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된 물 마시던 아이들에…적금 깨서 1000만원 기부한 직장인[따만사]
아프리카 르완다 식수위생사업에 약 1000만 원 후원
국내아동권리보호사업 누적 기부 금액 180만 원
지난해 40번째 생일을 맞이한 김모 씨는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삶을 누리게 해준 세상에 고마움을 표하고자 김 씨는 자신이 가진 걸 나누기로 했다. 기부를 결심한 그는 글로벌 아동권리 전문 비정부기구(NGO) 굿네이버스의 사업에 약 1000만 원을 후원했다.
김 씨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김 씨는 “나를 보호할 사람이 세상에 없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아는가. 이것이 가난과 결부되면 ‘세상이 두렵다, 세상에서 버림받았다’는 무의식이 자리 잡는다. 그래서인지 몸과 마음이 항상 긴장된 상태였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 열심히 살았지만, 결국 몇 년 전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밥 먹을 힘이 없었다. 3시간 정도 누워 있다가 겨우 몸을 움직여 밥 한술 뜨고 잠드는 게 6개월 이상 이어졌다”며 “몸이 아프니 어느 순간 ‘억지로라도 무언가 하기’를 멈추고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힘을 빼고 지내다 보니, 오히려 작은 거에도 감사함이 들었다”고 전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것, 숨을 쉬는 것, 먹을 수 있는 밥이 앞에 있는 것 등에 감사함을 느꼈다는 김 씨는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세상에 감사함이 커졌다. 이전에 세상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는데,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누리는 것 가운데 제 능력으로 된 건 극히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가 가진 것을 세상에 선물하고 싶었다. 이전에 안 해본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기부 이유를 밝혔다.
평범한 직장인의 용기로…깨끗한 물을 마시게 된 아이들
김 씨는 설레는 마음으로 굿네이버스에 전화를 걸었다.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에 기부하는 게 가장 가치 있을 거라 생각한 그는 아이들에게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는 ‘아프리카 르완다 식수위생지원사업’을 선택했다. 김 씨는 “아이들이 먼 곳까지 가서 구하는 물마저 안전한 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굉장히 가슴이 아팠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해당 사업에 1000만5904원을 기부했다. 적금을 해약하니 통장에 이 금액이 찍혔다. 그는 이 돈을 그대로 기부했다. 김 씨는 “당시 평범한 사무직 직장인이었다. 월급쟁이였고, 적금을 깨서 목돈을 기부했다. 저는 집도, 차도 없지만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을 르완다 아이들과 주민도 누리길 바랐다. 물질적으로 넉넉한 사람만이 기부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살다 보니 스스로 증명해 보이게 됐다”며 웃어 보였다.
사업 결과물을 받아본 그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 이렇게 현실로 나타날 줄은…”이라며 “저의 작은 용기로 인해 그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감동으로 전해져 왔다”고 말했다.
김 씨는 더네이버스클럽 등재에 “이런 제도가 있는지 몰랐다. 제게 있던 돈이라 기부한 거지 ‘큰 금액이니 칭찬받아 마땅하다, 알아줬으면 좋겠다, 대우받고 싶다’ 이런 생각은 전혀 해본 적 없다”며 “굿네이버스에서 축하해주시고 고마워해 주셔서 매우 감사했다. 선물 받는 사람이 기뻐하면 덩달아 기뻐지지 않나. 정말 기뻤다”고 소감을 밝혔다.
나눔이라는 꿈을 실현하는 방법
오랜 시간 김 씨는 나눔을 실천하겠다는 꿈을 간직해왔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기도 했다. 처음에 ‘나눔’이라는 게 막연하게 느껴졌던 그는 우선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 나섰다.
김 씨는 “제 성향인 것 같은데, 평상시 주변을 돕는 걸 좋아한다. 습관적으로 일상에서 작은 도움을 주는 편이다. 동료를 돕거나, 지하철에서 무거운 짐을 드신 어르신을 돕거나, 지인에게 작은 선물을 하는 등 소소한 나눔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에 가끔 기관이나 방송을 통해 일시 후원을 한 적 있다. 이후 약 10년간 현금 후원은 잊고 지냈다. 당시는 언젠가 때가 되면 좀 더 적극적으로 나눔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며 “그러다 악화한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물질적 기부라는 형태의 나눔도 생각해 보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이전에 기부는 남을 위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실천하고 보니 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비상식적일 수 있지만 (기부는) 저를 위한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다. 값으로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로 돈을 가치 있게 쓴다는 게 이런 느낌이라는 걸 배웠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에 쓰기 위해 돈을 벌고, 모으게 됐다. 돈을 이런 방식으로 써보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경험”이라며 “아주 넓게 생각해야 대한민국뿐이었던 제 의식의 품이 넓어지고, 의식 세계가 확장됐다”고 덧붙였다.
바보 같을 수 있지만…가치 있는 일, 기부
김 씨는 자신의 기부로 나비효과가 일어나 더 많은 사람이 나눔의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향해 “(기부는)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 즉 생명과 맞바꾼 격인 돈을 정말 가치 있게 쓰는 방법 중 하나”라며 “일생에 한 번쯤은 ‘바보 같은 짓’도 해볼 만하다. 함께 작은 용기를 내달라”고 말했다.
이어 “세상을 떠날 때 전액 기부하는 것보다, 적은 돈이라도 꾸준히 (기부)하면서 살아가는 게 더 재미있는 삶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상이 좀 더 다양한 삶을 인정하는 문화가 됐으면 좋겠다고도 전했다. 김 씨는 “지인에게 이런 기부를 한다고 말했더니 ‘내가 기초생활수급자다, 나한테 기부하라’고 하더라. 어쩌면 이게 일반적인 인식인 것 같다. 내 부모, 자식, 친구 등 가까운 주변을 먼저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며 “저도 건사할 가족이 있거나 기업의 대표였다면 그들을 먼저 챙겼을 수도 있다. 누군가의 선택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려니 하고 존중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김 씨는 이번 기부를 계기로 지난해 4월부터 월 10만 원씩 굿네이버스의 ‘국내아동권리보호사업’에도 후원하고 있다. 해당 사업에 대한 누적 기부 금액은 180만 원에 달한다. 김 씨는 “부끄럽지만 연차에 비해 많은 연봉이 아니었다. 남들이 볼 때는 ‘여태 그 연봉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게 충분한 돈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월급의 일부를 기부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꾸준히 나눔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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