 내내 소비해온 중국 배드민턴계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이 어색한 논리의 배경은 오히려 분명하다.
자세히 뜯어보면, 세계선수권 우승 하나를 과대평가하면서 투어 전체의 지배력을 축소하는 방식이다. 야마구치가 파리 세계선수권에서 천위페이와 왕즈이를 연달아 꺾고 우승을 차지한 건 분명 의미 있는 기록이다. 또 코리아오픈 결승에서 안세영을 잡아낸 것도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 외의 대회에서는 어떠했는가. 슈퍼 1000, 슈퍼 750급에서 야마구치는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반면 안세영은 말레이시아오픈, 전영오픈, 인도네시아오픈(슈퍼 1000), 일본오픈·중국마스터스·덴마크오픈·프랑스오픈(슈퍼 750), 호주오픈(슈퍼 500), 오를레앙 마스터스(슈퍼 300) 등 ‘윗급’ 대회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단일 한 방의 상징성만을 들고 와 시즌 전체를 재단하려는 시도는, 냉정하게 말해 스포츠 평가라고 보긴 어렵다.

BWF의 올해의 선수상 선정 방식도 이런 중국식 논리와는 거리가 있다. 평가 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직전 52주 간 누적된 세계 랭킹 포인트이고, 둘째는 BWF가 지정한 주요 대회에서 전문가 패널 5인이 매기는 투표 점수다. 여기에 월드투어 파이널, 세계선수권 등 일부 대회는 가중치가 붙긴 하지만, 그 역시 “전체 시즌 맥락 위에서 가산점” 수준이다. 세계선수권 단일 타이틀이 나머지 시즌을 전부 덮어 버리는 구조가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 역사도 이를 증명한다. BWF 올해의 선수상(단식 부문)은 1998년 도입 이후 “세계선수권+올림픽” 같은 큰 타이틀과 투어 성적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수상자를 골라 왔다. 린단, 리총웨이가 남자 단식에서 3연패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단순히 한 대회 우승이 아니라 “시즌을 통째로 지배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여자부에서도 혼합복식의 황야총, 그리고 안세영 본인이 이미 2연패를 기록했다. 만약 올해 안세영이 또다시 트로피를 가져간다면, 여자 선수로는 사상 첫 BWF 올해의 선수상 3연패가 된다. 남자부의 린단·리총웨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상징성이 매우 큰 이정표다.

이런 흐름을 알면서도 일부 중국 매체가 “야마구치가 앞설 수 있다”, “안세영의 수상은 보장되지 않았다”고 강조하는 건 사실상 팬심 섞인 정치적 언어에 가깝다. 왕즈이와 천위페이가 시즌 내내 안세영에게 사실상 패패패패를 반복하며 밀린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집단 심리가 투영된 셈이다. 나아가 포털 내에서는 ‘공안증(공안증·AN에 집착하는 증상이라는 의미의 중국식 인터넷 유머)’ 같은 키워드가 유행할 정도로, “안세영만 보면 예민해지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다. 스포츠가 국가적 자존심과 과하게 연결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딴지 서사’가 오래 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같은 중국권에서도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기조가 바뀌었다. 소후닷컴 등은 “안세영이 세계선수권 우승은 없었지만, 10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여자 단식 최강자 자리를 굳혔다”, “올해의 선수상 유력 후보”라며 사실상 앞선 논조를 수습하는 듯한 분석을 내놓았다. 남자복식에서 서승재·김원호 조 역시 시즌 10회 우승과 세계선수권 타이틀을 더해 “가장 강력한 복식 후보”라고 인정했다. 애초의 ‘안세영 패싱’ 시도가 현실과 맞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물론 BWF 평가 구조를 고려하면, 월드투어 파이널과 세계선수권의 가중치가 변수로 작용할 여지는 있다. 지난해 월드투어 파이널은 왕즈이가, 올해 세계선수권은 야마구치가 가져갔다. 이론적으로는 두 대회를 나눠 가진 이들에게 일부 포인트가 우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안세영의 10관왕, 시즌 내내 유지된 세계 1위, 90%를 훌쩍 넘는 승률을 상쇄하기에는 설득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 팬들이 느끼는 불편함도 이 지점이다. “단일 시즌 10회 우승, 최상위 등급 대회 싹쓸이, 시즌 내내 세계 1위 유지, 여자 단식 역사상 최고 승률에 가까운 시즌”을 보낸 선수가 겨우 ‘대상 경쟁’의 한 축으로 놓인다는 설정 자체가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번 BWF 올해의 선수상 발표는, 단순히 “누가 상을 받느냐”를 넘어, 국제연맹이 앞으로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선수들을 평가할 것인가’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순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매체의 오락가락한 논조는, 결국 한 가지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비춘다. 지금 여자 단식에서 가장 강한 선수, 시즌 전체를 지배한 선수, 상대 입장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이름은 누구인가. 답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BWF가 항저우 갈라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이미 코트 위 기록은 한 시즌의 진짜 ‘올해의 선수’를 충분히 정의해놓았다. 중국발 ‘치졸한 견제’가 아무리 반복돼도, 그것이 네트 위 결과를 바꾸지는 못한다.

안세영에게 남은 건 마지막 마침표다. 세계선수권 금메달과 월드투어 파이널 우승을 동시에 품에 안았던 지난 두 시즌과는 결이 조금 다르지만, 단일 시즌 10관왕·역대급 승률·세계랭킹 1위 유지·상금 신기록 등 지표를 한 데 묶어 보면, 3년 연속 올해의 선수상은 오히려 늦게 따라붙는 ‘할인된 명예’에 가깝다. 그 순간이 12월 15일 항저우에서 찾아올지, 아니면 세계연맹이 스스로 기준을 흐리는 선택을 할지, 이제 공은 BWF의 손에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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